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들, 사랑 이야기(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5. 10. 30.

p367 불의와 잔인성의 심연 속에서도 사랑의 힘을 보여 주려고 노력합니다.
-1978년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p122 헤르만은 자신에게 고백했다. <난 세 명 다 갖고 싶어.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야.>
p174 헤르만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가져올 결과와 그 이후의 추문을 두려워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끊임없이 파멸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면서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마성의 헤르만! 자신을 구해준 하녀 야드비가와 결혼하고, 마샤라는 아리따운 내연녀가 있으며,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아내 타마라가 등장해 일상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헤르만! 추문이 언제 드러날지 전전긍긍하지만 세 여성과의 관계를 절대 끊지 못하고 외줄을 타듯 위험하게 세 여성 사이를 오고 가는 헤르만!
유대계의 카사노바? 그런데 잘생긴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건강한 것도 아닌, 무엇보다 세 여성 사이에서 보이는 태도는 짜증 날 정도로 우유부단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드비가는 헤르만을 사랑해 유대교로 개종을 하고 그의 딸을 낳고, 마샤는 전남편에게 몸을 던져 헤르만과 결혼한다. 심지어 타마라는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에서 순결을 지키고, 다시 태어나도 헤르만과 결혼하고 싶단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머리가 띵하다. 헤르만이 가진 마성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런데 결국 헤르만은 최종적으로 마샤를 선택한다. 여기서 실마리를 풀어보려 한다.
그동안 세 여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지만 큰 위험 부담 없이 모든 관계를 이어갔는데 왜 마지막에 마샤를 선택했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남녀는 모두 다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여성들만 살펴보면 야드비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헤르만을 2년 동안 숨겨주고 돌봐주었고, 오로지 헤르만만을 믿고 미국으로 건너와 특유의 성실성과 인내심으로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낸다. 그리고 마샤는 자신과 맞지 않는 전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겪었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을 이겨냈다. 타마라는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다. 총살당했으나 살아남았고, 그 와중에 사랑하는 자녀를 둘이나 잃었다. 그리고 러시아 수용소에서 고통스럽고 끔찍한 경험 속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녀들의 아픈 이야기를 돌아보니, 그 중심에 있는 헤르만이 다시 보인다. 헤르만은 그녀들의 아픈 과거와 고통을 보듬어준 유일한 남자 아니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녀들의 심연에 가득찬 고통을 알기에 누구도 선택할 수 없었고 누구도 버릴 수 없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그렇다면 왜 마지막에는 마샤에게 갔을까?
작품 후반부에 타마라는 외삼촌 내외에게 서점을 물려받아 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어 간다. 또한 누구든 보살피고 싶어 하는 타마라에게 아이를 가진 야드비가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좋은 대상이 되어 주었다. 야드비가는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졌고 헤르만만큼 기댈 수 있는 타마라라는 든든한 존재가 생겼다. 하지만 마샤는 자신과 어머니를 돌봐준 랍비에게 기대지 못하고 또 헤르만을 찾아왔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샤에게 상당히 짜증이 났지만, 그녀의 절망과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헤르만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삶의 기둥이었던 마샤 어머니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 헤르만은 이 모든 힘의 균형을 본능적으로 알아냈기에 야드비가와 타마라를 떠나 마샤에게 달려간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샤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마샤의 무너진 영혼은 이제 헤르만으로도 채울 수 없게 된다. 헤르만은 마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헤르만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은신’을 택하며, 사라져 버렸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헤르만의 기행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작가가 노벨문학상 연설문에서 밝힌 이 부분에서 무릎을 딱 쳤다. ‘불의와 잔인성의 심연 속에서도 사랑의 힘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헤르만의 삶이 지금 우리 기준에 부도덕해 보일지라도, 그 네 사람의 관계 속에서는 진정한 아가페였고 에로스였지 않을까? 헤르만으로 이어진 각각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전쟁의 트라우마를 서로 조금씩 치유받지 않았을까? (솔직히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는 하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 중의 하나는 작가가 헤르만의 눈으로 서술하면서 유대인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생지옥 속에서 살아남아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냉소와 조롱, 반어 혹은 직설로 서술한 블랙코미디이자, 가장 진한 러브스토리! 이게 바로 <원수들, 사랑이야기> 아닐까?
지난 24일 김선우 시인과의 만남에서 시와 문학, 시인이 왜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번 작품을 만나 “모든 사회 이론이 무너져 버리고 전쟁과 혁명이 인류의 참담한 암흑 속으로 몰아넣더라도 언젠가 시인이—플라톤이 자신의 공화국에서 추방해 버렸던 그 시인이—우리를 구해 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라는 작가의 생각을 읽고, 혼란과 혐오의 시대 시인과 소설과가 너무너무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인상 깊은 구절-
29 길을 걸으면서 헤르만의 눈은 나치가 뉴욕에 쳐들어올 경우에 대비하여 끊임없이 은신처를 물색했다. 이 근처 어딘가에 지하 방공호를 하나 만들어 놓을까? 가톨릭 성당의 뽀족탑 속에 숨으면 될까? 게릴라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요즘은 사격하기 좋은 위치를 궁리해 볼 때도 많았다.
32 그가 생계를 꾸려 가는 방법도 지금까지 그가 겪어 온 다른 일들에 못지않게 괴상망측한 것이었다. 그는 한 랍비의 대필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그 역시 사람들에게 에덴동산 같은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하고 있었다.
헤르만은 원고를 읽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데라가 우상을 팔았듯이 랍비는 하느님을 팔아먹고 있었다. 헤르만이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뿐이었다. 랍비의 설교를 듣거나 그의 수필을 읽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완벽하게 정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현대 유대교의 목표는 하나였고, 그것은 바로 이교도들을 흉내 내는 일이었다.
48 아우슈비츠에서는 유대인들이 영원히 불타고 있다. 스스로 삶을 끝맺을 용기도 없는 자들이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자신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기억을 질식시키고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마저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102 (타마라) 내가 겪은 일들을 전부 다 얘기한다는 건 불가능해. 사실 나 자신도 잘 모르거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야. 그래서 많은 일들을 완전히 잊어버렸지. 우리가 함께 살던 시절에 있었던 일까지 말이야. 카자흐스탄에서 널빤지 위에 누워 있던 날이 생각나는데, 그때 난 1939년 여름에 내가 애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간 이유가 뭐였는지 기억해 내려고 노력했어. 그런데 분명히 내가 한 일인데도 도대체 왜 그랬는지 생각나질 않더라고.
122 미국 변호사들은 모든 문제에 대하여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느 분을 더 사랑하십니까? 다른 분과는 이혼하세요. 불륜 관계도 끝내시고요. 그리고 일자리를 찾으세요. 정신과 의사도 만나 보세요.> 헤르만은 판사가 집게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이렇게 판결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당신은 미국의 호의를 악용했소.>
헤르만은 자신에게 고백했다. <난 세 명 다 갖고 싶어.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야.> 타마라는 전보다 더 예뻐졌고 더 침착해졌고 더 흥미로워졌다. 그녀는 마샤보다 더 지독한 지옥을 경험했다. 그런 그녀와 이혼한다는 것은 그를 다른 남자들에게 쫓아내는 짓이나 다름없다. 사랑에 대해서라면 전문가들은 마치 그것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듯이 그 말을 사용한다. 일찍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요.
130 지구는 태곳적부터 그랬듯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했다. 태양은 행성들을 거느리고 쏜살같이 질주했다. 은하수도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이 같은 우주적 규모의 사건들 속에서 헤르만은 현실의 포로가 되어 우스꽝스러울 만큼 하찮은 문제들 때문에 쩔쩔매고 있었다. 밧줄 한 가닥이나 독약 한 방울만 있으면 모든 근심 걱정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릴 텐데도 말이다.
137 둘 다 좋은 분들이지만 너무 솔직하신 게 탈이거든. 외삼촌 말씀은 당신이 그 여자와 이혼하든지 아니면 나하고 이혼해야 한다는 거야. 나한테 약간의 유산을 남겨 주겠다고 넌지시 암시까지 주시더라고. 그분들은 모든 문제에 딱 한 가지 해답만 갖고 계시는데, 그건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믿기 때문에 온갖 지옥같은 경험을 한 뒤에도 변함없이 건강하신 거고.
148 「그럼 당신은 왜 안식일마다 촛불을 켜는 거야? 속죄절엔 왜 금식을 하고?」
「하느님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진짜 하느님은 우리를 미워하지만 우린 우리를 사랑해 주고 선민으로 선택해 주는 우상을 생각해 낸 거예요. 당신도 그랬잖아요. <이교도들은 돌을 가지고 신을 만들었고 우리는 이론을 가지고 신을 만들었다.> 일요일 몇 시쯤에 올 거예요?」
174 헤르만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가져올 결과와 그 이후의 추문을 두려워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끊임없이 파멸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면서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는 계획적으로 행동하기도 했고 즉흥적으로 행동하기도 했다. 폰 하르트만이 말하는 <무의식>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았다. 헤르만의 입에서는 말이 저절로 술술 흘러나오는 듯했는데,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기막힌 계략과 속임수를 써먹었는지 깨닫게 되곤 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감정의 혼란 속에서도 하루하루 위험을 즐기며 살아가는 용의주도한 도박꾼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193 헤르만은 얼마 전부터 채식을 해볼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류가 말 못 하는 짐승들에게 하는 짓도 나치들이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만행과 다를 바 없다고 역설했다. 어째서 애꿎은 닭이 인간의 죄를 씻는 데 이용되어야 하는가?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왜 그런 재물을 용납하시는가? 이번에는 마샤도 헤르만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자 시프라 푸아는 만약 마샤가 그 의식을 거부한다면 자기가 집을 나가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198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야드비가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속삭였다. 「나도 유대인이 되겠어요. 유대인 아이를 낳고 싶어요.」
323 노인은 헤르만의 행실을 다 알고 타마라에게 어서 이혼하라고 계속 독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헤르만을 용서할 수 있는 구실을 찾았다. 레브 아브라함 니센 자신도 온갖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젊은이들이 믿음을 지키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파멸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의 자비로우심을 믿을 수 있겠는가? 레브 아브라함 니센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마치 유럽에서의 대학살이 없었던 일인 양 모르는 체하는 정통파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326 동물들은 일찌감치 존재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도피 및 은신 능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런 와중에도 확실성을 추구하다 오히려 몰락을 자초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유대인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범죄와 광기를 통하여 은근슬쩍 생존해 왔다. 그들은 가나안과 이집트에도 몰래 잠입했다. 알렉산드리아, 바빌론, 로마에서부터 바르샤바, 우치, 빌나의 게토에 이르기까지 장장 2천 년에 걸친 유랑 생활이 결국 속임수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성서와 『탈무드』와 주석서들은 유대인들에게 한 가지 전략만을 가르치고 있다. 악을 만나면 도망쳐라, 위험을 만나면 숨어라, 정면 대결을 피하라, 세상에 존재하는 포악한 세력들을 최대한 멀리해라. 유대인들은 군대가 시가전을 벌일 때 지하실이나 다락방으로 숨어 버리는 도망자들을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
354 건초 다락에 숨어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환상을 품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치도 여전하고, 미사여구도 여전하고, 헛된 약속도 여전하다. 교수들은 여전히 살인의 이데올로기, 고문의 사회학, 강간의 철학, 공포믜 심리학 따위에 대한 책을 쓴다. 발명가들은 새로운 살인 무기를 만들어 낸다. 문화와 정의에 대한 대화는 만행과 불의에 대한 대화보다 더 혐오스럽다. 헤르만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똥물 속에 빠져 버렸다. 내가 바로 똥이다. 탈출한 방법이 없다. 가르친다고? 가르칠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그리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남을 가르친다는 거냐?」 그는 랍비의 저녁 파이에서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메스꺼움을 느꼈다.
364 랍비 최고 회의가 대학살을 이유로 규정을 완화시켜 이젠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들도 재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타마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생각해 보죠. 헤르만과 재혼하는 거라면요.」
367 (노벨문학상 연설) 창의적인 사람의 비관주의는 퇴폐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추구하는 뜨거운 열정입니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도 끊임없이 영원한 진리와 존재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과 변화의 수수께끼를 풀고, 고통의 해결책을 찾고, 불의와 잔인성의 심연 속에서도 사랑의 힘을 보여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모든 사회 이론이 무너져 버리고 전쟁과 혁명이 인류의 참담한 암흑 속으로 몰아넣더라도 언젠가 시인이—플라톤이 자신의 공화국에서 추방해 버렸던 그 시인이—우리를 구해 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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