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김기태)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5. 6. 3.
보통 단편집들이 유사한 경향을 띠는데 이 작품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단편의 수록 기준은 따로 없는 것 같다. 단편답게 대체로 열린 결말이라 독자 입장에서는 장편처럼 생각할 게 많다. ‘수록 작품 발표 지면’을 통해 8번째 ‘무겁고 높은’이 작가의 첫 작품인 것 같다. 나도 인상적인 단편부터 느낌을 메모한다.
3. 전조등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가 밤 12시 무렵이었는데 ‘블랙박스’에 뭔가 있거나 밝혀야 할 진실이 있을 것 같아 다소 오싹했다. 무난한 남자의 무난한 사랑 이야기로 특별한 사건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지만 모임 샘들은 우리나라의 표준인으로서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온 주인공의 모습을 ‘전조등’으로 상징한 것 같다고 읽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까. 앞만 보고 살아온 우리들에게 주위를 바라보지 못했던 태도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아 여운이 길었다.
7. 태엽은 12와 1/2바퀴
그런 면에서 7장 ‘태엽은 12와 12와 1/2바퀴’도 약간 오싹했다. 손님이 남기고 간 검정 비닐 때문에. 이 이야기는 구성도 특이하다. 젊은이들의 에피소드와 게스트하우스의 상황이 별개처럼 느껴져 그 관계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단 12바퀴를 돌리면 다 감겼던 태엽이 12와 1/2를 더 감아야 한다는 건 ‘느슨함’, ‘나이듦’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딸의 도움을 받아 여관에서 게스트하우스로 변화를 추구했지만 삶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같았던 주인공에게 딸의 방문은 반가운 일이다. 한편 오래 전 신혼여행으로 이곳을 찾았던 남성은 알 수 없는 비닐봉지를 두고 게스트하우스를 떠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게스트하우스 근처 해변은 써핑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비슷한 공간에서 삶을 정리하려는 사람, 삶의 가장 즐거운 순간을 만끽하려는 사람이 섞여 있다. 각자의 추억을 남기며 시간은 흘러간다.
4.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제목이 특이했다. 두 사람의 국제주의? 소설을 읽으면서 ‘사회주의’를 떠올렸다. 대학 다닐 때 ‘인터내셔널가’를 몇 번 듣기도 했다. ‘기립하시오 당신도!’라는 강렬한 목소리가 울림이 크다. 기성세대로서 열심히 살아 온 두 청년에게 미안했다. 북유럽의 사민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유럽의 자본주의 정도에 다가가는 민주주의를 꿈꾼다. 그래도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어 맞게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어서 다행이다. 청년 시절의 순수했던 투쟁을 현재의 기득권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에게 ‘기립하시오. 당신도!’라는 말과 함께 청년과 노인이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고민한다.
(134) ‘스물일곱 살 인생 평가 좀’ 같은 제목의 글에 사람들이 쏟아놓는 댓글을 보면 가끔 뭘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더 잘살고 싶었다면 공부를 더 잘했어야 한다고. 솥뚜껑삼겹살도 즉석떡볶이도 먹지 말고 맥주도 마시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고 닥치고 공부해서 시험에 붙든 돈을 모으든 했어야 한다고. 남들 다 자리잡을 때 어리바리하고 게을렀던 우리가 '빡대가리'라고. 두 사람은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5. 보편 교양
학교는 보편 교양을 가르치는 곳인데 가르침의 주 대상이어야 할 학생들은 노동하느라 자면서 시간을 보내고, 형편이 충분한 은재는 충분히 보편 교양을 받는다. 그럼에도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그 뜻을 알아주는 학생이 있어 교사에게 참 보람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소설은 그런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자본론”을 교재로 선택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은재의 아빠가 컨설턴트도 추천했다는 말에 교사 ‘곽’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씁쓸했다. 은재는 학교밖에서 충분히 관리받으며 교양을 쌓고 있는데...
(158) 곽은 아무리 훌륭한 스텐드업 코미디언도 자는 관객을 웃길 수는 없다는 비유를 생각해 냈다..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인간은 굴종을 원해” 운운했던 영화 속 파시스트 악당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런 의심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 번은 종료령도 듣지 못하고 잠든 채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봤을 거라 짐작하며 어제 무엇을 했길래 이렇게 자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짜증 내는 기색 없이 입가의 침을 훔치며 겸연쩍게 말했다.
“늦게까지 배달을 해서...... 죄송합니다.”
1. 세상 모든 바다
‘세상 모든 바다(세모바)’라는 걸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팬으로 콘서트장 주변을 돌아다니다 알게 된 일본 학생에게 라이브 정보를 주었는데 팬심에서 벌어진 퍼포먼스에 의한 사고로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며 '세상 모든 바다'를 좋아했는데 바다가 부담스러워지고 한때 좋아했던 느낌도 사그라든다. 그렇다.
2. 롤링 선더 러브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서른일곱 살 조맹희의 모습이 신선하다. 어떤 목적이나 여지 같은 게 없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에서 상당한 자존감이 느껴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모르는 노래를 검색하며 들었는데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가 있어 놀라웠다. 작가에 대한 팬심이 있나 보다.
(47) “맹아. 그만 좀 퍼줘라.”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둘이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전언에 맹희도 동의했다. 혼자를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 것. 적극적으로 혼자 됨을 실천할 것. 연애는 옵션이거나 그조차도 못 되므로 질척거리지 말고 단독자로서 산뜻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
6. 로나, 우리의 별
‘아이유’ 같은 선한 영향력을 지닌 여러 연예인이 떠오른다.
(205) 만약 당신이 단지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나 일하는 데에 지쳤다면, 더 많은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데에 쓰고 싶다면,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인지 의심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우리다. 머지않은 창당 대회,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붉은 도브의 연주에 맞춰 같은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리의 별, 로나가 예고한 대로 그 노래의 제목은 ‘우리는 가능하다’이다.
8. 무겁고 높은
친구처럼 등장하는 ‘젖은 머리’는 자신의 내면인 것 같다. 집 나간 어머니, 탄광노동자였으나 인맥을 강조하며 술에 취해 사업을 하는 아버지, 모든 것을 '던지고 싶은' 상태에서 만난 '역도' 그러나 목표치 100kg은 결국 들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우울해하지는 않다. 희미하게라도 희망이 보인다.
(245) 송이는 들어보고 싶다기보다 버려보고 싶었다.
역도장 구석에 서 있던 빈 봉을 처음 잡았을 때, 송희는 이미 무겁다고 느꼈다. 검은 때가 잔뜩 밴, 길이 201센티미터, 무게 15킬로그램의 쇠막대. 아직 광택이 살아 있는 봉은 ‘에이스’들의 것이었다.
9. 팍스 아토미카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이서 두세 번 읽었다. 그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박장애, 강박증을 가진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각이 많아 어떤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지듯 확장해 가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다. ‘나’는 스스로 ‘주문’(했던 행동을 소리내어 읊는 것부터)을 만들어 보거나 완벽한 주문을 만들어 보기 위해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본인이 살려고 노력하니 희망적인 이야기일까.
제목 ‘팍스 아토미카’는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현재의 평화를 ‘핵’에 의한 평화라는 의미에서 서술자가 이름 붙인 것인데 사고 과정이 특이하다. 뇌 구조에서 전두엽으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걸러내는 등의 판단을 하는 부위가 ‘미상핵’이라고 한다. 미상(尾狀)은 ‘꼬리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서술자는 알 수 없다는 의미의 미상(未詳)으로(未詳) 받아들인다. 여기에서의 ‘핵’과 자신이 맞춰 놓는 ‘알람’에서 지구 종말 시계를 떠올리며 핵으로 인한 힘의 균형 때문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서술자가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메모하다 보니 나 역시 비슷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세상이야기를 펼쳐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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