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사춘기(김인해)

 

외톨이의 작가 김인해가 단편집으로 돌아왔다. 김인해만의 여섯 작품으로 오롯이 단편집을 채웠다. 여섯 작품 모두 수준 이상이었다.

 

1. 그러나 아무 일도 없듯이

배봉기의 ‘괴물 연습’이라는 단편이 떠올랐다. ‘괴물’이란 다름 아닌 성적 지상주의에 매달린 우리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든, 아는 형이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하든 오로지 시험과 성적만 생각하는 아이들! 이젠 가족 모임이나 제사, 심지어 장례식조차 뒷전이다. 이런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은 우리들이고 그 폐해가 조금씩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비약인지 모르지만 몇 년 전 성적향상을 강요하는 엄마를 살해하고 몇 개월 간 시신과 함께 지낸 고3 학생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2. 우리들의 사춘기
- ‘사춘기’는 개인적으로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공부와 입시 시 스트레스로 사춘기를 건너 뛴 아이들은, 인생의 어디쯤에서 자신이 표출해야 하는 ‘지랄’을 삼키거나 지독히도 길게 표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뭔가 합이 맞지 않는 아들과 자신의 괴리를 보며 다시 한 번 인생의 사춘기를 떠올리는 엄마 은희의 모습은 이 시대의 부모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식의 인생을 움켜쥐고 자신의 삶은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부모들 말이다.


3. 몰락
이제 우리 아이들은 직시해야 한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해서 도달한 대학이라는 곳에 어떤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지. 등록금에 허덕이며 힘든 아르바이트를 해나가다 사고사를 당한 형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일 수 있겠으나, 매우 현실적인 아이들의 미래이다. 그리고 형의 죽음으로 성장한 엄마와 동생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4. 외톨이
다시 한 번 읽어봐도 참 좋은 작품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고, 타인과의 영혼 없는 만남은 결국 고립을 만들어갈 뿐이다. 폭력과 따돌림, 힘의 세계 속 외톨이는 우리 모두다.


5. 구름은 무슨 맛
아버지의 폭력과 이혼, 재혼 속에서 담배를 접하게 된 주인공은 매우 평범한 캐릭터다. 하지만 스스로 치유하고 아버지를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된 주인공의 굉장히 건강한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라고 할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직시하며 상처를 치료하는 수빈이와 재민이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6. 화요일
좀 난해했다.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수코양이와 소희 그리고 나! 경제권을 두고 갈등하는 약사 어머니와 회사원 아버지! 이건 도대체 어떤 설정이지?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여자로 변해 버린 모습(이건 환상일까 아닐까?)에서 여성성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 신선했다. 토론 거리가 많을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31) “첫 시험인데 그날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지?”
엄마였다.
“그러면 나 시험 못 봐? 안 되는데.”

(36) 그러나 아무 일도 없듯이 2교시 한국사 시험은 계속되었다. 한 사람이 목숨을 끊었는데도 20분간 시험 시간이 지연된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20분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게임에 접속해 적들을 물리칠 수도, 119 구급차를 멈추게 해 형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도 있다. 또 시험을 관두고 학교 문을 나서 정배와 정동진으로 떠날 수도 있고, 세린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빌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아무 일도 없는 걸까?
- '그러나 아무 일도 없듯이' 중에서
(42) 호진이가 영화광이라는 걸 친구인 승훈이는 알아도 호진이 부모님은 몰랐다. 누구는 관심의 빈곤 상태이고, 누구는 관심의 과잉상태라니 참 불공평한 세상이다.

(75) 은희 씨는 곁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길 때마다 상처가 하나씩 깊어졌다. 이제 아들이 떠나려고 날개짓을 하고 있다. 보내자. 승훈이가 자신의 바다로 멀리멀리 날아가도록 하자. 대신 떠난 빈 자리를 보며 슬퍼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자. 친구가 떠나고 첫사랑이 떠나던 때처럼 지내지 말자.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찾아보기로 하자.
- '우리들의 사춘기' 중에서
(100) 빼앗긴 것을 우리가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미미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것조차 받아들이기로 했다. 몰락한 자만이 일어설 수 있었다. 나는 문을 닫고 계단을 뚜버뚜벅 올라 시청으로 향했다.
- '몰락'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그래. 지금의 내가 가서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해 주고 오라는 거야.”
- '구름은 무슨 맛일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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