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틈새(이금이)

 

이금이 작가님의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마지막 권이라는 설명이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2025815일이라는 출간일 또한 광복절과 겹쳐 이 책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했다.

 

소설은 사할린 한인 1'단옥이' 할머니의 삶을 따라 일제 강점기부터 2025년 현재까지의 긴 세월을 450여 쪽의 분량에 담아낸다. 방대한 역사적 배경과 시간을 응축하다 보니, 소설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편의 치밀한 보고서를 읽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타국에서의 힘겹고 험난했던 삶의 묘사가 지나치게 구체적이지 않아 독자로서 큰 부담 없이 그 역사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과거 영화 <명자, 아키코, 쏘냐>가 떠올랐다. 한국어를 쓰던 사할린 한인들이 일본어와 일본식 이름으로, 다시 러시아어와 러시아식 이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진다. 제국주의의 백성으로서, 공산주의의 인민으로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국민으로서, 이념과 체제가 바뀜에 따라 삶의 환경과 정체성이 어떻게 뒤흔들리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고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헤어졌던 가족들의 소식이 하나둘 전해지는 대목에서는 현대사의 아픔이 더욱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근현대사의 비극을 겪은 분들 간의 교류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더욱 활발히 추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님은 이 소설로 여성 중심의 디아스포라 3부작('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 '슬픔의 틈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이 '여성 디아스포라'라는 큰 주제는 같지만, 그 결이 다소 다르다고 느낀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일제 강점기 하와이 이주민의 삶을, '슬픔의 틈새'가 사할린 이주민의 삶을 다룬다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강제로 바뀐 신분으로 동남아시아를 떠돈 종군위안부로서의 삶과 독립운동,, 그리고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특별한 이주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라는 틀로 보았을 때,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이주했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더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럼에도 3부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단연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이다. 비록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지만, 광복 이후 일제 부역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미국의 원폭 투하로 승전국 지위를 얻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한계 속에서 기득권이 그 권리를 다시 누리고, 피해를 당한 국민들은 아픔을 반복해야 했던 우리의 슬픈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19) 패전에 분노한 일본 군경과 자경단들이 카미시스카, 미즈호 등에서 소련 첩자 누명을 씌워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중략) 화태에 상륙한 소련군 또한 약탈을 하고 여자들을 상대로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남의 땅에 있는 조선인들에게는 이렇듯 해방의 기쁨보다 공포와 불안이 더 가까이에 있었다.

광복 직후 사할린의 어수선한 상황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해방의 기쁨과는 너무나 달랐다. 약소국의 국민들이 강대국의 이념 다툼과 힘의 논리 속에서 얼마나 큰 희생을 감내해야 했는지, 그 비극적인 현실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마음이 아려온다. 해방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자 불안으로 다가온 아이러니 속에서, 이 땅에 존재했던 수많은 개인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256) 단옥과 유키에네 가족에는 북한, 소련, 무국적이 다 섞이게 됐다. 사할린에는 부부, 부모, 형제간에도 국적이 다른 경우가 흔했으며 북한 국적은 6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한 가족 안에서조차 북한, 소련, 무국적의 국적이 뒤섞이는 현실은 국가 이념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뿌리째 흔들어 놓는지를 보여준다. 국적이 달라 부부, 부모, 형제끼리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며, '나라'라는 울타리가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때로는 유린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284)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과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음을 배웠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른다는 것도 함께.

이 문장은 작가의 디아스포라 3부작이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로 느껴진다. 험난한 역사를 살아낸 인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라 그 무게가 더욱 깊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결국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 바로 이런 따뜻한 시선이 이 소설이 지닌 힘이자 청소년 소설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313) 단옥은 나날이 더 희미해지는 기억들이 아예 사라질까봐 겁내며 틈날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족, 집, 마을, 들판, 학교, 학교가 있던 면 소재지, 사할린으로 오던 길... 단옥은 그 기억들을 한글로 한 자 한 자 옮겼다. 그에게 한글은 곧 고향이었다. 그리고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중략) 그들에게 자신들이 사할린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희미해지는 기억을 한글로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 단옥의 모습에서, 잊히지 않기 위한 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한글이 단순한 글자가 아닌 고향이자 정체성의 전부였음을 고백하는 대목은 문자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아픔을 세상에 전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보여준다. 기록의 가치와 함께, 이야기를 블로그에 담아내는 나 자신 또한 이 책을 통해 더 깊은 울림을 받는다.

 

(323) 단옥은 가끔 자기 이름의 변천사를 생각해보곤 했다.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타마코, 다시 주단옥, 그리고 올가 송...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한동안 헷갈렸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른 한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바뀐 이름들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이었다. 단옥은 그 길 끝에 다다른 현재의 삶에 만족했다.

이름은 개인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인데,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강제로 바뀌는 이름들은 곧 한 개인의 삶과 정체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웠을 단옥의 삶은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초상과 같다. 그럼에도 그 굴곡진 삶의 끝에서 현재에 만족한다는 단옥의 고백은, 고통 속에서도 긍정을 찾으려는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342) 서울 올림픽은 사할린 한인 1세대나 자식 세대는 물론 소련 사람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소수민족의 설움과 소외감을 느끼며 고아처럼 살던 한인들은 발전한 조국의 모습에 놀라고 감격했다. 능력 있는 친부모를 찾은 듯 어깨가 펴지고 신바람이 났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한인들을 무시하던 소련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소련 경제가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었기에 한국의 발전상은 더더욱 관심을 받았다.

서울 올림픽이 가져온 변화는 사할린 한인들에게 자긍심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그들을 억압했던 시선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안겨준다. 발전한 조국의 모습에 고아처럼 살던 한인들이 '능력 있는 친부모를 찾은 듯' 어깨가 펴지고 신바람이 났다는 표현에서, 국가의 위상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념과 체제를 넘어선 따뜻한 연대감, 그리고 한국의 경제 발전이 보여준 인류애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구절이다.

 

(374) 미국과 캐나다는 태평양전쟁 때 수용소에 억류했던 일본계 사람들에게 1인당 2만 달러, 2만 1천 캐나다 달러를 보상금으로 지불했다. 그들이 3년 정도 억류됐던 것에 비하면 사할린 한인들은 자그마치 50년이었다.

불합리한 보상과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불과 3년 억류된 사람들과 50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비교하며, '보상'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기만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역사의 정의는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숫자로 표현된 간극이 그 비극의 깊이를 더욱 강조하는 듯하다.

 

(394) 단옥은 가족사진에 있던 진수의 형 둘과 누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결혼해서 고향과 근처에서 살던 셋은 1948년 한날한시에 사망했다. 진수네 가족은 4.3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족사들 이야기를 들으니 현대사의 아픔은 다 겪었다. 단옥이네 성복이도 6.25때 전사했다고.

진수네 가족의 비극적인 서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뼈아픈 상처 중 하나인 4.3사건의 아픔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 가족사가 겪은 고통이 이처럼 압축적으로 제시될 때, 우리 역사의 잔혹함과 그 속에서 개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의 무게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할린 강제 이주민이라는 특수성을 넘어,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아픔을 이야기하는 지점이다.

 

(429) 진수는 아내의 청에 못 이겨 그 고향을 잊어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찾은 고향은 제주였다. 자신이 태어난 진짜 고향이기도 했다. 그 고향만큼은 다른 사람 때문에 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사할린을 떠났다. 진수는 한국에 와서야 단옥이 자신의 진정한 고향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진정한 고향'의 의미를 찾아가는 진수의 여정은 독자에게 '고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물리적인 장소만이 고향이 아니라, '단옥'이라는 한 인간이 주는 위안과 안식에서 진정한 고향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구절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고향을 잊고, 버리고, 찾아 헤매는 과정 속에서 결국 인간 그 자체가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철학적인 울림을 전해주는 대목이다.

 

(436)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우리의 기구한 운명과 불행, 고통, 슬픔을 듣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사할린 한인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되고, 우리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국 정부의 정책들도 나은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오. 앞으로는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전할 때 우리가 모진 운명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슬픔의 틈새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고자 애쓰며 살았다는 것 또한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소.”

이 문장은 사할린 한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이 단순히 고통과 불행으로만 점철된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틈새에서도 '사람다움'과 기쁨, 행복을 찾으려 애썼던 치열한 삶의 기록임을 당부한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배우기 위함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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