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보니, 오르세미술관의 시계탑이 떠올랐다. 둘씩 짝지어 가는 친구들 사이에 홀로 걸어가는 인물이 주인공인가 싶다. 시곗바늘이 11시 10분을 가리키는 것은 인간의 생애 중 청소년기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책 제목이 "6만 시간"이라 이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밝은 느낌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는 추리소설 느낌이 나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대신 주인공에게 일을 시키는 영준이는 왜 여자들만 곤란스럽게 만들까, 출생의 비밀 등 주변인들과는 어떤 관계일까. 서울대를 나와 미국까지 유학 갔다 다시 돌아와 통닭 신메뉴 개발에 의욕을 보이는 큰누나는 아빠의 반대를 물리치고 어린 시절 꿈이었다는 닭집 주방을 들어갈 수 있을까? 네일숍을 차린 작은누나는 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작품을 찾다 작가의 '눈을 감는다'를 읽었다. 주인공 '나'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죽는 것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정이 담겨 있었다.'나'는 아버지가 5.18 광주학살에 대한 양심선언으로 군대에서 쫓겨나 정신까지 나가버렸을 때도 내 몫의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절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생활할수록 보잘것없고 찌끄러기가 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왜소한 체격에 공부도 못하고 사교성도 떨어져 친구들을 만들지 못한 '나'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학급의 실세가 되려는 반장의 이기심 때문일까? 자기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그놈들의 짓을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학급 아이들이 무제일까? 아니면 직업군인이면서 명령에 따라 민간인을..
사람은 자신이 소속된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말 속에서 드러나듯 거의 숙명적인 것 같다. 한편 생명체로서 사람은 소속감을 느끼면서도 ‘나로서’ 살아가길 원한다. 그것도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로서의 본능이다. “피구왕 서영”은 나와 내가 포함된 사회의 강요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오랫동안 만나며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도, 성장기를 주로 보내는 학교에서도, 협력하면서도 경쟁해야하는 사회에서도, 일시적인 같은 공간에서도 우리는 폭력적인 강요를 경험한다. 또 그러한 관계는 내면화돼 스스로를 구속하는 자기 검열이 되기도한다. ‘강요된 관계’에 대해 민감하게 성찰해 보는 책이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초등학교를 배경..
우리 지역의 국어교사가 쓴 청소년 소설이라는 말을 듣고 책을 들었다.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순간에도 화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화’가 쉽게, 갑자기, 그리고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한꺼번에 말해 주고 있다. 이야기도 급식실에서 새치기하려다가 교사의 제지에 ‘화’가 폭발하면서부터 시작되니 제목이 여러 가지 장면을 잘 담고 있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이 적지 않게 보도된다. 아파트 외벽 작업자의 휴대전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고,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고, 도로에서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고 벌어지는 해코지를 거의 매일 실시간으로 듣고 있다. 또 직장 상사의 대기업 또는 원청업체의 갑질까지. 그렇게 다스리지 못한 ‘화’가 분노조절장애가 돼 치료받는 사람..
우리 사회에서 ‘난민’이 큰 이슈가 되었던 일은 2015년 시리아에서 그리스로 떠나던 난민선이 전복돼 익사한 세 살배기 어린아이의 시신이 담긴 뉴스였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난민 수용에 소극적이던 정책이 돌아서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난민’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작년 제주도에 500여 명의 예멘인들이 난민을 신청하면서부터다. 예멘은 과거 우리나라, 독일, 베트남과 함께 이념 간 대립으로 분단되었다가 통일된 나라로 자주 거론되었다. 통일된 나라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예멘은 종교 갈등과 정치 사정 등으로 내전이 계속되면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일제 식민지를 거쳐, 세계대전에 맞먹는 전쟁을..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까칠한 재석이가 돌아왔다"를 재미 있게 읽고 남학생들에게 추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3월 첫 수업을 할 때나 8월 2학기 첫 수업을 할 때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버려야할 것을 찾는 활동의 바탕글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뒤 시리즈라고 불릴만큼 후속편들이 나왔지만, 그 즈음 읽었던 고정욱 선생님의 소설 경향이 비슷해 더 찾아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 아들 친구 독서모임 회원들과 학교폭력을 이야기할 책으로 이 책이 추천돼 읽었다. 고정욱 선생님의 일관된 작풍이 느껴졌다. 아들 친구들과 독서모임에서는 1.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교실 사회의 특징은? -160 요즘 학교는 마치 계급사회 같아요 -학교 상황이 서열이나 따돌림이 있지는 않고 '끼리끼리' 정도는 있..
청각 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은 어떨까. 듣지 못하는 불편함 때문에 답답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이 짠하게 보이지 않을까? (64) 소리를 못듣는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랬으니까. 이 상태로 이미 내게는 완전한 세상이니까.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는 감각 외에 소리라는 감각이 하나 더 있고,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게 내게는 더 이상한 일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드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라고. 나는 축복받은 거라고. (73)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
책 표지로도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교복을 입은 세 명의 여학생, 그 중에 두 명은 비밀노트를 공유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노트를 공유하고 있는 친구 사이의 “너, 나 미워한 적 있어?” 비밀노트로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지만, 더 깊은 마음속에서는 친구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친구 사이의 부러움과 질투가 오해를 만들고 갈등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 마음과 같을 수 있으며, 또 내 마음조차도 수시로 흔들리는데 어떻게 미움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미움의 마음은, 서로의 거리를 세세하게 조율하는 에너지다. 중1~2학년 여학생들의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17) 탈춤 설명에 ‘극..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집이다. 그동안 탈북민의 이야기는 장편의 일부, 또는 단편집의 한 부분으로 엮인 적은 있었지만, 탈북민 이야기로만 묶인 소설집은 처음인 듯 싶다. 여섯 편의 이야기 속에서 알게 된 탈북민들의 생각, 상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탈북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 그 돈으로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또 탈북민을 배신자이거나 북한에서 뭔가 문제를 일으켜 내려온 사람으로 생각한다. 탈북민들은 정부로부터 임대아파트 등을 지급받지만,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 비용으로 보증금을 내느라 금방 궁핍해 진다. 탈북민들은 교육수준이 낮으며, 대학을 나왔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을 수 없어 취직하기도 어렵다...
열일곱 ‘나’는 학기 초 게임하며 친해진 친구 ‘서찬희’가 태권도 유망주 ‘안승범’이 주도한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한 자책으로 달리는 트럭에 뛰어들고 크게 다친 ‘나’. 병원에서 친해진 태권도장 관장에게 권투를 배워 복수하려고 한다. 줄거리에서 짐작하듯, 이야기는 학교폭력의 방관자 입장에서 그려진다. 이야기에는 큰 반전이 있다. 그만큼 학교폭력에서 방관자 역시 큰 상처를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성장 소설이 그렇듯, 이 책에 등장하는 교사의 모습도 학교폭력을 방조하거나 학교폭력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모르는 무능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우리 주변의 여러 학교가 따뜻하고 편안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항변하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