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소년(오문세)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19. 4. 17.
열일곱 ‘나’는 학기 초 게임하며 친해진 친구 ‘서찬희’가 태권도 유망주 ‘안승범’이 주도한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한 자책으로 달리는 트럭에 뛰어들고 크게 다친 ‘나’. 병원에서 친해진 태권도장 관장에게 권투를 배워 복수하려고 한다.
줄거리에서 짐작하듯, 이야기는 학교폭력의 방관자 입장에서 그려진다. 이야기에는 큰 반전이 있다. 그만큼 학교폭력에서 방관자 역시 큰 상처를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성장 소설이 그렇듯, 이 책에 등장하는 교사의 모습도 학교폭력을 방조하거나 학교폭력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모르는 무능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우리 주변의 여러 학교가 따뜻하고 편안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이 책에 그려진 '자연 상태'의 교실도 아직 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따돌림과 폭력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연결고리, 순환고리를 끊지 않으면 폭력은 곧 재발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꾸준히 '싸우는 소년'이 되어야 한다.
(26) 권투는 규칙이 있는 스포츠다. 학교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벨도, 지저분한 반칙을 감시하는 심판도, 의욕을 잃은 선수를 위해 수건을 던져 줄 세컨드나 이쪽이 쓰러지지 않도록 응원해 주는 사람도 없다. 교실은 룰이 존재하지 않는 싸움판이었다
(113) 아무래도 선생들은 이런 덜떨어진 배려가 교실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서찬희에 대한 괴롭힘이 심해질수록 담임은 기회가 될 때마다 줄기차게 다들 사이좋게 지내라, 친구를 괴롭히는 건 나쁜 행위다, 서로 보듬어 안는 학급이 되어야 한다, 는 훈계를 쏟아 냈다. 그런 말들이 용한 부적처럼 컴컴한 교실 벽에 붙어 아이들을 빛으로 인도해 줄 거라 여기는 듯했다.
차라리 모르는 척 넘어갔으면 그게 더 도움이 됐을 거다. 어른들의 겉만 번지르르한 감싸기는 결국 째는 나약하다, 는 공인된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건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나약한 아이. 전에 서찬희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낙인이 찍혔다.
(183)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똑똑하든 멍청하든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예상하는 것보다 더 악랄해질 수 있다. 나는 학교에서 그런 예를 수도 없이 보았다. 안숭범 패거리. 소각장에서 본 운동부.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눈감아 주던 대독(선생님)이나 은근히 즐기던 강준혁, 그리고 아예 관여하지 않으려던 양아영과 우리 다임 같은 사람까지.
(191) "난 항상 똑같지. 그래도 내 밑으로 몇 명 들어와서 전처럼 바쁘지는 않아. 이렇게 잡담할 시간도 있고."
나는 자연스럽게 수 간호사가 서류철로 내리치던, 뒷모습으로만 보고 지나친 간호사를 떠올린다. 한때 내가 전전긍긍하며 지켜본 막내 간호사의 고초가 이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수 간호사에게는 잘된 일이지만, 모두에게 잘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전에 수 간호사를 못살게 굴던 사람들도 모두 그런 막내 간호사의 시절이 있었을까. 나는 입술을 깨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서서 끊어 놓지 않는 한 영원히 그렇게 돌고 돌 거다.
(217) "해야 한다고 결심한 싸움을 외면하면 그게 평생 동안 니 머릿속을 헤집으며 따라다닐 거야.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 돼도 뒤로 뛰어내리지 말고 앞으로 걸어가. 이겨야 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싸우는 걸 멈추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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