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표지에 '김애란 소설'이라고만 적혀 있어 처음에는 장편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겨보니 7개의 단편 소설을 엮은 작품집이었다. 아마도 각 편이 지닌 밀도와 여운이 워낙 깊어, 단편집이라는 구분을 넘어선 '소설'로 온전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도 해본다. 7편 모두 깊은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치 한 편의 긴 서사처럼 다가오는 힘이 있었다.

이 책의 모든 단편에서 나는 내 나이대의 이야기와 감정을 만나는 듯했다. 급여 노동자로 삶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으며 연대하려 애썼고,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낀 세대'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환을 느끼는 이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저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만으로도 깊은 위로를 받는, 그런 책이었다.

각 단편의 내용을 나름대로 메모하며 그 여운을 더듬어 본다.

 

1. 홈 파티

소설을 읽는 내내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묘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특히 단편 소설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소재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클라이맥스다. '보이체크', '자립정착금', '빈티지 잔 세트' 등은 이미 안정된 자신들의 시선으로 세상의 질서를 재단하던 오 대표가 이연의 '실수'를 쾌재로 여기다, 그가 던진 "너무 좋았다"는 한마디에 애매한 표정을 짓는 순간에 응축된다. '홈파티'라는 단어가 '가든파티'에 비해 소수의 은밀하고 치열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를 알게 되는 지점이다.

(39) 이연은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자신의 행동이 주정이 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뭔가 얘기할 거라면 아주 말짱해야 한다고. 그래서 아까부터 술을 더 입에 대고 싶은 욕구를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꾹 참고 있었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이연이 느꼈을, 흐트러짐 없는 단단함으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해야만 했던 그 순간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타인의 평가를 넘어선 '실존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고군분투가,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2. 숲속 작은 집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간 미뤄왔던 신혼여행 겸 해외 한 달 살이를 떠난 부부. 그 평화로운 일상 속에 메이드가 등장한다. 물건의 배치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메이드를 보고, '팁이 필요할까?' 하는 마음에 팁을 두는 아내. 그러다 팁이 사라지고 어느 날은 물품이 더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며 이야기는 묘한 긴장감을 품는다. 어려운 환경에서 세심하게 마음 쓰며 살아온 아내와 달리 부유한 배경에서 세상사를 쉽게 여기는 남편의 대비가 흥미롭다. 결국 팁을 받은 사람은 메이드가 아닌 그 메이드의 딸이었다는 반전은, 성장 과정의 경험이 얼마나 극명한 세계관의 차이를 낳는지를 안타깝게 보여준다.

(77) 돌이켜보면 엄마는 엄마여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게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젊어서부터 엄마는 ‘나는 절대 자식에게 신세 안 질 거다’ ‘아파도 혼자 용양원 가서 죽을 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 돈도 극구 사양하다가 몇 년 전 시청 계단을 청소하다 넘어진 뒤로 무척 미안해하며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더러 내 송금이 늦어지면 궁금해하다, 나중에는 조심스레 입금임을 물어봤다. 아마 엄마도 원한 바는 아닐 거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내게 “정서방한테 잘해라”라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에게, 호랑이 같던 기세는 어디 가고 축 처진 눈으로 내 눈치를 보는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딸은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감사하려 노력하는 주인공의 복합적인 심경이 잘 드러난다. 엄마의 입장에서 받은 사랑과 딸의 입장에서 부모를 돌보는 책임감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나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특히 '정서방한테 잘해라'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그 마음에 때로 짜증을 내는 자식의 현실적인 모습이 오버랩되어 더욱 깊은 공감을 안긴다.

 

3. 좋은 이웃

전셋집에 살고 있는 주인공의 집에 새로운 주인이 집을 보러 온다. 오랫동안 애정을 담아 살았던 집이라 깨끗하게 청소해 놓았건만, 새 주인들이 집 곳곳을 냉정하게 살피고 가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삶이 침범당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40대 중년인 서술자는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형편이 펴지지 않아 결국 더 작은 곳으로 이사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해야 한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새 집주인과 층간 소음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집을 리모델링하는 위층 신혼부부를 보며, 자신의 초라함에 허무함을 느낀다.

(108)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시대인과 어떤 가치와 속도를 공유한다 믿은, 그런데 그게 틀렸다는 걸 막 깨달은 사십대라서. 그래서였을까? 친구라도 초대한 양 온종일 집을 쓸고 닦았으면서도 막상 그들 부부가 떠났을 때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문장에서 '막 깨달은 사십 대'라는 표현이 심금을 울린다. 함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동시대인들과의 괴리감은 그 나이대에 겪는 특유의 상실감이 아닐까. 빈집을 매개로 타인의 삶과 대비되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의 공허함, 그리고 그 허탈감에 말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깊은 연민을 자아낸다.

 

4. 이물감

역류성 식도염으로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한 '이물감'을 느끼는 주인공. 은행원으로 일하며 불규칙한 식사와 스트레스로 얻은 이 증상은 그에게 '나이'와 함께 찾아온 증표처럼 느껴진다. 작품에서 언급된 '내장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 깊은데, 여유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내장의 얼굴'에서는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30대 후반의 주인공은 직장에서 말이 통하던 동료와 결혼했지만 헤어졌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컸음을 고백한다. 나 역시 나이를 먹으니 밥을 먹을 때 종종 흘리거나 음식물이 튈 때가 있어 가끔은 혼자 먹는 것을 택하곤 한다. 나는 과연 어떤 '내장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이 단편을 읽을수록 나이 듦과 그 안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160)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존재 자체로 누군가에게 부정과 경멸의 대상이 된 것 같았던 날. 이제 자신이 빼도 박도 못하는 기성세대가 됐음을 자명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밤 말이다.

이 문장은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자아의 당혹감과 함께,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불현듯 '부정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젊은 세대에게 '꼰대'로 치부될까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꼰대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중년 세대의 복잡한 내면을 정확히 꿰뚫는 구절이라 생각한다.

 

5. 레몬케이크

(214)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 구절은 나에게도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엄마와 나의 시공간 좌표계가 다르게 흐르는 듯한 감각, 그 간극에서 오는 뼈아픈 감정은 세대를 아울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이다. 오히려 막내가 할머니와 더 인접한 부분이 많다는 말처럼, 나 역시 부모의 노년과 돌봄이라는 숙제에 서서히 접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다른 단편보다 더 짧고 메시지가 명확하지만, 부모의 노후와 돌봄이 온전히 개인의 숙제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며, 마음은 무겁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나의 솔직한 심경과도 맞닿아 있었다.

 

6. 안녕이라 그랬어

나는 왜 이 단편이 책의 제목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며 읽었다. 그 계기는 놀랍게도 팝송 'Love Hurts'의 가사 중 'I'm young I know, I learn'을 '안녕'으로 잘못 들은 것에서 시작된다. 이는 아직 성인이 되기 전, 이별 후에야 부재를 통해 비로소 무언가를 배운다는 의미의 노래였다.

어머니를 돌보느라 연인과 헤어지고, 결국 어머니와도 헤어진 40대 중반의 경단녀 주인공은 홀로 고립된다. 언제든 이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려는 듯 영어 회화 플랫폼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를 이어간다. 이별의 상처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부재를 통해 무엇을 배웠다'는 영어 가사의 의미처럼, 우리말 '안녕'이 가진 중의적인 뜻(반가움, 잘 가라는 인사, 편안함을 기원하는 의미)을 곱씹게 만든다.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에서도 우리는 상황 속에서 부지런히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7. 빗방울처럼

제목 '빗방울처럼'은 실제로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인데,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말에 익숙지 않아 '빗방울처럼'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한다. 남편이 죽고, 고요 속에 한참을 듣게 된 물방울 소리는 주인공에게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삶을 정리하려던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타인의 작은 관심과 목소리 속에서 다시 살아갈 의지를 느낀다. 결국, 사람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관심과 따뜻한 연대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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