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듣는 시간(정은)

청각 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은 어떨까. 듣지 못하는 불편함 때문에 답답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이 짠하게 보이지 않을까?

 

(64) 소리를 못듣는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랬으니까. 이 상태로 이미 내게는 완전한 세상이니까.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는 감각 외에 소리라는 감각이 하나 더 있고,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게 내게는 더 이상한 일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드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라고. 나는 축복받은 거라고.

 

(73)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빴다.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끄럽다는 표현을 나도 드디어 쓸 수 있게 된 건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살아갈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세상을 시끄러웠다. 소리가 들린다기보다는 소리가 온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졌기에 특별하게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장애를 재능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정체성이 되어 서로에게 집중하는 공동체를 이룬다고 한다. 들을 수 있는 게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고.

 

그런데 주인공 수지는 장애를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67) 할머니는 달콤한 초콜릿을 꺼내 내 입에 넣어 주면서 말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가장 속상했다. 내 귀가 안 들리는 게 후전적인 원인이라는 걸 안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내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으면 적어도 존중받는 느낌은 든다. 내가 원망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대처가 아니라 원망 받을까 봐 평생에 걸쳐 해 온 거짓말이다. 언제나 진실이 낫다. 설령 그것이 아픈 진실이라도.

 

(142) "네 엄마가 그것을 후회했는지 어쨌는지 나는 몰라. 근데 무서웠을 것 같기는 해. 어른들도 아직 자라고 있는 중이야. 배우고 있는 중이고. 그렇게 불완전한 사람들이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삶을 선택하고 개입할 수 있는다는 게 나는 가끔 너무 무서워."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장애가 생겼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자신도 불완전하면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삶을 선택하고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에 나오는 어른들도 불완전해 보이거나 그들 스스로도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빠가 쌍둥이인데 누구인지 모른다거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꿈을 찾아 해외로 유학 가는 엄마, 고모마저도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자신의 몫은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142) "내가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충고는 이거야.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많을수록 잘 살고 있다는 증거야. 그런 순간이 네 인생을 바꾸는 거야. 지나고나서 돌아보면 그런 순간들이 인생을 덜 후회하게 만들었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

 

청소년소설인데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많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그래서 밑줄 그을 부분이 많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며 내면의 나와 만날 기회를 주는 이야기이다.

 (169) "나는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고 싶어. 사람들 내면에 이미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낯선 감각을 깨우쳐 주고 싶어. 감각을 확장시키고 재분배해서 사람의 몸이 바뀌게 하고 싶어. 몸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니까. 근본적으로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사람과 세상을 바꾸고 싶어. 그걸 언어로 하면 시인이겠지? 우리는 그걸 산책을 통해서 하고 있는 거야."

 

산책을 듣는 시간
국내도서
저자 : 정은
출판 : 사계절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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