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라자드(배봉기)


작가 배봉기는 <UFO를 타다>부터 줄곧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녕 라자드>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다섯 가지 질문이자, 그에 대한 절망적이거나 희망이 담긴 다섯 가지 해답이기도 하다.


용산참사의 아픈 기억을 우회적으로 되살리고 있는 어둠 속의 아이’, 

외국인과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교양 있는 중산층의 이중적인 시각을 꼬집은 안녕 라자드’,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려 친구의 죽음도 잊어야 하는 괴물을 만드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고발한 괴물 연습’, 

그리고 오해와 편견을 깨고 새로운 가족을 일구는 삼촌과 사는 법’, 

마지막으로 힘든 고백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 고백

까지 청소년들을 웅숭깊게 바라본 작가의 통찰력이 정말 놀라웠다.


앞의 세 편이 아픈 우리 현실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면, 뒤의 두 편은 작가가 나름의 해결책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민수와 삼촌이 가족으로 만나는 과정이, 그리고 승국이의 힘들었던 고백이 참 좋았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서 민수와 승국이 같은 아이들로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인상 깊은 구절>

어둠 속의 아이

12 ‘12345……순간, 그 번호들이 오전의 모의고사 답안 번호들처럼 보였다. 숱한 망설임과 실망, 절망까지 품고 있는 그 번호들. 1번이라고 생각했는데 5번이고, 3번을 찍었는데 1번이고, 영어에는 나란히 네 문제나 2번이 답인 문제들도 있었고, 수학은 마지막 세 문제의 답이 4번이었다. 시험만 끝나면 감당하기 힘들게 몰려오는 짜증과 불만과 후회.

 

안녕 라자드

65이런 점이 엄마 아빠의 장점 중 하나다. 누나나 윤호가 하고 싶지 않은 말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감정을 굳이 끌어내려고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 이렇게 스스로 하도록 참고 기다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윤호는 잘 안다. 자식을 자신의 플랜대로 만들려는, 멋대로 자기들 틀에 집어넣으려는 조급증 부모들은 어린아이보다 더 참을성이 없으니까.

 

74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학습능력을 높이고 시험점수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야. 물론 모든 학습의 기초는 독서로 다져야지. 하지만, 독서가 더욱 중요한 것은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지.

 

괴물연습

131~132 나는 지금 불안하다.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우 때문에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빨리 정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다. 어떻게든 거기서 해방되어 내 공부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멈춰 있는 것이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바로 그거다!

~겨울방학이 끝나면 다시 시작될 저 치열한 경쟁, 까딱하면 성적은 바닥에 깔리고 자존심도 산산이 부서져, 그냥 죽고만 싶은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불안하고 두렵다.

그래서 빨리 글을 써서 정우의 기억을 포장해 마음속 창고 저 안 쪽에 넣어버리고 잊고 싶었던 것이다.

 

고백

216 그날 그렇게 한 것, 나를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나 때문에 한 일이야. 내가 징계 먹고 손해 볼까 봐 겁이 나서 도망친 거야.


안녕 라자드
국내도서
저자 : 배봉기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1.08.19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