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전설 용지호(김봉래)

 

청소년 소설들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청소년들의 삶도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 보기에 따라선 개별적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고 성장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또 청소년 문제가, 청소년의 성장과정 몇몇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성장 과정이라는 점에서 공유하고 풀어가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책 표지, 제목에서 느껴지듯 건강한 캐릭터 용지호가 불의에 맞서다 곤란에 겪지만 결국은 이겨낸다는 건강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기엔 몇몇 고민거리들이 있다.

 

먼저 가정과 학교의 문제가 눈에 띤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정은 조기 퇴직에 대한 위협, 막대한 사교육비 지출로 경제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도 청소년의 성장에 이로운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지식정보화사회의 학교는 여전히 산업사회의 시스템으로 경쟁과 통제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오밤이나 지호의 따돌림을 알아채지도 못할뿐더러 이야기할 여지도 주지 못한다. 가정이나 학교 모두 교육할수록, 청소년들은 자아와 안정, 배움에서 멀어진다는 역설적 상황에 빠진다.

 

오히려 가정과 학교를 벗어난 곳에서 일어난다.

지호에게 자전거 라이딩이 없었다면, 또 무지개다리 금사모사람들이 없었다면 지호는 따돌림이라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실제로 따돌림이 일어나는 학교 현장에서 힘겨워하는 지호에게 스텔스와 쿵따리 아저씨의 응원은 현실적으로 읽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읽어야할 것 같다.

 

그래서 학교 담임에 분노하게 된다. 청소년 소설에서 교사의 악역은 성장과정의 특성상 일정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담임은 정말 최악이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도 이해가 잘 안 된다. 2학기가 돼서도 반 아이 이름도 못 외우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문제다. 특히 노동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제 할 일이나 잘 했으면 좋겠다.

손톱 깎아주며 소통하는 국어 샘이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면 학교 문제는 학교에서 해결이 가능했을까. 여러 가지로 가정해 본다.

 

이야기에 자전거 좀 탄 사람의 경험이 잘 녹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김포에서부터 춘천까지 라이딩하면 자연과 합치되는 경험을 하는 것도 같다. 양재천과 탄천은 몇 번 오르내린 것 같기도 하다. 동네 앞 뚝방길에서 풍경 바라보는 느낌도 난다. 올해는 자전거에 아기 안장을 달아 막내를 태우고, 큰아이와 영산강 옆 자전거 도로를 소요음영하고 싶다.

 

아참, 청소년을 마음에 두고 쉽게 쓰는 것은 좋지만 다음 이야기를 미리 흘리는 방식은 이야기의 몰입을 떨어뜨려 눈에 거슬린다. 지호와 같은 중3 남학생들이나 너무나 조용한 아이들에게, “미안해 스이카와 견주어서 읽어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37~39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하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너희는 지금 몇 시를 지나고 있니?”

오전 아홉 시요.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잖아요.”

저는 점심시간요. 항상 배고파요.”

밤 열두 시요. 전 이미 인생 종쳤어요.”

 

지호도 자신의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 취급을 받기도 하고. 나이를 먹었으니 어른스럽게 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시키는대로 하면, ‘스스로 못 하니?’ 스스로 결정하면, ‘왜 멋대로 하니?’하고.

지호는 자신이 어두운 밤도 아니고 밝은 아침이라고 하기도 뭐한,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호는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봤다. 비가 조금씩 그쳐 가고 있었다.

✎ 아이들과 이 시를 가지고 자신의 시간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지호가 이편도 저편도 아닌 경계의 시간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시간에 대해 토론해도 좋을 것 같다.

 

173 “드래곤, 물러서거나 도망가면 안 돼. 너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걷어치울 수 있는 건 너 자신밖에 없어. .... 드래곤을 만난 후 난 항상 즐겁고 행복했어. 드래곤과 함께 달리는 것도 좋고, 무지개 다리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 자전거를 타면서 내가 더 멋지고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해. 신기하지 않니? 그냥 바퀴 두 개 달린 쇠붙이일 뿐인데, 자전거는 내가 발을 휘저으면 야생마처럼 살아서 움직이잖아.”

✎ 뭔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삶 전체에 활력을 준다. 그 몰입의 대상이 신체적인 것이었을 때 가장 효과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  드래곤, 요즘도 그 녀석들이 괴롭혀?”

“...

만서 싸우기가 겁나?”

“.... 솔직히.”

왜 겁나는지 알아? 아직 싸워 보지 않았기 때문이야. 싸움 한복판으로 뛰어들면, 두려움 따윈 금방 잊혀진다고.”

✎ 스텔스 형의 말처럼 한복판에 뛰어들면 두려움이야 잊힐 수 있겠지만, 그 한 복판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겁이 나는지...

 

234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아물 뿐, 흔적은 그대로 남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상처를 받게 될까. 또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써야 할까?

 

✎ 해피엔딩은 없다. 좀더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갈 뿐.

 

흑룡전설 용지호
국내도서
저자 : 김봉래
출판 : 문학동네 2014.01.20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