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의 약소국민으로 지켜보는 역사는 매번 아픔으로 채워진다. 게다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현재와 미래를 발목 잡고 있는 역사란, 어떤 방식으로 그려도 처절하다. 그런 이유로 역사적 내러티브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일제를 배경으로 그려진 대하소설들은 역사적 상황 속에 갇혀 우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에네껜 아이들" 역시 일제강점기, 멕시코로 이주한 우리 민족의 아품을 담고 있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아이들'이란 표지가 처절한 절망으로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정도. 이 책은 1905년 1033명의 조선인이 영국인 업자와 일본인 업자에게 속아 '지상천국'이라던 멕시코에서 혹사당했던 멕시코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 '지상천국'이 ..
귀신과 소통이란 다소 특별한 소재를 활용해, 제목처럼 조단조단 삶을 성찰하도록 이끄는 여운이 깊으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 책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점은, 귀신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서준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서준을 잃은 가족이 폭발 직전의 상황에 놓인 것도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결국 집착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집착은 남녀 차별의식과 같은 선입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아리’ 역시 의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강한 기대와 유전학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집착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통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다는 내..
이 작가 나름 유쾌하다. 7개의 작품 매우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으면서도 유쾌하고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2011년에 출판되었는데, 왜 이제야 읽게 됐는지, 내 불찰이다. 전에 김인해 작가와 엮은 ‘한파주의보’를 읽는 적이 있는데, 이 작품집으로 문부일이라는 작가를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겼다. 1. 알바학개론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김준이 주인공이다. 고교를 중퇴했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중이다. 중3부터 알바 생활을 시작해 이 업계에서는 나름 프로라고 자부한다. 매 순간마다 자신이 프로 알바생임을 환기하며 의지를 재충전한다. 솔직히 좀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런 캐릭터들은 솔직히 현실에 좌절하며 자신의 성실성만으로는 세상을 이겨나가기 힘들다는 고통스러운 결..
‘외톨이’의 작가 김인해가 단편집으로 돌아왔다. 김인해만의 여섯 작품으로 오롯이 단편집을 채웠다. 여섯 작품 모두 수준 이상이었다. 1. 그러나 아무 일도 없듯이 배봉기의 ‘괴물 연습’이라는 단편이 떠올랐다. ‘괴물’이란 다름 아닌 성적 지상주의에 매달린 우리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든, 아는 형이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하든 오로지 시험과 성적만 생각하는 아이들! 이젠 가족 모임이나 제사, 심지어 장례식조차 뒷전이다. 이런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은 우리들이고 그 폐해가 조금씩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비약인지 모르지만 몇 년 전 성적향상을 강요하는 엄마를 살해하고 몇 개월 간 시신과 함께 지낸 고3 학생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2. 우리들의 사춘기 - ‘사춘기’는 개인적으로 ‘지랄 총..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열다섯, 비밀의 방''안녕하세요, 그에게 인사했다''마마보이와 바리스타'각각 학교폭력(방관자), 히키코모리, 동성애, 자기 삶의 주체성을 다루고 있다.중학생 수준에 맞게 이야기는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비교적 빨리 짐작할 수 있어 작가의 의도를 비교적 빨리 따라가며 소설 속 상황을 고민하게 할 수 있다.특별히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열다섯, 비밀의 방'과 '안녕하세요, 그에게 인사했다'이다.'열다섯, 비밀의 방'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야기에서는 그것이 심해 자아분열까지 일어나고 있는데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소설의 역할일 수도 있지만, 어울리지 못하는 걸 소외 또는 따돌림이라고 생각하는 분위..
1. 표지는 작가의 따님이 그린 것 같다. 의 표지처럼 선명하고 색채가 강렬하다. 서로 다른 환경의 지오와 석주가 겪는 청춘의 방황기인데,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법한 이야기 같아 몰입이 잘 되었다. 대학생이 된 두 사람이(별로 친하지 않은데), 추풍령역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그려지는 성장담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모범생인 석주가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은설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아 영동으로 찾아가는 장면이다. 다음 장면이 매우 궁금하다. 2. 작가의 필력은 놀라웠다. 끝에서 가슴 시원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유부단한 마마보이, 모범생 석주가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건강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오가 석주를 만난 추풍령역은 은월농..
독특하고, 깔끔하고, 단순하면서, 새롭고, 재미있다. 세 작품 모두 말이다. 는 학교폭력이라는 협소한 테두리보다는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과 비열함에 대한 짧고 굵은 ‘아포리즘’같은 소설이다. 재민이의 튀는 행동과 약간 과도한 자기중심적인 태도, 사소한 분노에서 폭력으로 발전하는 시욱의 행동, 개인적인 분노와 욕망을 다른 이를 통해 충족하고자 하는 호영과 회장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이나 나 자신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폭력의 흔적들이다. 작가는 짧은 분량 속에 이런 인간의 폭력성을 잘 배치해 놓았다. 은 참 따뜻한 소설이다. 특히 석이라는 인물에 무척 정이 간다. 매년 석이와 닮은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이 내신 때문에 시간을 채우기 위한 겉치레가 아닌 이웃과 함께 하는 기쁨과 보람으로 다가오기까..
의 후속작. 세 아이들 중 가장 먼저 소희의 이야기가 나왔다. 착하고, 어른스럽고, 책임감이 강했던 소희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고단한 삶이 결코 멀어지지 않는다. 고모집에서 작은집으로 이어지는 가난과 외로움은 소희를 더욱 단단하고 어른스럽게 만든다. 힘든 소희에게 마치 하늘의 선물인양 어머니와 한 집에 살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의 가정으로 들어가지만, 절대 쉽게 ‘가족’을 이룰 수는 없었다. 소희 존재 자체를 ‘마음의 족쇄’처럼 여기는 친엄마와, 엄마의 사랑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우혁이나, 그 속에 이물질처럼 섞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소희가 새롭게 가족을 이루는 모양은 아슬아슬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여기에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 마음의 위안을 찾아주는 채팅 친구 디졸브(재..
여운이 남는 이야기이다. 분명 아이들은 봄이 이야기를 '인터넷 소설'로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봄이의 외모를 보았을 때 봄이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었다. 그런데도 책을 덮고 나서 여운이 남는 것은 나 역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까.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서술자가 등장한다. 먼저, 봄이의 담임교사. 과거 이성교제에서 큰 아픔이 있었지만 고등학교 담임교사로 보낸 시간만큼 아이의 결석과 이에 대한 학부모의 반응에 여유 있게 대처한다. 교사로 대표되지만 외모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대표한다. 그리고 봄이.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의 생각을 친구 각각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액자형 소설처럼 담임교사의 외화에 봄이의..
학부모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들에게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 상황에서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할 기회는 ‘사랑’ 이외에 거의 없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이 사랑을 오래 지속하기 어려울 테니 이별을 겪으면 한껏 더 성장하지 않을까. 사실 ‘88만원 세대’는 '레디 메이드 인생'의 2009년 버전이다. 몇 년을 앞질러 가는 선행 학습과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는 우리 중딩들이 혼자 힘으로 무언가 해보고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함께 해야할 과제들은 혼자서만 처리하고, 혼자 해도 충분한 게임에서는 ‘길드’니 ‘팀플’이니 해서 의존하고 보조를 맞추고 있으니,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홀로 서기란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