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성해나 소설집)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6. 2. 22.

성해나 작가의 단편집 《혼모노》에 수록된 일곱 편의 이야기는 소재부터가 무척 다양하고 흥미롭다. 익숙한 서사라도 접근하는 방식이 신선('풍자'한 작품이 많음)해서, 생소한 용어들을 검색해 가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덮고 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더없이 좋은 텍스트지만, 학생들에게 권하기엔 수위나 정서 면에서 어떨지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1.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길티'는 죄책감과 즐거움이 결합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의 줄임말로, 도덕적으로 꺼림칙하거나 남부끄러운 일임에도 멈출 수 없는 소소한 쾌락을 뜻한다. 작품 속 서술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영화감독을 추앙하다가 진정성 없는 그의 사과에 실망을 느낀다. 이후 치앙마이 여행에서 이빨과 발톱이 제거된 호랑이와 사진을 찍으며,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묘한 심리를 드러낸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서늘한 본성을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한때 세상을 호령했으나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감독의 처지를 자꾸만 되새기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처지가 될 수 있고, 대중은 그 몰락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구경거리로 소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아닐까.
(64) 상황에 익숙해지자 골을 뒤흔들던 악취도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호랑이가 불편한 듯 근육을 움찔댈 때마다 척추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었다.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 나 역시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인지, 읽는 내내 비슷한 감각의 경험들이 여럿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러운 지점은 내 마음 편하자고 스스로의 죄의식에 너무 빨리 면죄부를 주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민망함이다.
2. 스무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태극기 부대'라는 소재를 이렇게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니, 작가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 치부했던 이들도 개인으로 마주한다면 조금 다를까? 만약 그렇다면, 개인의 눈과 귀를 가려버리는 '집단'이라는 광기가 문제일 것이다.
한국계 2세이지만 고국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듀인'이 노인들을 만나며 느끼는 고양감은,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낯선 대상을 마주할 때 생기는 위험성을 상기시킨다.
(108) 당신도 ‘열사’예요. 우리처럼요.
알 수 없는 고양감에 젖어들었다. 생애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시끄럽고 이상하지만 뜨거운 이곳에서 나는 분명 그들과 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아버지에게도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나라, 아니 우리의 나라를.
[아버지, 저 지금 한국에 있어요.] (중략)
[저 지금 이승만 광장에 있어요.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요.]
✍ '나'에게 한국에 대해 함구했던 아버지는 어쩌면 독재 시절의 아픔을 피해 미국으로 떠났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아버지가 피하려 했던 풍경 속으로 들어가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말하는 아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3. 혼모노
최근 영화 <파묘> 등 무속 신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에, 오히려 '신이 떠난 무당'의 이야기는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조차 떨게 만드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였다. 우리가 하는 일이나 일상의 삶에서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신이 떠난 상태, 즉 '번아웃'에 가깝지 않을까. 결국 우리에게 남은 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뿐일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153) 구름도다 사라진 땡볕 아래, 관수도 악사들도 점점 지쳐가는 와중에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 이는 오직 나뿐이다. 피범벅에 몰골도 흉하겠으나 시야가 환하고 입가엔 미소까지 드리워진다. 신령 근처에라도 가닿은 것처럼 몸이 가뿐하고 신명이 난다. 장단이 빨라질수록 나는 고조된다.
✍ 처참한 피범벅이 된 '나'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답게 느껴졌던 대목이다. 신의 힘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고조되는 그 순간의 기세가 서늘하면서도 뜨겁다.
4. 구의 집
서울 시청역에서 용산역으로 이동하다 보면, 남영역에 도착하기 전 지하철의 불이 잠시 꺼지는 곳이 있다. 직류와 교류가 교차하는 구간이라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그 어둠 속에서 문득 근방에 위치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리게 된다.
성공을 위해 권력과 타협하며 비인간적인 공간을 설계했던 스승 '여재화'와 달리, 제자 '구보승'은 오직 인간만을 위한 건물을 설계하려 애쓴다. 인간을 중심에 둔다는 점은 같으나, 그 과정과 결과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열정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올바른 '방향'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전작 《스무드》와 궤를 같이하는 느낌이다. 다만, 시대의 파도 속에 휩쓸렸던 스승 여재화가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치열한 토론거리로 남는다.
(200) 자네는 아직도 그곳이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나?
물음에 대한 답을 헤아리며 구보승은 멀거니 서 있었다. 인간을 위한 공간. 설계할 때만 해도 확신했으나 막상 도면이 완성되고 시공에 들어가자 모든 확신이 모호해졌다. 자신이 치밀하게 설계한 것들이 무얼 위함이었는지 자신조차도 알 수 없어졌다.
허나 오기 때문인지 객기 때문인지 구보승은 여재화 앞에서 끝내 단언하고 말았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신이 설계한 공간이 정말 인간을 위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스승 앞에서 끝내 단언하고 마는 보승의 모습에서 지독한 합리주의 뒤에 숨은 인간의 나약한 오기를 본다.
5. 우호적 감정
작가가 갈등의 씨앗들을 던져놓고는 서둘러 매듭지어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구체적인 해결보다는 그 이후의 공허한 상황만을 제시하며 독자에게 많은 사유의 짐을 넘긴다. 나 역시 서술자 '알렉스'처럼 조직 내의 평화를 위해, 혹은 좋은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조직 내에는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위계와 차별을 당연시하는 '맥스' 같은 인물도, 규정과 빈틈을 노려 문제를 해결하는 '진' 같은 인물도 존재한다. 한때는 타협주의자였으나 상처를 입고 회의주의자로 변해버린 '수잔'까지, 인물들의 면면이 낯설지 않다.
(240)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 비겁할 정도로 평온하고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뜨거운 딤섬을 머금은 서술자의 모습은 타협주의자가 마주해야 할 씁쓸한 최후를 보여주는 듯하다.
6. 잉태기
이토록 기괴한 가족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실재하는 부조리들을 생각하면, 이 근거 없는 개연성조차 서글프게 용인하게 된다. 등장인물 중 진정한 의미의 '어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 틈바구니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서진'이 안타까울 뿐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제대로 돕고 있는가. 부모가 먼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성찰이 절실하다. 마지막 장면은 표제작 《혼모노》를 연상시키지만, '니세모노(가짜)'가 진정한 '혼모노(진짜)'로 거듭나는 과정과 달리, 서진의 모습은 그저 위태롭기만 하다.
(297) 괌행 비행기 출국 알림 방송이 들려온다. 시부와 나 사이에서 서진은 무슨 말인가 한다. 연갈색 눈을 굴리며, 아주 작게, 기운이 다 빠진 소리로, 힘겹게,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도.
✍ 소통의 부재와 이기심 속에서 사그라드는 아이의 목소리. 우리가 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진실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7. 메탈
미래가 불확실했던 70년대생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답답함을 이겨내려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저질렀던 소소한 일탈들. 일찍이 교사를 꿈꾸며 사범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늘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려 노력해 왔다.
이야기 덕분에 잊고 지냈던 락 그룹들을 다시 만났다. 중학교 2학년 무렵, '티삼스'의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하던 친구의 모습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때 같은 꿈을 꾸었거나, 서로의 다른 꿈을 진심으로 응원했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때로는 흔들리고 타협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그들이 보고 싶다. 이제는.
(333) 마지막으로 책꽂이를 들어내고 그 안에 꽂혀 있던 앨범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 우림의 가슴속에서 따끔한 전류가 꿈틀댔다. 람슈타인, 모터헤드, 주다스 프리스트…… 잊고 싶었지만 깊숙이 잔존해 있던 여러겹의 기억. 귓가로 흘러들어와 온몸을 한바퀴 훑고서도 빠져나가지 않던 격렬한 열기.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두려워하지 않고 한길을 내달리고 같은 꿈을 꾸던 소년들…….
✍ 앨범 속에 잠들어 있던 과거의 열기가 다시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통증. 그 찬란했던 '메탈'의 시간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여전히 전류처럼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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