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김려령)

 

2014년 3월에 다시 읽었다.

2010년에 이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추천하기 어렵겠다는 감상을 블로그에 적었다. 작가의 의도를 다르겠지만 결국 '왕따'라는 문제를 죽음으로 끝맺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추천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은 꾸준히 이 책을 읽고 독서수행평가 검사를 하러 왔다. 아이들에게 제목의 뜻을 묻거나, 실패 다섯 개가 누구한테 있었는지,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은 누구인지, 인상 깊은 장면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아이들의 반응을 들으면서 스토리를 파악하고 있으나 자신의 삶으로 끌어와 공감하며 읽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이 영화로 개봉되고 점유율도 높게 나오면서 어떤 식으로든 거론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다시 읽게 되었다.

먼저 2010년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박했다. 그 사이 담임을 맡고, 특히 여학생 사이의 '대체공격'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상황 묘사가 잘 되었고 공감도 잘 됐는지도 모른다.

천지 엄마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나왔고, 유서를 써 실패에 묶고, 자신의 목을 감쌀 줄을 묶는 장면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우발적인 죽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천지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천지는 화연이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고, 중학교에서 조차 속좁은 아이로 대우받았으며,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으나 특별한 도움도 없었다. 오히려 미라는 상처를 더 후벼내고, 오대오 같은 사람은 사실을 말하되 진실을 보지는 못했다.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 천지는 나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쓴 것 같으나 친구들 사이에서 더 망가지기 전에, 즉 자신의 상황을 아는 사람이 더 늘기 전에 죽는 게 더 좋은 모습이라 생각한 듯싶다.

마지막까지도 가족들이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는 장면은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마음 같은 게 느껴졌다.

 

하지만 제목이 그렇듯 이 책은 천지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 천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아무도 천지의 진실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모두는 천지의 죽음과 관련돼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모두 천지에게 '우아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우아한 거짓말'은 화연이나 미라에게 한정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는 모든 목소리가 당사자에게는 결국 버텨야 하는 힘겨운 대상이 되기에 우아한 거짓말일 수밖에 없겠다 생각한다.

즉 이 책을 좁게 해석하면, 집단 따돌림에서 방관자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나 삶의 현장에서 진실을 외면하는 모든 목소리를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많은 말을 할 수밖에 없고 시시때때로 아이들의 행동을 해석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특히 성적이나 몇 가지 기준으로 아이들의 삶을 평가하도록 노출 돼 있는 우리 교사들은 '우아한 거짓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직업적 특성을 지녔다. 진실은 언제나 큰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기에 현실을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교사들의 슬픈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점이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전지적 작가시점도 천지의 마음을 찾아간다는 측면에서 아이러니이지 진실을 찾으려는 작가의 기법으로 느껴진다.

 

덧붙여 일단 전학에 대해 고민이 된다. 전학하는 것은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는 페스탈로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한편 천지와 반대 상황의 메시지도 기억난다. "설령 고약한 이웃이 있더라도 그저 너는 더 좋은 이웃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야. 착한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빠가 되는 거고, 좋은 아빠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이들이 되어야겠지. 남편이나 아내, 상사 부하 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을 바꾸는 거야.(어린 왕자 두 번째 이야기)"는 또 어찌 읽을 것인가.

 

 

**2010년에 읽고 나서 쓴 글.

5000쪽 읽기를 진행하며, 우리 3학년 여학생들이 자주 확인받으러 오는 책이다.
재미있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재미'의 의미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공감'이며 현실감이라는 말로 읽힌다. 
"우아한 거짓말".
굳이 표현법으로 이야기하면 역설법이다. '우아한'과 '거짓말'은 적어도 같이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우리 삶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얼마나 어색한 조합인가. 익숙할수록 난감한 구절이다.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 씨가 그려낸 '완득이'를 생각하며 이 책을 떠올렸다. 일단 펼치면 책장을 끝까지 넘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분은 침울하다.

요새 '창비출판사' 책들 중, 대중을 겨냥해 출간한 책들 몇 권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들의 스캔들"과 "위저드 베이커리"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대안을 찾아가는 문학 본질에는 충실하지만, 잘했다고 손뼉 치기엔 좀 불편하다. "도가니"는 문학이 아니고서는 제기할 수 없는 문제를 드러냈기에 공감하지만 몸서리쳐지는 이야기다, "엄마를 부탁해"는 자식들 모두에게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누란"은 패배적인 색깔이 짙게 느껴졌다. 시대가 비슷한 최규석의 "100도 씨"는 희망이 읽힌다.
그런데 주변의 삶이 모두 힘겹기 때문인지, 우리네 삶에 뿌리를 내린 출판사들의 책이 모두 한 장을 넘기기가 힘겹다. 보리출판사의 "내가 살던 용산"은 만화이면서도 얼마나 사회고발적인가.

그래서 "우아한 거짓말"은 '잘' 읽어야 하는 책이다.
현실의 누가 됐든, 개인적으로 읽고 그칠 책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책이다. 주변인이라면, '책'을 통해 객관화한 자신의 문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미 주변인이지만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향력을 생각해야 하니까.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도 잘 읽어야 할 것이다. 주인공이니 관계를 갖는 모든 사람에게 주인공만큼의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므로.
이야기를 그렇게 끝맺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작가의 메시지가 약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114) "신은 정말 있을까? 있으면 왜 나쁜 사람들을 그냥 둘까?"
"얘는, 그래서 잡아가는 사람도 만들었잖아. 어우, 와사비 쎄다."
"그렇구나"
"괜히 애써 무겁게 살지 마. 산다는 거 자체가 이미 무거운 거야. 똥폼 잡고 인생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들, 아직 인생 맛 제대로 못 봐서 그래. 제대로 봐봐, 웃음밖에 안 나와. 너 요즘도 책 많이 읽지?"
"머리나 식힐 겸 해서."
"이놈의 글자들 끝장을 내리라. 그러면서 전투적으로 읽으면 그거 독서 아냐. 독파지. 책하고 무슨 전쟁하는 것도 아니고."
"좋잖아, 간접경험도 하고."
"따님, 제발 직접경험도 좀 하고 사시게! 다 먹었으면 가자."
엄마는 천지 어깨를 꾹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집애야, 나한테는 니들이 신이고 종교였어.'
엄마는 큰 대접에 계란을 넣고 마구 저었다.

(148)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 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 수는 이겠지. 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 거야.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

 

우아한 거짓말
국내도서
저자 : 김려령(Kim Ryeo-ryeong)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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