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난민(표명희)

우리 사회에서 난민이 큰 이슈가 되었던 일은 2015년 시리아에서 그리스로 떠나던 난민선이 전복돼 익사한 세 살배기 어린아이의 시신이 담긴 뉴스였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난민 수용에 소극적이던 정책이 돌아서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난민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작년 제주도에 500여 명의 예멘인들이 난민을 신청하면서부터다. 예멘은 과거 우리나라, 독일, 베트남과 함께 이념 간 대립으로 분단되었다가 통일된 나라로 자주 거론되었다. 통일된 나라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예멘은 종교 갈등과 정치 사정 등으로 내전이 계속되면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일제 식민지를 거쳐, 세계대전에 맞먹는 전쟁을 치러야 했던 우리나라도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인도주의를 넘어 특별한 경험을 가진 우리에게 난민 문제는 역지사지의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관련 기사 http://kor.theasian.asia/archives/218511

 

이 책 어느 날 난민에서도 종교적인 문제, 부족의 관습, 민족 간의 대립, 전쟁의 아픈 역사 속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난민을 신청한 외국인 못지않게,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우리나라 사람들도 난민으로 그려지고 있다. ‘살아오면서 나쁜 일도 안 했는데, 나는 왜 이렇죠?’라는 생각을 어느 날하게 되는 평범한 사람 대부분이 이 시대 난민일 수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어쩌면 인류의 진화 과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난민이었다. 있던 곳에 살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난민들의 이동과 미세한 연대가 지금의 인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니까.

 

(73) “반대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제때 문이나 열 수 있을지, 원.”
넋두리하듯 말하며 김 주임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뭘 반대해요?”
아이가 불쑥 물었다.
웬일로 녀석이 질문을 다 하나 싶어 그는 반갑게 눈길을 돌렸다. 아이는 그새 큐브를 완벽하게 맞추어 놓았다.
“아, 뭘 반대하냐고? 이 멋진 건물이 여기 있는 걸……. 주민들은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지, 시민 단체는 외진 섬에 있다고 반대하지.

 

 우리나라 안에서 난민이 발생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여기에 딱 맞아 떨어져 특수학교도 설립하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 그들도 난민이다.

 

(114) “사실 난 여자한테는 관심 없어요.”
해나의 의중을 헤아린 듯 그가 말했다.
그의 침실 벽에 걸린 슬픈 눈빛의 배우가 허 경사와 겹쳤다. 그건 허 경사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얽힌 내밀한 고백이기도 했다. 그의 집에서 유난히 따로 노는 분위기의 침실에 대한 의문이 그제야 풀렸다. 다행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연민과 서운함이 얽힌 혼란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성 소수자 역시 우리 사회에서 난민이다. 

 

(126) 두 개의 섬을 연결해 메우고 다지며 자연에 인공을 더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땅이 이 섬이었다. 어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과거도 없고 뿌리도 없는 곳. 사람으로 치자면 ‘근본 없는 자식’ 같은 땅이 이곳이었다. 그것이 자신과 이 섬을 끈끈하게 이어 주는 연결 고리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두 개의 섬을 매립해 하나의 새로운 도시로 개발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근본은 든든한 뿌리이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강요로 그려진다. 따라서 근본 없는 이 섬은 우리나라 사람이나 외국인에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252) 가던 길을 문득 멈추고 허 경사의 집을 올려다보았다. 밤바다를 표류하는 이에게 길을 밝혀 주는 등대처럼 보이는 집……. 그 주인인 등대지기도 알고 보면 해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세상의 이런저런 난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끈끈한 유대감을 재차 불러일으켰다.

(278) “이 지구별 위에서 인간은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어.”
털보 선생이 소장의 생각에 동조하듯 받았다.
“난민 유전자를 나눈 사람들의 미세한 연대로 이루어진 게 인류 아닐까요?”

 

 난민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외국인 2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들의 죽음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수 있다.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연대를 통한 유대감에 있지 않을까?

이럴 때 우리 나라도 어려운데 다른 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문제제기가 참 많다. 이것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우리 사회의 문제로 함께 풀어가야할 문제다.

 

*난민 조약(難民條約) : 법률 국제법에서난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반 사항을 규정한 조약임의 귀국재이주(再移住), 귀화에 대한 편의 제공불법 입국 난민에 대한 배려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나라로의 추방이나 송환의 금지 따위가 규정되어 있다.

어느 날 난민
국내도서
저자 : 표명희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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