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시간(박현숙)

 

표지를 보니, 오르세미술관의 시계탑이 떠올랐다. 둘씩 짝지어 가는 친구들 사이에 홀로 걸어가는 인물이 주인공인가 싶다. 시곗바늘이 1110분을 가리키는 것은 인간의 생애 중 청소년기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책 제목이 "6만 시간"이라 이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밝은 느낌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는 추리소설 느낌이 나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대신 주인공에게 일을 시키는 영준이는 왜 여자들만 곤란스럽게 만들까, 출생의 비밀 등 주변인들과는 어떤 관계일까.

서울대를 나와 미국까지 유학 갔다 다시 돌아와 통닭 신메뉴 개발에 의욕을 보이는 큰누나는 아빠의 반대를 물리치고 어린 시절 꿈이었다는 닭집 주방을 들어갈 수 있을까?

네일숍을 차린 작은누나는 제대로 장사를 할 수 있을까?

통닭집에서 일하는 짱구형은 그 여자와 결국은 만나게 될까.

 

줄거리를 정리하면 스포일러 될 것 같아 의문만 품어 본다.

‘6만 시간이라는 청소년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보니,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람과 사건과 만나면서 성장한다. 덜 떨어져 보이는 주인공 , 큰누나도 짱구 형도. 나이도 많고 자수성가한 아빠도 큰딸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변하고 성장한다.

어떤 면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영준이’, 인생이 쉬운 작은누나에게는 좀 더 치열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믿는 영준이의, 삐뚤어진 복수는 결이 꼭 같지는 않지만 개인의 불만을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돌리는 문제, 또 영준이의 의도대로 쉽게 남을 오해하고 잘못된 기억을 형성하는 가짜 뉴스의 문제도 잘 나타내고 있다.

 

(34) 소문은 SNS 물결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오미진의 기획사와 오미진 엄마 아빠가 나서서 오미진의 결백을 주장했고, 결국 증거도 없는 헛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오미진을 바라보는 아이들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62) 설아는 졸업할 때까지, 아니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커닝했던 그 아이,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불릴 거다. 어느 순간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 말을 빼먹을 수도 있다. 설아는 커닝 페이퍼 사건으로 물살이 센 물 위에 놓인 아슬아슬한 나무다리 위를 걷는 아이가 된 거다. 언제 어느 곳에서 벌어질지 모를.

 

✎ 열심히 살아가려는 여성들을 돈 때문이라고 왜곡되게 바라보는 영준이의 망신주기 방법. 두 사례 모두 익숙한 장면이다. 누군가는 오해하게끔 정보를 흘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확대해, 결국에는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큰 상처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방식을 학습시키고 있으니, 이런 문화가 사라지려면 언론이나 정부기관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의사실 공포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95)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하기 싫으면 안 한다고 해도 돼. 너한테도 그럴 권리가 있어. 그 권리는 누구나에게 다 주어지는 거야."

"다른 일에도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해. 참고 말하지 않는 게 최고는 아니야. 나도 그걸 늦게 깨달았어. 투정을 부리고 싶으면 투정도 부려."

 

✎ 싫다고 말하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싫어."라고도 하지만 여러 관계나 분위기에 눌려 커가면서 가장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그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처 '결정'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지는 자세의 지속적인 경험 속에서 홀로서기도 가능할 것 같다.

 

(228) "사람마다 사정 있어, 새끼야. 다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마음속에 분노만 키우지 말라고. 나중에 그 분노가 나만의 판단으로 인한 거였다는 걸 아게 되면 되게 슬프거든. 후회도 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는 않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알아? 생각할 것도 많은 그 시간에, 할 것도 많은 그 시간에, 웃을 일도 많은 그 시간에, 친구도 많이 사귈 그 시간에 미움과 분노만 이글이글 키우면서 보냈다고 생각해 봐라. 아주 땅을 치고 싶은 정도다."

 

✎ 미혼모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짱구가, 영준이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하지만 짱구가 그러한 시간을 꺼내 깨달았듯 영준이 역시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6만 시간
국내도서
저자 : 박현숙
출판 : 특별한서재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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