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금이)


학부모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들에게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 상황에서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할 기회는 ‘사랑’ 이외에 거의 없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이 사랑을 오래 지속하기 어려울 테니 이별을 겪으면 한껏 더 성장하지 않을까.

사실 ‘88만원 세대’는 '레디 메이드 인생'의 2009년 버전이다.
몇 년을 앞질러 가는 선행 학습과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는 우리 중딩들이 혼자 힘으로 무언가 해보고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함께 해야할 과제들은 혼자서만 처리하고, 혼자 해도 충분한 게임에서는 ‘길드’니 ‘팀플’이니 해서 의존하고 보조를 맞추고 있으니,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홀로 서기란 참 어려운 상황이다.

독서토론을 해 보니 우리 어른들은 사랑에 대한 어떤 정형이 있는 것 같다. 편지 등으로 어렵게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만나고, 어느정도 확신이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사귄다'고 조심스럽게 알리며, 둘 만의 관계가 아닌 나를 포함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시작한다.
그런 우리들의 시각에서 동재의 첫사랑 이야기는 밋밋하다. 그러나 요새 아이들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
사귄다지만 겉으로는 특별한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헤어졌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 사이 아이들은 메신저, 핸드폰 문자 등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커플링, 노래방 고백 등으로 관계를 맺으려 든다. 그러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안 되었든, 진솔한 감정이 아니었든 그런 이유로 금방 관계를 끝맺는다.

사실 '사랑'의 시작은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데서 시작한다.
찬혁이는 연아가 쓴 러브장을 친구들에게 돌리면서도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동재 역시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별로 없다. 찬혁이가 시시때때로 상품을 선물하는 것이나, 동재가 100일이나 커플링에 집착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기 보다는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의 일방적인 마음 표현이다.

결국 이 책, 사랑에 대해서 별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의 맥이라 할 갈등도 사건도 없다. 그래서 밋밋하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긴 했으되 이 작품으로 무엇을 바라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모습이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제 푸는 기술은 잘 알지만 사랑의 기술은 잘 모르는. 심지어 교과서에서조차 사랑을 다룬 문학 작품을 수없이 공부하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잘 파악하지 못하는, 그렇게 배우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우리 아이들을.

어설프고 사랑같지 않아보이는 동재의 사랑도 사랑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동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도 사랑이고, 지고지순하게 보이는 앞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도 사랑이다.
또 설레는 감정보다는 편함과 정으로 재혼한 사랑도 사랑이다. 

사랑의 힘, 사랑하의 마음, 아이들 수준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117) 동재는 첫눈이 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이제는 남자답게 고백하리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다는 말도 숨기지 않고 하리라. 흩날리는 눈송이 하나하나에서 종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첫사랑
국내도서
저자 : 이금이
출판 : 푸른책들 200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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