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김호연)

(왼쪽) 초판 표지 (오른쪽) 꿈의 책장 에디션

 

모임 날은 다가오고, 출제와 학년말 업무에 쫓겨 틈틈이 읽었다. 책을 들 수 있을 때는 종이 책을, 이동할 때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그렇게 이틀 만에 나의 돈키호테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주인공들처럼 나 역시 독서 아미고스가 있어 이렇게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나의 돈키호테라는 제목에서 소설의 큰 흐름은 대략 짐작된다. 예상대로 이야기는 사라진 돈키호테 아저씨의 흔적을 좇으며 그의 설화가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구조다. 돈키호테를 꿈꾸었다가 산초에서 정체성을 찾지만 결국은 돈키호테가 되는 이야기. 사서 구조에서 정지아 작가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떠올렸다.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 입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그런데 책의 표지는 소설의 깊은 내용을 드러내기에는 조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인공 진솔이를 비롯해 동네 아이들에게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는 외로웠던 시절, 그 외로움을 잊게 할 만큼 이야깃거리와 도전으로 가득했던 공간이었고 그런 기억 덕분에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아 떠나는 유튜브 여정이 가능했으며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표지 그림으로 적절하다. 하지만 표지에서 응답하라 1988” 시리즈를 떠올리게 해 첫인상으로서 주는 이미지가 약하다. 그래서 꿈의 책장 에디션의 표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돈키호테 아저씨의 열정이 삶이 담겼고, 진솔이의 꿈과 열정이 담긴 지하실을 배경으로 그려져서.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좋은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아이들에게 좋은 삶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블로그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좋은 책과 장소를 연결하고 싶은 매개체가. 나이들수록 연결이 좀 더 약해지고 있다. 할 수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괜찮은 매개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인상 깊은 구절

(134) 돈키호테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숭고하다. 그것이 돈키호테의 존재 이유니까. 아저씨의 필사 노트로 완독한 『돈키호테』의 주제 역시 꿈을 향한 모험을 펼치라는 것이었다. 쉰 살이 넘은 시골 기사가 세상의 정의를 세우겠다고 길을 떠나는 설정 자체가 ‘꿈꾸고 있네’라는 핀잔을 들을 일이다. 하지만 꿈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지금 나 스스로가 돈벌이도 안 되는, 이제 얼굴도 희미한 아저씨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일에 돌파구를 찾지 못해 이제 지쳐 거리를 두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는 노랫말도 생각난다. 돈키호테는 쉰 살에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는데...  나는 어떤 꿈을 꿔야 할까.

 

(293) “솔아. 사람은 평생 자기를 알기 위해 애써야 해. 그래, 나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짓고 살아왔지. 하지만 『돈키호테』를 받아쓰면 받아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나 역시 평생 나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돈키호테가 아닌 산초였다'는 아저씨의 고백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돈키호테를 꿈꾸면서도 산초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느낀다.

 

(316) “열정이 사라졌으니까. 열정이 광기를 만들고 광기가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 인물을 만들거든. 나는 고갈된 열정 대신 현실에 발을 디딘 산초의 힘으로 돼지우리를 만들고 하몽을 염장할 거란다. 어른 진솔은 이제 아저씨를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이 구절은 돈키호테 아저씨의 성장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때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지려던 열정은 고갈되었지만, 대신 현실에 발을 디딘 산초의 힘으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아저씨의 모습은 지혜로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무모한 광기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현실을 인정하며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이제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다하며 '돼지우리를 만들고 하몽을 염장'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 아저씨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으로 이어진다.

 

(415) 돈키호테 비디오는 매개체다. 나도 매개체다.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장영수 씨 덕에 만날 수 있었다. 고로 그도 매개체다. 인간은 서로에게 매개체다.

인간은 서로에게 '매개체'라는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문장에 깊은 울림을 받는다. 한 사람의 존재, 한 권의 책, 한 편의 비디오가 다른 이들에게는 꿈을 향해 나아가거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통로가 된다는 깨달음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매개체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는 오래된 열망이 더욱 선명해진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넘어, 나의 블로그나 내가 공유하는 교육 활동들이 작은 영감의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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