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에서 만난 다양한 아름다움[2025.11.13.]

올해는 다행히 수능 감독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덕분에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내장산을 찾을 수 있었다. 지인들에게 내장산으로 단풍 구경을 간다고 하니 대부분 "단풍보다는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왔다", "길이 너무 막혀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는 시큰둥한 반응만 들었다. 그래도 이 특별한 가을날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다.

 

민주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서둘러 내장산을 향해 떠났다. 길은 담양읍을 거쳐 월산면, 장성 북하면 백양사 옆을 지나, 공중의 회전 고가도로를 지나 내장산으로 이어졌다. 한동안 통행이 뜸한 산길을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그런데 정상을 지나자 차량 행렬이 점차 늘어나더니 사하촌에 이르러서는 차량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다행히 일찍 서둘렀던 덕분에 입구와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주차료는 현금으로 1만원.

 

주차장에서 탐방지원센터까지 걸어 가는 길은 축제장이 그렇듯 트로트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니 사람들의 줄이 보였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한 줄이었다. 여기서 내장사 경내까지는 약 3m 정도 한다는데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생각해 셔틀버스를 타고 경내까지 간 뒤 걸어 내려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바삐 움직이는 셔틀버스 덕분에 많이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다. 좌석 수에 맞게 승차를 하게 해 아내와 떨어졌다. 버스 창밖으로 붉게 물든 풍경을 구경했다. 내장사의 단풍을 유명하게 만든 '아기단풍나무'는 작은 잎들의 다채로운 빛깔로 풍경을 채우고 있었다. 아직 초록빛이 강한 잎, 노란빛에 가까운 연두색 잎, 선연한 붉은색으로 물든 잎, 그리고 조금 탁한 듯 깊은 붉은 빛을 내는 잎들까지. 창밖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이, 어느덧 내장사 일주문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셔틀버스 편도 요금은 1,000원(왼쪽),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내장산의 단풍(오른쪽)

 

셔틀버스에서 내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상을 거쳐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단풍나무 향기가 마음을 더욱 상쾌하게 만들었다. 대웅전은 주변의 울긋불긋한 단풍과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고즈넉하면서도 경쾌한 가을 산사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내장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길(왼쪽), 담장과 단풍나무(오른쪽)
내장산 대웅전
내장사 정혜루. 앞면예는 '정혜루'란 글자가, 뒷면에는 '천하명승내장산'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내장사 대웅전에서 일주문으로 가는 길

 

경내를 돌아보고 내려올 때는 셔틀버스를 탔던 곳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등 온갖 색깔의 단풍잎이 나무 아래 수북이 깔려 폭신한 길을 만들었고, 단풍나무 그늘 아래 풀잎에는 무서리가 내려 촉촉한 물기가 맺혀 있었다. 가끔 제법 세찬 바람이 불어올 때면, 마치 비가 내리듯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져 '단풍 비'를 만들어냈다.

 

내장산 케이블카
내장산 우화정. 파란색 기와와 단풍잎이 잘 어울린다.
우화정에서 바라본 풍경

 

거의 한 시간가량을 자연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빛깔을 눈에 담기도 하고, 카메라에 담기도 하며 걸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고, 단풍을 즐기는 이들의 행복해 보이는 표정 또한 그 풍경에 어울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산 입구에서부터 눈에 들어온 내장산 전체는 정말 다양한 빛깔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이 계절에 만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선물이다.

 

우화정에서 내장산 입구로 가는 길
우화정에서 내장산 입구로 가는 길
내장산 단풍터널

 

 

문득 시기는 맞지 않지만 내장산의 아름다움에 어울릴 만한 김지하 시인의 '새봄'이란 시가 떠올랐다.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어떤 나무는 아직 푸름을 간직하고, 어떤 나무는 선명한 붉은빛을, 또 어떤 나무는 따뜻한 노란빛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어느 한 나무의 빛깔이 유독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빛깔을 지닌 모든 나무들이 어우러져 산 전체를 오색찬란하게 물들이기 때문에 내장산의 단풍은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다양성 속에서 진정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피어난다는 것을, 내장산 단풍이 온몸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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