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라 오디오북의 추천으로 이 소설을 ‘들었다’. 오디오북이라도 참 대사가 많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고민시, 염정아, 최양락 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싶어 책 소개를 훑어보니 맞았다. 다른 등장인물도 배우들의 이름을 듣고 나서 연결 지어 보니 꽤 잘 맞았다. 심지어 출판사 대표가 연기자 ‘박정민’ 님이었다. 연기자의 선행을 자주 들어 왔지만 시각장애인의 위한 ‘오디오북’ 제작은 처음 들어보았다. 인상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최근에 종이책도 출간해 책 소감도 정리할 겸 다시 읽었다. 소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방송에서 보는 것처럼 배경 음악의 분위기나 장면 효과음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희곡처럼 대사도 많고. 소설과 희곡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문학이었다. 이야기는 프리랜서 성우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누나가 선물해 주었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을 담은 이야기라는데 슬픈 이야기일 것 같아 바로 펼쳐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먼저 읽은 아내가 큰아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면서 같이 읽었다. 정말 눈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였다. 고흥 동강면을 배경으로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렸다. ‘동강면’은 ‘고흥읍’보다 ‘벌교읍’이 더 가까운 고흥의 북단에 있는 곳으로 대학 때 농활로 인연이 있던 곳이다. 이후에는 도화에 있는 학생해양수련원이나 나로도 등 고흥읍 가는 길에 지나치기만 했다, 그러다 작년 동료들과 친목회 장소를 답사하다 망주산 자락의 맛집 ‘수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수문을 지나 벌교로 갔는데 그때 지나치며 보았던 길가의 풍경의 동강면의 모습이었다. ‘수문식당’이 있던 ‘수문’은 여자만 간척지의 수..
보통 단편집들이 유사한 경향을 띠는데 이 작품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단편의 수록 기준은 따로 없는 것 같다. 단편답게 대체로 열린 결말이라 독자 입장에서는 장편처럼 생각할 게 많다. ‘수록 작품 발표 지면’을 통해 8번째 ‘무겁고 높은’이 작가의 첫 작품인 것 같다. 나도 인상적인 단편부터 느낌을 메모한다. 3. 전조등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가 밤 12시 무렵이었는데 ‘블랙박스’에 뭔가 있거나 밝혀야 할 진실이 있을 것 같아 다소 오싹했다. 무난한 남자의 무난한 사랑 이야기로 특별한 사건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지만 모임 샘들은 우리나라의 표준인으로서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온 주인공의 모습을 ‘전조등’으로 상징한 것 같다고 읽었다. 정말..
모임을 오래 하다 보니 회원마다 추천하는 책의 경향이 드러날 때가 있다. 우리 모임의 박 선생님은 논쟁적이거나 해석이 다양한 소설을 여러 번 추천했다. 이 책 “예술 도둑”도 박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라 무엇을 토론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읽었다. 책은 재미있었다. 범죄를 다룬 소설이라 긴장하고 몰입하며 읽었다. “예술 도둑” 소설 제목에서 창작 과정에서의 표절이나 도용을 다루나 싶었다. 또는 들어본 작품의 뒷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그리지 않았을까 예측했는데 300점이 넘는 예술품을 특별한 도구 없이 대낮에 훔치는 도둑의 이야기였다. 그것도 1990년 대에. 작품의 마지막 ‘취재 일지’를 보면 심지어 논픽션이기까지 하다. 혹시나 싶어 주인공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는데 관련 자료가 많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
묘하다. 독자들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한데, 이상하게 끌어당긴다. 결국 마지막의 비극적인 장면에 다다라서는 뭔지 모를 감동과 슬픔에 눈물짓게 된다. 정말 이건 뭐지?낯선 언어들은 아닌데, 익숙한 문장 안에서 이상한 맥락으로 놓이니 상징 같기도 하고, 추리 소설의 실마리 같기도 하고. 엘렌이 맞닥뜨리는 이상한 상황이 생소한데,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피아니스트>와 오버랩되기도 하고. 작가가 표현하는 언어들이 논리적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지만, 선명한 이미지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하고(단어장의 빨간 줄이 비에 맞아 부풀어 오르는 장면 등), 심오한 의미를 지닌 듯도 하다. 이것은 역설? 요즘 아이들과 함께 5·18을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 시점에서 다룬 저수지의 아이들>을 읽..
이형경전>은 방한림전>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남장을 하여 과거 급제하고, 황제는 물론 모든 백성과 귀족들에게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고 칭송받는 영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큰 줄기는 같다. 하지만 방한림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동성혼을 하며 우연히 얻은 자녀까지, 겉보기에는 당시 남성으로서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는 모두 누리다 생을 마감한다. 이형경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성공하나, 유모의 지극한 방해(?)로 여성임이 탄로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고 거의 똑같은 지위를 누린다. 다만, 형경을 사모하고 아끼는 장연과 황제의 속임수에 의해 이성 결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잠시 모함을 겪고 다시 명예를 회복하며 장수를 누리다 죽는다. 방한림과 이형경이 걸어간 ..
미안하지만 이 책을 고를 때, 짧은 한시에 얇은 책이라 가볍게 여겼다. 가볍고 짧게 훌훌 읽기 좋은 책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읽는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감히’ 그렇게 호흡을 짧게 하고 읽으면 안 되는 여행기(여행시집)였다. 이 책은 (164) 이번 사행은 일곱 달 동 안 여덟 나라를 거치며 모두 육만 팔천삼백육십오 리를 다녔다고 저자가 단 한 줄로 요약하지만, 저자와 사행단이 겪었을 일곱 달 동안의 경험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힘들고, 길고, 귀한 체험이자 기록이라고 단언한다. 한시를 잘 모르고, 또한 이 시집의 목적이 여행의 기록이기에 각 시들의 우수성은 가릴 수 없지만 방문 국가나 도시마다 남긴 짧지만 강렬한 감성들은 내 개인적인 기억, 이미지와 결합해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시..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노벨문학상이 삶에 좀 더 깊이 다가왔다. 작년 말 학교 동료들과 "채식주의자" 토론, 내년 폴란드, 체코 문학기행을 앞두고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을 읽고 강의를 들었다. 이번 독서 모임에서는 "세월"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모임 덕분에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진입 장벽이 높은 소설. 그러나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시작부터 19쪽까지 과거를 회상하는 여러 장면들이 짧게 짧게 제시되는데 내용 파악도 안 되고 뭘 이야기하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20쪽부터는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20쪽부터 읽어도 될 것 같다.이야기는 서술자의 돌 무렵인 1940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독서 모임에서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와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두 책을 함께 읽은 것은 아니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추천하다 두 권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읽고 나서 보니 두 작품 모두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었다. "가녀장의 시대"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가계를 딸이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가녀장'의 시대를 상상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딸이지만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 가정에서는 모부이지만 1인 출판사의 직원이기도 한 모부가, 서로 존중하며 가사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낯설지만 평화롭게 그려진다.어머니, 아내, 며느리의 가사 노동을 가족을 위한 희생이 아닌 정당한 노동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상상에 동의하면서도 멀리 ..
끝과 시작(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500쪽에 가까운 시선집. 외국 작가 작품 번역이라는 두려움과 낯섦에 시작이 힘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의 마음이 단어들과 함께 전달되는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비록 모든 시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 와닿는 시들이 많았고 그 감동을 놓치고 싶지 않아 몇 편의 시들을 옮겨보았다. 작가도 작가지만 옮겨주신 최성은 교수님 덕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해 좋은 시집을 읽은 것이 무척 뿌듯했다.내 생각을 정갈하게 정리하기 힘들어 해시태그로 표현해 보았다. #역사의식 #따뜻하고 섬세함 #모든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 #시인의 감성으로 단어에 천착(시작부터 끝까지) #천상 시인 #유머러스한 #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