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아졌다. 대체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업무나 수업 준비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감탄이 많지만, 인공지능의 능력에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이야기가 더 많다. 사실 이런 엄청난 사회 변화에 대해 교육부나 시교육청의 정책은 기능 교육 위주로 안내될 때가 많아 불안감을 더 한다. 이 책 역시 쉬는 시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교원 독서토론 책으로 추천돼 읽게 되었다. 뱀의 유혹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현실로 추방된 인간의 상황이, AI로 대체돼 설명된 표지를 보면서 잘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의 본질적인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AGI, ASI에 의해 인간 멸종까지 눈앞에 둔 상황이니까. 흥미 있는 ..
모임 날은 다가오고, 출제와 학년말 업무에 쫓겨 틈틈이 읽었다. 책을 들 수 있을 때는 종이 책을, 이동할 때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그렇게 이틀 만에 『나의 돈키호테』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주인공들처럼 나 역시 독서 아미고스가 있어 이렇게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나의 돈키호테』라는 제목에서 소설의 큰 흐름은 대략 짐작된다. 예상대로 이야기는 사라진 ‘돈키호테 아저씨’의 흔적을 좇으며 그의 설화가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구조다. 돈키호테를 꿈꾸었다가 산초에서 정체성을 찾지만 결국은 돈키호테가 되는 이야기. 사서 구조에서 정지아 작가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를 떠올렸다.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 입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그런데 책의 표지는 소설의 깊은 내용을 드러내기..
지루하게 내리는 가을비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리는...슬프고 비루한 춤, 사탄탱고신랄하다. 잔인할 정도로. 그리고 묘사가 매우 디테일하다. 그냥 디테일한 수준이 아니라 아름다움보다는 추한 것을, 고결한 것보다는 비루한 것을 매우 생생하게 거부감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2부 ‘그저 일과 걱정뿐’에서 이리미아시의 손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모습은 거의 괴물 혹은 불가촉천민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이 아닌 다른 외계 생명체 같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그 어떤 동정의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로 서로를 조롱하고 혐오한다. 그리고 인물들의 모든 언행에서 그들의 운명을 암시하고 결국에는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만다. 독자로서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고..
올해는 다행히 수능 감독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덕분에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내장산을 찾을 수 있었다. 지인들에게 내장산으로 단풍 구경을 간다고 하니 대부분 "단풍보다는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왔다", "길이 너무 막혀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는 시큰둥한 반응만 들었다. 그래도 이 특별한 가을날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다. 민주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서둘러 내장산을 향해 떠났다. 길은 담양읍을 거쳐 월산면, 장성 북하면 백양사 옆을 지나, 공중의 회전 고가도로를 지나 내장산으로 이어졌다. 한동안 통행이 뜸한 산길을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그런데 정상을 지나자 차량 행렬이 점차 늘어나더니 사하촌에 이르러서는 차량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다행히 일찍 서둘렀던 덕분에 입구와 가까운 주차장..
표지가 웹툰의 한 장면 같다. 이야기도 재미있어 금방 책에 빠져 들게 된다. ‘오늘의 의뢰’라는 SNS 채팅방의 내용이 주인공과 친구들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될지 추측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청소년 소설답게 갈등도 어느 정도 해결되고 누구에게도 큰 피해 없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무난하고 재미있고 주제도 명확한데 학생들에게 추천하려고 보니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은밀하게 그리고 조건이 있긴 하지만, 품앗이하듯 서로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오늘의 의뢰’ SNS 채팅방. 지금도 존재할 수 있고,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모방할까 봐 걱정이 된다. 물론 이야기가 ‘오늘의 의뢰’와 같은 문제해결 방식을 추천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그런 방식을 통해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분명..
이금이 작가님의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마지막 권이라는 설명이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2025년 8월 15일이라는 출간일 또한 광복절과 겹쳐 이 책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했다. 소설은 사할린 한인 1세 '단옥이' 할머니의 삶을 따라 일제 강점기부터 2025년 현재까지의 긴 세월을 450여 쪽의 분량에 담아낸다. 방대한 역사적 배경과 시간을 응축하다 보니, 소설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편의 치밀한 보고서를 읽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타국에서의 힘겹고 험난했던 삶의 묘사가 지나치게 구체적이지 않아 독자로서 큰 부담 없이 그 역사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과거 영화 명자, 아키코, 쏘냐>가 떠올랐다. 한국어를 쓰던 사할린 한인들이 일본어와 일..
p367 불의와 잔인성의 심연 속에서도 사랑의 힘을 보여 주려고 노력합니다.-1978년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p122 헤르만은 자신에게 고백했다. 난 세 명 다 갖고 싶어.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야.> p174 헤르만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가져올 결과와 그 이후의 추문을 두려워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끊임없이 파멸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면서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마성의 헤르만! 자신을 구해준 하녀 야드비가와 결혼하고, 마샤라는 아리따운 내연녀가 있으며,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아내 타마라가 등장해 일상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헤르만! 추문이 언제 드러날지 전전긍긍하지만 세 여성과의 관계를 절대 끊지 못하고 외줄을 타듯 위험하게 세 여성 사이를..
내년 1월로 예정된 폴란드와 체코 문학 기행을 앞두고, 아내의 추천으로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를 읽었다. 폴란드의 자연, 역사, 문화, 음식, 유명 도시와 관광지, 그리고 인물에 이르기까지 100가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방대한 분량 탓에 읽는 기간이 길어지고, 낯선 폴란드어 지명이나 인물명 때문에 모든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하기란 쉽지 않았다.하지만 서로 연결되는 100가지 이야기를 통해 폴란드라는 나라의 다채로운 면모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폴란드가 가진 역사의 무게, 그 속에서도 꽃피운 예술과 정신,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아픔과 희망까지. 단순한 여행 안내서를 넘어 한 국가의 영혼을 이해하게 돕는 깊이 있는 인문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내년 폴란드 ..
표지에 '김애란 소설'이라고만 적혀 있어 처음에는 장편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겨보니 7개의 단편 소설을 엮은 작품집이었다. 아마도 각 편이 지닌 밀도와 여운이 워낙 깊어, 단편집이라는 구분을 넘어선 '소설'로 온전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도 해본다. 7편 모두 깊은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치 한 편의 긴 서사처럼 다가오는 힘이 있었다.이 책의 모든 단편에서 나는 내 나이대의 이야기와 감정을 만나는 듯했다. 급여 노동자로 삶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으며 연대하려 애썼고,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낀 세대'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환을 느끼는 이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저 "나..
국어 교육과정 성취 기준에 매번 ‘언어폭력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말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성취 기준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말이 그 사람을 드러내며 말을 통해 사람이 형성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알기 때문이다. 갈수록 아이들의 말이 거칠어지고 혐오 표현까지 수시로 등장한다. 특히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플랫폼이 성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면서 이런 현장이 더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현장의 교사가 실제 수업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욕, 왜 하는 걸까? 욕, 잘 알고나 하는 걸까? 욕, 이대로 괜찮을까? 욕, 멈출 수 있을까?차례만으로도 현장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차분히 이야기하는 투라 중1에게 읽어보라고 하니 잘 읽는데 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