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껜 아이들(문영숙)

 

반도의 약소국민으로 지켜보는 역사는 매번 아픔으로 채워진다. 게다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현재와 미래를 발목 잡고 있는 역사란, 어떤 방식으로 그려도 처절하다. 그런 이유로 역사적 내러티브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일제를 배경으로 그려진 대하소설들은 역사적 상황 속에 갇혀 우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에네껜 아이들" 역시 일제강점기, 멕시코로 이주한 우리 민족의 아품을 담고 있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아이들'이란 표지가 처절한 절망으로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정도.
 
이 책은 1905년 1033명의 조선인이 영국인 업자와 일본인 업자에게 속아 '지상천국'이라던 멕시코에서 혹사당했던 멕시코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 '지상천국'이 어디 있을까. 빼앗긴 나라에서 '지상천국'을 맛본 사람들은 친일부역자들 뿐이리라.
다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라 태평양을 건너며 겪는 배안의 생활, 농장 관리인의 횡포, 사고들이 한결 순화돼 그려져 소설 속 인물들에게 한결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잠든 아가 옆에서 책을 읽으며, 부모로서 한 선택이 가족을 절망으로 이끌고, 먼저 보내야 했고, 채찍에 보내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들, 너무 악착같아 자식을 먼저 두고 떠난 부모들을 보며 남일 같지 않아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고난에 대응하는 약자들의 연대와 희망 찾기 속에서는 또 다른 감동의 눈물이 나왔다.
 
책 마지막에 학교를 세우는 장면은 희망과 연대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학교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인상 깊은 구절>
(164)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 먼 곳에 안 왔겠지. 아버지의 한도 없었을 거고. 아버지는 백정으로 천대받으며 어머니까지 잃은 울분 대문에 늘 조선을 떠나고 싶어 했어. 난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고 싶어. 나 스스로 아버지가 백정이라는 사실과 내가 백정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기려 하면 할수록 백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다 말하는 거야. 남이 뭐라고 하든 난 상관없어."
 
 아픔은 감춘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할수록 아픔을 더 깊어지고 커진다. 받아들인 그자리가 반전이 시작되는 자리다.
 
(214)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윤재는 덕배와 봉삼이에게 글을 가르쳐 준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전보다 한결 명랑해졌다. (중략) 조선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마야 원주민들에게도 방법을 일러 주고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그 덕분에 힘든 일들을 함께 하면서 어느덧 마야 원주민들도 조선 사람들을 따뜻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247) "사람의 마음이 때에 따라 달라지는 거는 짐승과 달리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서리 그런 거이다.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었더라면 윤재도 감초도 다 조선으로 돌아갔을 거임메. 그러면 너를 데리고 미합중국이란 나라로 가서리 네 앞길을 잘 열어 주고 싶었디. 하지마는 사람 사는 거이 마음대로 안 될 때도 있디. 감초 아주마이가 그렇게 가고, 옥당대감도 저렇게 일어나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있으니 우리말 잘 살자고 갈 수가 없슴메."
 
에네켄 아이들인 덕배와 윤재, 봉삼이 해외 속에 한국인으로 성장한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덕배 아버지다. 삶의 지식은 교과서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적 삶이다.
 

 

에네껜 아이들
국내도서
저자 : 문영숙
출판 : 푸른책들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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