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휴먼스 랜스’란 제목과 ‘잠수교’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 그림에서 우리나라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임을 예상하게 한다. 머지않은 미래, 적어도 대한민국을 ‘노 휴먼스 랜드’로 만들만한 사건은 북한의 위협이 아닌 ‘기후 위기’다. 아마 가까운 미래, 그래서 기성세대도 생존해 있을 미래에, 우리 후손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과 실천에 대해 맹비난을 할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말의 ‘바보’의 어원을 ‘밥보’에서 찾기도 한다. 자기 생각만 한다는 점에서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 이 소설은 ‘용산 공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소설에서 용산 공원은 미군 부대가 철수한 뒤 토양 오염이 심해 계획보다 더 늦게 개방되는 것으로 나온다. 한 번 망가진 환경을 복구하기가 ..
2학기에 학생 여럿이 이 책으로 서평을 썼다. "페인트", "나나", "챌린지 블루"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눈에 담아 두었는데, 방학을 맞아 찾은 담양공공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얼른 찜했다. 표지를 보아서는 남녀 고등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인 듯싶은데,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란 제목과 소제목을 살펴봐도 내용이 잘 짐작되지 않았다. 다만 소제목이 모두 3음절인데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야기에 금방 몰입하게 되었다. 선우-혁의 형은 왜 죽었을까, 메타버스 '가우디'에 형의 집을 오랫동안 관리하고 있는 '곰솔'은 누구일까, 챕터의 끝이나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편지'는 누가 누구에게 보낸 것일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예측한 게 맞기도 하고 빗나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우리 학교 1학년 부에서 이 책을 읽고 있어 뒤늦게 읽었다. 제목 때문인지 “불편한 편의점”이 떠올랐다. ‘불편한’이란 수식어가 같아서였겠지만 내용 면에서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편한 편의점”이나 “불편한 미술관” 모두 익숙함에 대한 ‘딴지’가 그 시작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막을 깨야 그만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또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도 떠올랐다. “불편한 미술관”에서 이야기하는 ‘불편한’의 개념들이 이 책에도 대부분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권’에 관한 책이다. ‘인권’의 핵심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만나고 기억 남는 단어는 ‘자기결정권’이다.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끌고 갈 수 있는 권리가 국가나 타인에 의해 제한되는 것..
무도회가 끝난 후 (레프 똘스또이 외, 박현섭, 박종소 엮고 옮김 / 창비) 러시아 문학기행에서 너무도 멀리 와버린 시점에서 창비 세계 단편집 읽기 마무리를 러시아 단편으로 매듭짓게 되었다. 수미상관, 원점회귀도 아니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 2019년, 2020년까지 2년간 러시아 장편 위주로 읽었기에 고골의 ‘외투’ 외에는 작가는 들어봤지만 작품은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결투’하면 빼놓을 수 없는 뿌슈낀! 그의 소설 ‘한 발’에서는 오랜 세월 기다린 진정한 복수와 명예 회복의 의미를, 인간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의 거장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서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녀의 멋지고 품위있는 아버지의 야만스러운 모습(도망친 따따르 죄수를 행군하며 잔인하게 구타함)에 구토를 느끼며 허상과 다른..
하고 많은 유럽 나라들 중에서 ‘폴란드’라니! 축산업이 발달해서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 중 수입산의 대부분이 폴란드인 것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의 나라인데... 어쨌든 폴란드가 과연 러시아, 프랑스, 영국처럼 우리가 읽어볼 만한 작품들이 많은 나라인가? 혹은 스페인어처럼 언어와 문화가 방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도 아닌데, ‘폴란드’라니! 심지어 400쪽이 넘는 분량이라니! 그런데 첫 작품 를 읽고 단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느껴서라기 보다는(솔직히 그걸 가늠할 수 있는 안목도 없지만), 폴란드라는 나라가 한국과 비슷한 공감대와 정서를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알퐁스 도데의 을 읽고 느꼈던 그 간질간질한 감동과 비슷한? 스카빈스키에 반영된 폴란드 사람들의..
전국교사대회에 참여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아들과 남산 근처에서 하루를 보냈다. 날마다 부쩍 커 있는 아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재미있다. 남산에 올라 서울을 조망하고 돈가스를 먹은 뒤 서울역에서 헤어졌다. 생각보다 일찍 용산역에 도착했다. 예약해둔 기차 출발시각까지 여유가 있어 용산역 광장으로 통하는 계단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아직은 오월이라 그늘은 제법 선선했다. 바람을 쐬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기 시작했다. 머나먼 타국에서의 삶에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이 더해져 이야기는 불안 불안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광주송정역까지, 집에 도착해서도 줄곧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책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책 속 상황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런 ..
단 몇 작품으로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창비 단편선에 실린 소설들은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들과 극강의 가난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들의 대비, 그리고 가난에 대한 묘사가 충격적이어서 한 작품 씩 읽어나갈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만큼 아찔했다. 에 등장하는 가난한 정원사 부부(부부가 내외로 석탄을 훔침)와 하녀를 비롯한 북적이는 대가족 집안의 대비, 의 철없는 도련님 오오쯔와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주인들의 변덕으로 삶의 운명이 흔들리는 하녀 찌요, 그리고 정말 가난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 이 단편에서는 ‘젠바까’라고 불리는 광인가 소작농 진스께 집안의 형제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고통받다 어머니의 사랑 한 줌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자살한..
올해 처음으로 2015개정 교육과정 중 3학년을 맡게 되었다. 수업도 평가도 새로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1학기 1권 읽기를 어떤 책으로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방향은 1학기는 청소년 노동인권 혹은 진로, 2학기는 고전읽기를 정했지만 좋은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제도 잘 맞아야 하고, 수준도 맞아야 하는데, 주제를 다루는 것이 가볍거나 협소한 문제들이 많았고, 2학기 고전읽기는 수준에 맞을지가 고민이었다. 어쨌든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1학기에 학생들에게 읽힐 책들을 읽었는데, , , 마지막으로 을 읽었다. 그 중 을 가장 먼저 정리해 본다. 세 가지 책 중 어찌 보면 가장 지루할 수 있겠으나, 노동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고민과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_창비 세계문학 단편(중국) (이옥연 엮고 옮김, 창비) 미국, 유럽(영국, 독일, 프랑스), 아메리카 포함 스페인어권을 돌아 아시아 중국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단편들과 다르게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중국어권 작품들은 눈에 익은 듯이 잘 읽혔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어둡고 우울하고(고향, 타락, 노예의 마음, 린 씨네 가게, 초승달), 역사 혹은 현실 속에 타락해 간 인물들(아큐, 타락, 초승달)이 등장한다는 것! 아시아의 근대사는 침략과 수탈의 어두운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에 재기 발랄한 소설을 기대하는 것은 억지 같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내 마음을 꿰뚤어 보기라도 하듯이 ‘해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294) 중국 근대문학은 발랄하기보다 무겁고 어둡다...
자유학기 주제선택 수업으로 ‘SF 소설 쓰기’ 반을 개설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분석할 SF 단편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우리 학교 도서실에 “B612의 샘”이란 단편집이 여러 권 있었다. 작년에 국어 샘이 이 책으로 연극 수업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검증된 소설이라 편하게 읽었다. 미래 학교를 배경으로 다양한 문제 상황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실제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책이 많지 않아 두 개 모둠은 이 책으로, 세 모둠은 “너만 모르는 엔딩”을 읽혔다. 둘 다 중1도 재미있게 읽었다. 간단한 책 소개. 1. 안세화, 다시 만나는 날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도 기계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더 멀어질 거라 예상된다. 이야기 속 미래 학교도 여건은 훨씬 좋아지지만 아이들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