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김려령)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12. 6. 8.
매주 사소한 도난(분실) 사건이 한두 건 있다. 삼선슬리퍼는 기본이고, 체육복 반바지, 교과서 등. 경력이 쌓이니 아이들과 만나는 3월 첫 날부터 도난 사건에 대한 주의를 하고 시작한다. 우리 반 다른 친구들을 ‘도둑’으로 생각하기 전에 관리부터 잘 하자고. 솔직히 이런 지도 사항은 면책용일 뿐이다. 어차피 도난(분실) 사건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찾아줄 수도 없으니 담임으로서 할 말은 다 했다는.
그런데 가장 골치 아픈 도난(분실) 사건을 소재로 <완득이>의 김려령이 글을 썼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여러 대목에서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을 통찰하는 작가의 안목에 감탄했으나, 정작 해일의 행동은 결말이 되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일의 범죄 행각(?)을 쉽게 용서해 준 쿨하고 멋진 진오와 지란도. 같은 또래이기에 가능한 걸까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혹시 너무 꼰대같은 생각만 하는 걸까 하는 혼란스러움도 있었다.
해일의 거의 완벽한 절도 행각, 아버지로 인한 지란의 아픔, 교사로서 고민이 큰 담임, 어정쩡한 위치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해철이 형, 건강한 고딩 진오, 그리고 마음 따뜻한 부모님, 이 모든 캐릭터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아리와 쓰리! 새로우면서도 뭔가 낯익은 느낌이다. 그리고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생계를 위한 것도 아닌, 어쩔 수 없는 도벽으로 인해 무언가를 훔칠 수밖에 없다는 해일이 갑작스럽게 달걀을 부화시키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목걸이 열쇠를 달고 있었던 해일의 아픈 과거를 들여다보라고 하는 작가의 설득에 도무지 넘어갈 수가 없다.
건전지, 전자수첩, 노트북을 훔치는 대도 해일과 달리 삼선 슬리퍼, 체육복, 2~3만 원에 손을 대는 우리 아이들 얼굴이 해일의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질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이든 남의 물건이든 함부로 쓰고 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게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가진 작은 물건이라도 소중히 여겼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따름이다.
작가는 해일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놓인 다양한 현실과 여러 가지 캐릭터를 이야기 하지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놓인 현실을 다각도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상 깊은 구절>
(10~11) 지란 아버지는 꼭 들어야 한다는 인강 때문에 순순히 전자수첩을 내줄 수밖에 없었는데,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인강’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강의, 인강. 인강 앞에 무릎 꿇고 최신형 mp3플레이어나 pmp, 전자수첩 같은 기기를 자녀에게 헌납한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기백만 원을 넘나드는 pc도 막강한 인강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데 저런 소형 기기는 차라리 애교였다.
아이들은 인강을 듣다가 제멋대로 화면이 멈춰 버리는 낡은 pc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을 쳤고, 그로 말미암아 성적도 곧 바닥을 칠지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이쯤 되면 부모는 때려 부수지 않는 한 절대로 화면이 멈출 일 없는 최신형 pc로 바꿔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최신형 pc로는 인강과 전혀 상관없는 동영상이나 게임에만 몰두하느냔 말이다. 교육부는 이 땅의 모든 부모에게 최신형 혈압계를 무료로 배포할지어다. 부모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친 건 물론, 바닥을 뚫고 들어가 지하수를 퍼 올릴 만큼의 초인적 정신력으로 자녀하고 마주하고 있으니까.
⇒ 작가의 청소년 생활에 대한 조사와 성찰이 놀랍다. 속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돌아가는 대한민국 입시교육이 과연 정상일까? 또한 이런 비싼 기기로 인해 학급에서 도난사건이 그치질 않는다.
(111) 담임은 연구실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고구마 줄기와 병아리, 그리고 백숙……. 이 소박하고 따뜻한 말들을 열여덟 살 남학생에게 들었다. 고등학생의 뇌는 무조건 대학으로만 채워야 할 것처럼 세상이 떠들어 대는 바람에, 본인들도 그래야 하는지 알고 0.1점마저 절박해한다. 대학을 통과하지 않으면 추레한 인생이 될 거라는 무언의 협박에, 점수와 동떨어진 세계를 탐색하는 아이들은 죄라도 진 것처럼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해일은 그냥 꽂혔고, 그래서 직접 부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이다. 담임의 숨통이 트였다.
⇒ 담임도 해일도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힘든 교사와 고등학생 캐릭터다. 해일의 애초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신선한 충격이긴 하다. 소박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입시에 찌든 아이들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116) 담임에게는 아직도 아픈 기억이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졸업만은 시키려고 옆에 잡아 두었던 제자가, 졸업식 날 깡패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미리 소문이 돌아 졸업식임에도 학교에 오지 않은 선생님까지 있었다. 그날 담임은 제자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맞았다. 녀석은 이제 졸업했으니 더 이상 제자가 아니라고 했다. 과연 선생님과 제자가 졸업으로 끝나는 관계였던가.
⇒ 작가는 어떤 의도로 담임에게 이런 과거를 심어두었을까? 졸업식날 교사를 팬 제자도, 그대로 맞은 교사도, 그 상황도, 작가의 의도도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다.
(132) 해일은 온도나 습도를 잘못 설정한 적은 없는지, 전란하면서 너무 세게 돌린 적은 없는지, 부화기가 어디에 부딪힌 적은 없는지 걱정했다. 어느 한 곳 아프지 않게 나오길 간절히 바랐다. 그럼에도 혹시 아픈 병아리가 나온다면?
‘그래도 내가 키운다.’
동정 따위가 아니었다. 탄생시킨 자의 뜨거운 교감과 사랑이었다.
“내가 니들 낳을 때하고 지금 니 맘이 똑같은 모양이다.”
⇒ 부화와 탄생,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는 해일이 가족!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가장 소중한 교육!
(149) 요즘은 다들 교육을 잘 받아서 능력이나 정보력은 거의 비슷해. 원체 뛰어난 게 아니면 우쭐댈 수 없는 거지. 그러니까 이제 사람을 공격해. 자기가 무슨 바로미터나 되는 것처럼 모든 걸 자신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헐뜯지. 독사과가 물리적 암살에서 지능적 암살로 바뀐 거지.
⇒ 요즘 아이들과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
(152~153)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 는 말에 코웃음 치고, 제자를 위해 초가삼간을 내줬다는 말에는 박수를 치지. 21세기 교사에게 그 옛날 스스의 모습을 원한다면, 너희도 그 옛날 머리 땋은 제자 모습을 해라.”
“우리가 원하는 선생님을 바라는 게 문젠가요?”
“너희가 원하는 선생님만 바라는 게 문제다.”
“선생님들이 학생보다 강자잖아요.”
“강자는 약자에게 물어 뜯겨도 되는 거냐?”
“우리는 물고 뜯어야 겨우 통하지만, 선생님들은 한마디로 끝내잖아요.”
“너희가 정말 선생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아이들이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선생님도 계신 건 사실이잖아요.”
“퇴출시켜라, 쉬쉬한다고 감춰질 세상 아니다.”
“철밥통이라는 말 괜히 있는 것 아니잖아요.”
“깨. 형편없는 사람이 철박통 꽉 움켜쥐고 버티면 깨고 찌그려뜨려. 하지만 단지 너희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멀쩡한 선생님 밥그릇을 거지 동냥 깡통으로 알고 걷어차면 곤란하다.”
⇒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교묘하게 오가며 위로한다. 하지만 교사로 기우는 듯한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179~180) “엄마가 아빠랑 헤어지고부터는 맨날 웃는 거 모르지? 자면서도 웃어.”
~ “아빠한테, 어떻게 아빠한테…….”
허는 몸을 웅크렸다. 뜨거운 오열도 딸의 차가운 말이 박힌 한기를 녹이지 못했다. 미런한 허. 허는 그때까지도 자식이 부모에게 들이대는 윤리와 도덕의 잣대가 얼마나 엄격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모의 손은 다른 남녀와 살짝만 스쳐도 안 됐다. 그런데 허의 손은 다른 여자의 손을 지나치게 많이 잡았다. 지란에에 캐러멜을 너무 많이 사 준 것이다. 너무 달아 생목이 오를 정도로.
⇒ 자식이 들이대는 윤리적 잣대에 못 미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허의 외도는 극히 일부분일 뿐. 작가가 지란의 아버지를 계속 ‘허’라고 붙인 까닭은, 부모라는 허울만 가진 자격없는 부모들을 빗댄 말은 아닌지?
(220)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 잘못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아이. 하긴 일단 인정을 하게 되면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럼 그건? 그럼 그 애는? 그럼 그 선생님은? 그럼? 그럼? 그럼? 도대체 누가 미연에게 인간 평가를 허락한 것일까? 자신이 노린 모습을 위해 왜곡하고 변형해 억지로 짜맞추는 이상한 평가. 대단한 인간 평가사가 아닐 수 없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미연이라는 아이에게는 일그러진 모습만 보일 뿐, 상처는 보여지지 않는다.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낸 캐릭터일까? 분명 있을 법한 인물이지만, 꼭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인데.
(225) 잘하는데 재미는 없어 보여. 아마 잘하는 거하고 하고 싶은 거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걸? 이상하게 빨리 습득되고 몸도 잘 움직이는데, 재밌지는 않은 거야. 나도 그래.
⇒ 잘 하는 데 재미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재능을 가진 아이들? 어떤 유형들이 있을까? 정말 해일이 같은 아이들도 있을까? 이런 말이 과연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234) 남들과 똑같다는 말, 너무 오래 기다렸던 말이다. 남들과 좋게 다른 게 아니라 남들과 나쁘게 달라 계속 나쁜 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천사와 악마처럼 자신은 악마 쪽으로 태어난 거라고. 목에 열쇠를 건 일곱 살 꼬마, 해일. 해일에게 목걸이 열쇠는 외로움과 두려움이었으며 간절한 기다림이었다. 해철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늦게 집에 왔는데, 그럴수록 해일은 더 많이 웃었다. 유치원에서처럼 집에서도 자꾸 울면 가족과 뚝 떨어진 곳에서 벌을 받는 줄로 안 것이다.
⇒ ‘목걸이 열쇠를 찬 소년이 외로움과 두려움’이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을 가지고 나오게 하는 원인이었다는 것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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