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5. 11. 25.

지루하게 내리는 가을비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리는...슬프고 비루한 춤, 사탄탱고
신랄하다. 잔인할 정도로. 그리고 묘사가 매우 디테일하다. 그냥 디테일한 수준이 아니라 아름다움보다는 추한 것을, 고결한 것보다는 비루한 것을 매우 생생하게 거부감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2부 ‘그저 일과 걱정뿐’에서 이리미아시의 손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모습은 거의 괴물 혹은 불가촉천민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이 아닌 다른 외계 생명체 같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그 어떤 동정의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로 서로를 조롱하고 혐오한다. 그리고 인물들의 모든 언행에서 그들의 운명을 암시하고 결국에는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만다. 독자로서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고 따라가지만, 그렇게 될 줄 알았음에도 함께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파멸의 끝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솔직히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모두 파멸하기를 나도 진심으로 바랐던 것은 아닐까? 하.하.
-궁금한 점,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점들-
① 원점 회귀 소설? 아니면 의사의 기록 속에 갇힌 액자 소설?인가?
(부연 : 사탄탱고는 끝이 없는 고통스러운 무한반복 혹은 회귀의 춤? 의사가 써 내려간 글 속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
② 에슈티케는 왜 고양이를 죽였으며, 고양이를 죽인 의미는?
③ 가장 막돼먹은 아이 이름을 ‘서니’로 지은 이유는?
④ 술집 어둠 속에서 무한 증식하는 거미가 상징하는 의미는?
⑤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목격한 귀신의 의미는? 정말 에슈티케일까? 죄책감이 빚어낸 환상일까?
⑥ 도대체 왜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이토록 무기력하고 진창 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작가가 차례라고 표기하지 않고 ‘춤의 순서’라고 한 목차
| 1부⇒⇒⇒ | ⇒2부 |
| ⇑⑥ 거미의 작업Ⅱ -악마의 젖꼭지, 사탄탱고 | ⇓⑥ 이리미아시가 연설을 하다 |
| ⇑⑤ 실타래가 풀리다 | ⇓⑤ 되돌아본 광경 |
| ⇑④ 거미의 작업 | ⇓④ 천국의 비전인가, 환각인가 |
| ⇑③ 뭔가 안다는 것 | ⇓③ 다른 방향에서 본 광경 |
| ⇑② 우리는 부활한다 | ⇓② 그저 일과 걱정뿐 |
| ⇑<시작>① 그들이 돌아온다는 소식⇐⇐⇐ | ⇓① 원이 닫히다 |
-인상 깊은 구절-
43 “시계가 둘인데” 하고 체구가 큰 사내가 다른 사내에게 말한다. “시각이 제각각이군. 둘 다 정확하지 않고. 여기 우리 시계는…….” 그가 보기 드물게 길고 가느다란 섬세한 검지로 위를 가리키며 말한다. “너무 느리게 가네. 저쪽 시계는…시간이 아니라 처분을 기다리는 영원한 순간을 가리키는 것 같군. 비를 맞는 나뭇가지나 우리나 마찬가지야. 거부할 방법이 없지.”
✍ 작가는 이렇게 시작부터 작품 내내 작중 인물들이 처분을 기다리며 마냥 비를 맞는 나뭇가지와 같은 존재로 그려낸다. 그들의 최후가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다양하게 표현한다.
71 (이리미아시) “그자들은 여전히 더러운 의자에 주저앉아 저녁마다 감자 요리나 먹으면서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의아해하고 있을걸. 의심에 가득 차 서로를 감시하고 조용한 방에서 큰 소리로 트림이나 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끝도 없이 기다리다가. 누군가 자기들을 속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겠지. 돼지를 잡는데 혹시 뭐 주워 먹을 거라도 떨어질까 싶어 바닥에 배를 댄 채 도사리고 앉아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말이야. 그자들은 옛날 성에서 시중을 들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주인은 벌써 머리에 총알을 박고 자살하는데, 저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체 주위에서 우왕좌왕하는 거야….” “상상이 지나치네, 대장. 듣고 있자니 속이 안 좋아지잖아!” 페트리너는 꾸르륵대는 배에다 손을 갖다 댄다. 하지만 한창 흥이 나는지 이리미아시는 그의 말을 무시한다. “주인 잃은 노예들인 주제에 명예와 자부심과 용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들 하지. 그 믿음으로 저자들은 살아간다는 거야. 둔한 마음 깊은 곳에선 저런 덕목들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하고 있겠지만 말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그저 저 말들의 그늘 속에서 살고 싶은 것뿐이니까.”
87 (의사) 그러다 몇 달 전에 그는 더 이상의 실험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설령 자기가 원한다 해도 이제는 어떤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저렇게 변화를 줘봐도 썩 흡족하지가 않았다. 시도는 무언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욕구의 은밀한 현시거나, 혹은 기억력 쇠퇴의 증표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가 몰두한 것은 주변의 외적인 몰락에 맞서 자신의 기억력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한 위협적인 공격에 헛된 저항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음험한 몰락에 자신의 기억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136 (술집주인) 꿈을 이루기 위해 평소 불끈하는 자신의 성격과 경멸감을 억제할 줄 알았다. 그는 꿈을 정말로 이루려면 언제 어디서나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주의한 한마디의 말, 잘못된 한 번의 계산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때때로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휩쓸리는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손해를 보았다. (중략) 그런데 과연 이리미아시라고 하는 저 뼈만 앙상한 잿빛 머리를 가진, 생기 없이 쳐다보는, 말상의, 쓰레기 같은, 망종인, 쓰레터의 바퀴벌레 같은 놈을 제압할 만한 숫자가 있을까? 과연 어떤 수자가 지옥에서 곧장 온 사기꾼을 이길 수 있을까?
147 헐리치 눈에 슈미트 부인은 바로 저 여름의 헌신이었기에, 살인적인 가을과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겨울 그리고 요란하지만 충족을 주지 않는 봄만을 알고 있는 그에게는 닿을 수 없는 계절이나 마찬가지였다.
150 (슈미트 부인)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감은 눈꺼풀 아래서 소녀 시절부터 꿈꿔왔던, 하지만 빈민촌으로 처박혀버리고 만 마법 같은 꿈(‘살롱에서 티타임을 갖는, 수천 번 꾸어온 꿈’)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걸 놓쳐버렸다는,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낡고 익숙한 절망이 그녀의 부푼 가슴속에 퍼져 나갔다. 이제 와서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닥쳐올 삶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면 되는 걸까? ~ 홍당무처럼 보기 싫은 얼굴에 얼뜨기인 남편 슈미트와도 살았는데, 이리미아시와 함께라면 어떤 인생사라도 헤쳐 나가지 못할 리 없었다.
158 (에슈티케) 사실 소녀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소녀를 찾기는커녕 집에 누가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디 멀리 가 있으라고 하는 게 가족이었다. 문 가까이에 있으면서 어디 멀리 가 있는 일을 소녀는 할 수 없었다. 소녀는 두 가지 명령을 동시에 따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아무도 살 수 없는 나라에 사는 셈이었다.
✍ 이 부분을 읽을 때 왠지 소녀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 (후터키) 이리미아시가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맹목적인 믿음 자체가 그 어떤 가능성들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직 이리미아시에게만 농장 사람들이 포기하여 내버린 일들을 다시 건져 올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200 (교장) 나 맑고 또 누가 이런 어중이떠중이를 지도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는 계획을 준비하고 필요한 일들을 조직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에 총대를 메야만 했다!
219-220 (후터키의 회상) 그러나 바닥 없는 어리석음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법, 그(이리미아시)가 결국은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가 자취를 감추자마자 상황은 비탈길을 내리구르듯 나빠졌고, 농장은 점점 더, 갈수록 어려운 형편으로 내려앉았다. 냉해가 덮쳤고 구제역이 발생해 양들이 하나둘 쓰러져 죽었으며, 돈이 없어 급료가 한 주씩 뒤로 미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가게 문을 닫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종일 정든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 시간을 보냈고, 어쩌다 돈이 조금 생기면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술을 마시는 데 써서 없애버렸다. 그는 이 마을에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저 죽을 때까지 이 마을에 머무를 뿐, 달리 어떤 수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지난날들 위에다 새로운 날을 쌓아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236 (이리미아시) 이 슬픈 비극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와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이 일에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243 솔직히 말씀드리면, 시간이 지체되고 있어서 저는 조금 불편한 심정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저희는 다시 시내로 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비극적인 이 상황에 가능하면 빨리 종지부를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50 그런데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인생다운 인생을 잃어가며 그 몰락 속을, 발을 질질 끌며 어정거리고만 있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은 차례차례 실패로 돌아가고, 여러분의 꿈도 깨지고 맙니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기적을 바라면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이끌어줄 구원자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믿고 희망을 걸어볼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251 여러분은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무기력은 말하자면 죄악입니다. 그런 허약함도 죄악입니다. 그런 비겁함도, 여러분은 죄악입니다! 그런 것들 탓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자산에게도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53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슈티케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벌이자 경고였으며, 그 아이는 우리를 위한 희생자였으니까요. 현재보다 합당한 여러분의 미래를 위한 희생자였으니까요!
✍ 초반에 등장했단 이리미아시가 이런 명연설을?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린 순간 마지막 연설에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정말 사기꾼이구나!
267 (술집주인) 그는 화내고 경고하고 간청하기까지 하면서 ‘촌무지렁이들’을 예정된 재난으로부터, 그들 모두를 파멸시킬 재난으로부터 구해내려 했지만(“제발 정신 좀 차려요! 저자가 당신들 코를 꿰어 끌고 다니는 거란 말이요!”) 마치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소용이 없었기에, 기어이 혼 세상을 저주하며 치욕적인 파산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271 (후터키) 지금껏 머물러 살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떠날 용기가 없었다. 짐을 싸면서, 그는 모든 가능성을 도둑맞고 하나의 덫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덫에 걸릴 것만 같은 예감에 휩싸였다. 그는 기계실과 농장에 갇힌 죄수였지만, 이제는 미지의 위험에 자신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288 (후터키) 그자는 마치 선교사처럼 연설을 했고 우린 그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지. 정말 모르겠어. 그는 우리가 원하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가 그 바보 계집아이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을 때 사실 우리가 듣고 싶어 한 얘기는, 자 이제 그만, 사람들아,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이제 그만 우울해하고, 뭔가 쓸모 있는 일을 벌여보자, 같은 거였단 말이야. 한데 웬걸!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죄를 지었는가요, 라니! 그런 말을 들으면 이성이 멈춰버리지. 그가 장난을 치는 건지 진심인지 아무도 몰랐을 거야.
304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소년은 그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 참았다. 그는 선택받은 자의 자부심을 느끼며 진중하게, 자기 스승의 발걸음마저 따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코흘리개 악동이 아닌 ‘남자’로서 처신해야만 완수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309 그냥 뭘 하려고 들지를 마! 남자답게 처신해라!
336 이제 그들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전진하게 만들었던 꿈이 효력을 다하고, 드디어 쓰디쓴 각성이 찾아왔다. 그것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이후에 소스라치게 놀랄 만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다. 그들이 농장을 떠난 것은 냉정한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몹쓸 충동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건너온 다리를 부숴버림으로써 돌아갈 기회마저 영영 잃었다.
347 (이리미아시)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전 지역으로 흩어져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저들이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게 만든 뒤에 여유를 두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계획에 착수하는 것”이라고 이리미아시는 말했다.
✍ 와 진짜 진짜 진짜 사기꾼!
355 (후터키) 그는 지금 굶주리고 얻어맞은 몸이 되어, 느닷없이 나타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 앉아 있었다. 갈림길이 나와도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낡은 트럭이 자신의 생을 결정하는 것을 그는 다만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헤어날 길이 없다.’ 무감각하게 그는 생각했다.
370 (두 서기) 그들은 스스로를 너무 고문하지 말고 가능한 선에서 적당한 표현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372 두 사람 중 하나가 말했듯이 이 작업은, 아니 이 싸움은 “따귀를 맞는” 봉변처럼 느껴졌다. 그게 아니라면 “바닥 없는 난폭한 어둠의 구덩이에서 교차하는 원시적인 둔감함과 소름 끼치는 공허함”(!) 같은 표현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이 무슨 언어의 남용이며 자의적인 은유의 혼돈이란 말인가? 여기에는 인간 정신을 특징짓는 일말의 정확성이나 순수함, 명확성 따위는 흔적조차 없었다. (이리미아시가 표현한 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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