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차인표 씨의 책이 영국 옥스퍼드대의 필수 도서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서 모임 샘들이 함께 읽어보자고 했다.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배우가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야기는 책의 끝부분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열여섯의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 징용돼 캄보디아로 끌려가셨다가 1997년에 한국에 잠시 오셨던 훈 할머니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라는 무겁고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위안부로 끌려가기 이전의 호랑이 마을을 배경으로 동화의 느낌과 우화의 느낌이 나면서도, 어려운 단어가 아닌 순우리말을 활용하고 사람이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글꼴마저도 그런 분위기를 잘 느끼게 해 주고, 가즈오가 ..
작가님과 만남을 앞두고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살펴본 책 중 표지가 인상 깊어 골랐다. '미스 손탁"처음에 '미스'와 '손탁'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데 앞뒤 표지를 훑어보니 대한제국 시기의 외국인 '손탁' 여사를 중심으로한 역사소설이었다. 대한제국 시기는 나라를 팔아 먹었던 매국노도 있었고, 나라로부터 받은 혜택은 없었지만 그 나라를 지키려 일어섰던 민중들이 있었고,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외국인들이 있었다. 제목 속에서 그러한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이겠다 싶었다. 생각해 보면 대한제국(구한말) 시기의 역사는 되돌아보기 부담스럽다. 국권 침탈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사과는 요원하고, 오히려 ..
전국교사대회에 참여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아들과 남산 근처에서 하루를 보냈다. 날마다 부쩍 커 있는 아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재미있다. 남산에 올라 서울을 조망하고 돈가스를 먹은 뒤 서울역에서 헤어졌다. 생각보다 일찍 용산역에 도착했다. 예약해둔 기차 출발시각까지 여유가 있어 용산역 광장으로 통하는 계단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아직은 오월이라 그늘은 제법 선선했다. 바람을 쐬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기 시작했다. 머나먼 타국에서의 삶에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이 더해져 이야기는 불안 불안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광주송정역까지, 집에 도착해서도 줄곧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책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책 속 상황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런 ..
책장 정리를 하다 다시 펼쳤지만 마치 새로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금방 빠져들었다. 작가의 필력 덕분일 것이다. 내가 나이 들어 기억을 못 하기보다는.ㅎㅎ 그런데 프롤로그를 펼치자 이야기 흐름을 대략 그려졌다. 서로 닮은 김수남과 윤채령의 운명은 어떻게 연결되고 엇갈릴까. 이틀 새벽 2시까지 읽었다. 이야기가 끝에 다다를수록 안타까움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라지 않는 결말이었지만 역사적인 상황으로 보면 가장 현실적인 결말인 것 같다. 그렇더라도 청소년소설인데 좀 더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까. 연말 이틀을 우울하게 보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인생을 개척해 가는 수남이의 삶의 태도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라는 제목처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수남이의 호기심은, 마치 인..
"백범일지"를 살펴보다, '도진순'이란 이름에 눈이 갔다. 2010년 고미숙 선생님과 함께하는 '열하기행'에서, 즉석 가이드로 관련 역사에 대해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아들과 함께 오려다 부부끼리 왔다는 이야기에, 꼭 여름에 몽고에 가서 여름 별을 함께 보라고 조언해 주셨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로 독후감을 정리해 본다. (26) 어느날 나는 아버님이 엽전 스무 냥을 방 아랫목 이부자리 속에 넣어두고 나가시는 것을 보았다. 혼자서 심심한데다 앞동네 구걸이 집에서 떡 파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돈을 전부 꺼내 온몸에 감고 떡집으로 갔다. ~ 아버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빨랫줄로 나를 꽁꽁 동여 들보에 달아매고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
벌써 재작년(2017) 9월 일이다. 모임 이사회 참석으로 서울 올라가는 길에, 2학년 부장샘으로부터 대학로 소극장에서 식당까지 (수학여행) 동선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용산역에서 내려 대학로로 가는 151번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앞자리에 소녀상이 앉아 있어 깜짝 놀랐다. 일단 뒷자리로 가 버스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의자 뒷면에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설명과 151번 버스에 소녀상을 세운 의미가 소개돼 있었다. 소녀상 가까이에서 내용도 좀더 꼼꼼히 읽고 사진도 찍으며 '기억의 힘'과 공동체의 노력을 떠올렸다. 그리고 연말 청소년 독서활동집을 만들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청소년 소설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푸른 늑대의 파수꾼", "그래도 나는 피었습니다..
“타인의 시간을 빼앗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265) 묵직한 말이다. 작게는 시간 약속에서, 크게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우리 국민들에게 빼앗은 것이 단 한 번뿐인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실감난다. 단 한 번뿐이기에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게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하고, 선택하고, 노력하고, 아쉬워한다. 이 책에는 타인의 시간을 빼앗는 두 시대의 폭력이 ‘타임 슬립’을 통해 이어진다. 먼저 현재의 ‘햇귀’는 겉으로는 모범생처럼 행동하지만, 햇귀에게만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태후의 학교폭력에 시달린다. 또 일제시대의 ‘수인’은 넉넉한 가정에서 가수를 꿈꾸며 행복하고 살고 있었으나 일본 경찰과 앞잡이의 계략에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가 옥고를 치르며 일본 경찰의 가정부로 산다. 그러고도 정신대에 ..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듣기가 불편하다. 식민지 상황에 좋은 일이 어찌 있을수 있겠나.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달픈 기층민, 독립운동가들에게 고통의 무게가 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그런데 무등도서관 문학실에서 책을 고르다, 명혜를 쓴 작가의 이름에 이끌려 이 책을 든 뒤로 손을 놓기가 어려웠다. 이야기속 인물들의 삶 속에서 지금도 공감되는 당대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의 모순들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있다는 것, 아직도 친일부역을 미화하거나 감추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반상의 차별이 돈으로 대체되어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오히려 양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더 나아지기는 했지만, 시민의식의 성장이라는 눈에서 볼 때,..
반도의 약소국민으로 지켜보는 역사는 매번 아픔으로 채워진다. 게다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현재와 미래를 발목 잡고 있는 역사란, 어떤 방식으로 그려도 처절하다. 그런 이유로 역사적 내러티브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일제를 배경으로 그려진 대하소설들은 역사적 상황 속에 갇혀 우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에네껜 아이들" 역시 일제강점기, 멕시코로 이주한 우리 민족의 아품을 담고 있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아이들'이란 표지가 처절한 절망으로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정도. 이 책은 1905년 1033명의 조선인이 영국인 업자와 일본인 업자에게 속아 '지상천국'이라던 멕시코에서 혹사당했던 멕시코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 '지상천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