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1(빅토르 위고, 민음사)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6. 2. 4.

드디어 영접을 시작했다.
총 2556쪽, 5권의 대하 소설! <태백산맥>, <토지>를 읽기 시작할 때만큼 설레고 긴장했다.
솔직히 분량에 대한 압도감보다는 뮤지컬, 영화 등으로 시청각적 이미지가 너무 생생하게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 그런 사전 경험이 상당히 부담이 되긴 했다. 초반 200쪽 읽는 동안 머릿속에는 뮤지컬 속 주제가들이 BGM처럼 깔렸다. 그런데 그게 방해가 되기보다는 (웃기는 일이지만)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런 몰입감으로 이 책을 체코‧폴란드 문학기행 중 비행기 안에서, 일정 끝나고 숙소에서 읽었는데,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나서 몇 가지 놀랍고 낯선 점을 정리해 보자면,
첫째,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중심 줄기는 장 발장이라는 비운의 주인공 이야기이지만 1800년대 격동의 프랑스 역사에 대한 서술이자, 하층민의 삶에 대한 사회 리포트이자, 미리엘 주교의 눈으로 본 종교서이면서, 인간의 윤리적 심연을 고뇌하는 철학서라는 것이다. 솔직히 현대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낙제점일 것이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분명한 색깔을 지니고 있고, 심지어 서술자가 친절하게 정리해 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래서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당대 독자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둘째, 1권 부제는 ‘팡틴’이지만, ‘미리엘 주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심어주는 것 같다.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는 미완의 혁명의 시대이지만, 가장 밑바닥에 깔고 모두의 가슴 속에 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1권 절반 가까이 이야기한다. 미리엘 주교님의 말씀과 행동들 중에 밑줄 긋고, 필사하고 싶은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만큼 작가의 단순하고 명료하고 반복적인 주제 의식에 나도 열렬히 빠져 들었던 같다. 이제 소설의 시작인데 말이다. 참고로 뮤지컬에 나오는 배우들이 장기적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 발장을 연기한 배우가 미리엘 주교 역을 맡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것도 내 생각에는 의미심장하다.
셋째, 미리엘 주교 이상으로 1권에서 가장 많이 할애하는 곳이 가짜 장 발장이 나타나 진짜 장 발장이 고뇌하는 장면이다. 자베르가 다녀간 이후로 밤을 새우며 마들렌 시장으로 살아가며 모두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헌신할 것인가, 억울하게 누명 쓴 가짜 장 발장 한 명을 살리고 죄수 장 발장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여기에 팡틴의 딱한 사정까지 얹혀지고, 심지어 죄수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달려가는 물질적인 거리와 시간은 고되고 힘들 뿐이다. 마치 장 발장을 마지막까지 시험하는 것처럼! 이렇게 장 발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뇌하고 결정하는 장면 속에서,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존재적인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넷째, 아직도 네 권이 남아 있는데 1권은 팡틴의 죽음과 장 발장의 탈주로 끝이 났다. 과연 네 권은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질까? 하는 궁금함이 남는다. 그런데 답답함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2026년! 카프카, 쿤데라, 차페크, 시엔키에비치, 쉼보르스카, 프루스의 여운을 안고 빅토르 위고를 만나는 길이 참 행복할 것 같다.
-1권 인상 깊은 구절-
<미리엘 주교, 비앵브뉘 예하>
12 옛 프랑스 사회의 붕괴, 자기 집안의 몰락, 1793년의 비참한 광경, 더욱더 커져 가는 공포심을 품고 멀리서 바라보는 그들 망명자들에게는 아마도 한결 더 무시무시했을 그 광경, 이러한 것들이 그의 마음속에 탈속둔세(脫俗遁世)의 생각을 싹트게 했을까? 국가의 재변으로 자기 생존과 재산에 타격을 받아도 끄떡없을 사람도 그 가슴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때로는 전도시키는 저 신비롭고 무서운 타격이, 그가 빠져 있던 오락과 애정의 삼매경에 갑자기 떨어진 것일까? 그건 아무도 말할 수 없으리라.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왔을 때 사제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13 “폐하께서는 한 노인을 보고 계시옵고, 저는 한 영웅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제각기 얻는 바가 있는 셈입니다.”
22 주교들은 으레 종교상의 명령이나 교서의 첫머리에 자신의 세례명을 쓰게 되어 있는데, 이 지방의 가난한 사람ㄷㄹ은 일종의 본능적인 애정에서 주교의 여러 성명 중에서 뜻이 있어 보이는 이름을 골라 그를 비앵브뉘(bienvenu, 프랑스어로 환영한다는 뜻) 예하라고 불렀다.
30-31 성자가 되는 것은 예외요,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통칙이다. 방황해라, 태만해라, 죄를 지어라.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가급적 죄를 적게 짓는 것은 인간의 법이다.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은 천사의 꿈이다. 지상의 만물은 죄를 면치 못한다. 죄는 인력(引力)이다.
31 “여자와 어린이, 하인, 약자, 빈자, 무식자들의 과오는 남편과 아버지, 주인, 강자, 부자, 학자들의 탓이다.” 그는 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무식한 자들에게는 가급적 여러 가지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무상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사회의 죄다. 사회는 스스로 만들어 낸 암흑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음속에 그늘이 가득 차 있으면 거기에 죄가 범해 진다. 죄인은 죄를 범한 자가 아니라, 그늘을 만든 자다.”
38 빈자와 환자와 고통 받는 자들에게 바치고 남은 시간에는 일을 했다. 어떤 때는 정원의 땅을 갈고, 또 어떤 때는 독서하고 글을 썼다. 이 두 가지 일에 대하여 그는 한 가지 말밖에 쓰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뜰을 가꾸는 일”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정신도 뜰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47 언젠가 마글루아르 부인이 슬쩍 비꼬듯이 주교에게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무엇이고 죄 이용하시는데, 이 땅은 버려 두시는군요. 꽃보다는 샐러드용 채소라도 심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주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글루아르 부인, 그건 잘못된 생각이오. 아름다운 것은 유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익해요.” 그러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 “아마 더 유익할 거요.”
49 (성서 여백에 적어 놓은 메모)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의사의 집 문은 결코 닫혀 있으면 안 되고, 목자의 집 문은 늘 열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대에게 숙소를 달라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지 마라. 스스로 이름을 밝히기 거북한 자야말로 특히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300~301 난 김에 말해 두는데, 장님이 되어서도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완전한 것이 없는 사바세계에서는 실로 지상 최고의 행복 중 하나. 끊임없이 우리 곁에 한 여자가, 한 처녀가, 한 누이가, 한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그것, ~~~ 불구의 몸이 되어 갈수록 더 자기가 강력해짐을 느끼는 것, 어둠 속에서, 그리고 어둠을 통하여 스스로 태양이 되어 그 둘레를 그 천사가 맴돈다는 것, 이런 행복에 필적할 만한 행복은 거의 없다. 인생 최고의 행복은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이다.
<장 발장>
143 주교가 이 ‘노형’이라는 말을 약간 정중한 듯하면서 점잖은 목소리로 말할 때마다 사나이의 얼굴은 환히 빛났다. 죄수에게 ‘노형’이라는 말은 메뒤즈호의 조난주에게 주는 한 컵의 물과도 같았다. 모멸을 받아 온 자는 존경받기를 갈망한다.
158 그는 이제 장 발장이 아니었고 24601호였다. 누나는 어찌 됐을까? 일곱 아이들은 어찌 됐을까? 누가 그걸 걱정할까? 톱으로 밑동이 잘린 어린 나무의 한 줌 나뭇잎들은 어찌 되는가?
172 파브롤의 소심한 가지 치는 일꾼이자 툴롱의 무서운 죄수였던 장 발장은 십구 년 동안 형무소에 형성해 놓은 그대로 두 가지 악행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는 자기가 받은 악에 대한 보복으로서 행하는 급속하고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악행이요, 둘째는 그러한 불행이 줄 수 있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서 마음속에서 따저 생각한 나머지의 진지하고 중대한 악행이다. 행동하기 전에 그가 하는 사색은 연속적인 세 단계를 거쳤는데, 그것은 어떤 종류의 기질을 가진 자들만이 거칠 수 있는 순서로서, 추리, 의지, 집요함이었다. 그의 행위의 원동력은 상습적인 분노, 마음의 고통 자기가 당한 불공평에 대한 뿌리 깊은 감정, 반발이었다.
192 “잊지 마시오. 결코 잊지 마시오.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고 내게 약속한 일을.”
꿈에도 약속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주교는 그 말을 할 때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永罰)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죠.”
291 그는 두 명의 선생에게 나라에서 주는 박봉의 두 배가 되는 수당을 자기 돈으로 지급했는데, 어느 날 그것을 보고 놀란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 제일의 두 공무원은 젖먹여 키운 어머니와 학교 선생님입니다.”
297 “여러분, 이걸 잘 기억해 두시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303 또 한 가지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그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굴뚝 청소를 하고 다니는 사부아 소년이 시내에 들어올 때마다 시장이 소년을 불러들여 이름을 묻고 돈을 주곤 한 일이다. 사부아 소년들은 저희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했고, 일부러 찾아가서 돈을 얻어 가는 소년도 많았다.
401 속인들은 그의 가면을 보지만 주교는 그의 얼굴을 보고, 속인들은 그의 생활을 보지만 주교는 그의 양심을 볼 것만 같았다. 그러므로 아라스에 가서, 가짜 장 발장을 해방하고 진짜 장 발장을 고발해야 한다! 오호라! 그것이야말로 최대의 희생이고, 가장 비통한 승리이고, 뛰어넘어야 할 마지막 한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래야만 했다. 아, 애달픈 운명이여! 그는 인간들의 눈앞에서 치욕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눈앞에서 신성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인가!
415 그런데 그는 아무리 해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의 명상 밑바닥에 있는 그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줄곧 빠져드는 것이었다. 천국에 머물면서 악마가 될 것인가! 지옥에 돌아가서 천사가 될 것인가!
485 “배심원 여러분, 피고를 석방해 주십시오. 재판장님, 저를 포박해 주십시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저입니다. 제가 장 발장입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었다. ~ 그러는 동안 재판장의 얼굴에는 동정과 슬픔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차장 검사와 얼른 눈짓을 교환하고 배석 판사들과 몇 마디 소곤거렸다. 그는 방청객들을 향해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말투로 물었다.
“여기에 의사분 계십니까?”
512 장 발장은 두 손으로 팡틴의 머리를 들어 아기를 누이는 어머니처럼 그 머리를 베개 위에 잘 올려놓고, 슈미즈의 끈을 매어 주고, 모자 속으로 머리털을 쓸어 넣어 주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그 순간 팡틴의 얼굴이 이상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521 그러므로 팡틴은 모두의 것이면서도 아무의 것도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보내는 저 무료 묘지의 한쪽 구석에 매장되었다. 다행히 천주는 그 영혼이 어디 있는지를 아신다. 사람들은 팡틴을 아무 유골 사이든 상관없이 어둠 속에 누였다. 그녀는 잡다한 유해들과 뒤섞였다. 그녀는 공동 묘혈에 던져졌다. 그녀의 무덤은 그녀의 침대 같았다.
<팡틴>
276 “정말, 전 제 딸아이들 고향으로 데려갈 수가 없어요. 일을 하려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아이가 딸리면 일자리를 찾을 수 없거든요. 그곳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제가 댁의 여인숙 앞을 지나게 된 건 주님의 뜻이에요. ~ 우리 애를 맡아 주시지 않겠어요?”
290 마들렌 아저씨의 수입은 굉장해서 이 년 만에 벌써 두 개의 널따란 작업실이 있는 큰 공장 하나를 세울 수 있었는데, 하나는 남자들을 위한 작업실이고, 또 하나는 여자들을 위한 작업실이었다. 굶주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기에 갈 수 있었고, 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빵과 일을 얻을 수 있었다. 마들렌 아저씨는 남자들에게는 성의를, 여자들에게는 정숙을, 그리고 모두에게는 정직을 요구했다. 그는 남녀를 분리하여 처녀들이 부인들이 정절을 지키도록 작업실을 둘로 나누었던 것이었다. 그 점에 관해서는 그는 준엄했다. 그가 말하자면 너그럽지 못했다고 한다면 오직 그 점에 관해서 뿐이었다. 몽트뢰유쉬르메르는 위수지여서 풍기가 문란해질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그는 더더욱 엄격했던 것이다.
320 어떤 사람들은 오직 지껄여야 할 필요에서 악인이 된다. 그들의 대화는, 객실이나 응접실에서의 한담설화는 순식간에 장작을 태워 버리는 벽난로와도 같다. 그들에게는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 그 연료란 곧 이웃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팡틴을 지켜보았다.
334 이 팡틴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가 한 여자 노예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빈궁에게서.
굶주림에게서, 추위에게서, 고독에게서, 버림에게서, 궁핍에게서. 비통한 매매. 한 영혼과 한 조각 빵과의 교환. 빈궁은 제공하고, 사회는 받아들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법칙은 우리의 문명을 지배하지만, 아직도 우리 문명에 침투하지 못하고 있다. 노예 제도는 유럽 문명에서 소멸됐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것은 항상 존재하지만, 이제는 여자만을 짓누르고 있는데, 그것을 매음이라 부른다.
그것은 여자를 짓누른다. 다시 말해서 우아함, 연약함, 아름다움, 모성을 짓누른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작은 수치 중 하나가 아니다.
<자베르>
309 그는 금욕주의자이고 진지하고 엄격했다. 그는 침울한 몽상가였고, 겸손하면서도 광신자들처럼 거만했다. 그의 눈초리는 송곳이었다. 그것은 싸늘했고 날카로웠다. 그의 전 생애는 다음의 두 가지 말로 요약된다. 감시와 경계. 그는 이 세상의 가장 구부러진 것 속에다 직선을 가져다주었고, 자기의 유용함을 양심으로 삼고 자기의 직무를 종교로 삼았으며, 목사가 그러하듯 탐정이었다. 그의 손 아래 떨어지는 자는 불행할진저! 그는 제 아비가 탈옥한다면 아비라도 포박했을 것이며, 제 어미가 금령을 범했다면 어미라도 고발했을 것이다. ~ 무자비한 감시자요, 완강한 정직이요, 냉정한 밀정이요, 비도크 속에 사는 부루투스였다.
362-363 자베르는 무엇이고 마음 속에 품은 것이 역시 얼굴에도 나타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 한마디 없이,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진정한 겸손과 태연한 체념 속에서 조용히, 근엄하게, 모자를 손에 들고, 눈을 내리깔고, 장교 앞의 병사와 판사 앞의 죄인의 중간쯤 되는 표정을 띠고 시장이 돌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나르디에 부부>
279 그들은 만약 무슨 불길한 불이 우연히 그들 마음속에 일어나면 쉽사리 흉악해지는 영특한 성질의 사람들이었다. 여자한테는 짐승 같은 근성이 있었고, 남자한테는 거지 같은 소질이 있었다. 둘 다 악의 방향에서는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최고도로 잘해 낼 사람들이었다. 세상에는 가재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있어서 노상 어두운 쪽으로만 뒷걸음질 치고, 인생에서 전진을 하기보다 오히려 후퇴를 하고, 자기의 추악함을 증가시키는 데 경험을 사용하고, 끊임없이 악해져 가고, 더해 가는 흉악함 속에 더욱더 빠져들어 간다. 이 남자와 이 여자는 그러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당시 정세, 19세기 중반 왕정복고 시기>
76 (미리엘 주교와 국민의회 의원과 대화에서) “내 말은 인간은 하나의 폭군을, 즉 무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오. 나는 그 폭군의 종말에 찬성한 거요. 그 폭군이 왕권을 낳았소. 학문은 진리 속에서 얻은 권위인 데 비하여 왕권은 허위 속에서 얻은 권력이오. 그러므로 인간은 오직 학문에 의해서만 지배되어야 하오.” “그리고 양심에 의해서.” 주교가 덧붙였다.
77 (미리엘 주교와 국민의회 의원과 대화에서) ~ “슬프게도 작품이 미완성이었다는 걸 나도 인정하오. 우리는 현실에서는 구체제를 무너뜨렸지만, 사상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었소. 폐습을 타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오. 풍조를 바꾸어야 하오. 풍차는 없어졌지만 바람은 아직 남아 있소.” “당신네들은 무너뜨렸소. 무너뜨리는 것이 유익할 수는 있소. 하지만 나는 분노 섞인 타도는 경계하오.” “권리에는 분노가 있는 것이오. 주교님. 권리의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요. 그야 어쨌든,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프랑스혁명은 그리스도의 강림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한 걸음이었소. 미완성이긴 했지. 그러나 숭고했소.~”
86 (미리엘 주교와 국민의회 의원과 대화에서) “그렇소. 진보의 난폭함을 혁명이라 부르오. 혁명이 끝나면 사람들은 인정하오. 인류는 곤욕을 치렀으나 진보했음을.”
239 (경찰청장 앙글레스 보고서) 폐하, 제반사를 살펴보건대 이들 백성은 하등 두려울 것이 없사옵니다. 그들은 고양이처럼 무사태명하며 태만하옵니다. 지방의 하층민은 동요하고 있사오나 파리의 하층민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그들은 모두 소인들이옵니다. 폐하, 폐하의 정예 병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 둘을 합쳐야만 할 것이옵니다. 수도의 천민에 대해서는 하등 염려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지난 오십 년 동안 그들의 신장이 더욱 줄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옵니다. 그리고 파리 교외의 서민들은 혁명 전보다 더 왜소해졌사옵니다. 추호도 위험은 없사옵니다. 요컨대 그들은 천민, 양순한 천민이옵니다.
240 하지만 파리의 민중은 결코 그렇게 믿는 것만큼 ‘양순한 천민’이 아니었다. 프랑스인에게 파리 사람은 마치 그리스인에게 아테네 사람과 같다. 그들만큼 잠 잘 자는 사람도 없고, 그들만큼 정말 경망하고 나태한 사람도 없으며, 그들만큼 잘 잊어버리는 체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얼마든지 번둥거릴 수도 있으나 종말에 명예가 있다면 분연히 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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