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마이 퓨처(양호문)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12. 1. 19.
김탁구가 떠올랐다. 드라마 속 김탁구 말이다. 장세풍을 보면서. 물론 세풍이는 재벌가의 숨겨진 사생아도 아니고, 가난을 이겨내고 회사를 물려받는 ‘어메이징’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탁구가 가진 건강성, 긍정성은 장세풍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생계를 홀로 지고 가는 어머니에, 지체 장애를 가진 누나와 형! 이 속에서 세풍은 방황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의 강호와 닮은 듯 하지만 다른 삶을 살아간다. 강호는 김세윤 선생님과 ‘파랑치타’ 멤버들, 그리고 도윤의 믿음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만, 세풍은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학교를 뛰쳐 나온다. 도윤과 같은 캐릭터인 마성준이라는 아이도 나오지만 자기 어깨 위에 놓인 짐을 이기지 못해 불행한 선택을 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책 속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나중에 작가의 후기를 보니 마성준 캐릭터를 통해 또다른 청소년의 힘든 삶을 보여주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고백이 나온다) 또한 세풍이 다니는 학교에 김세윤 선생님과 같은 분은 찾을 수 없다. 그나마 담임인 나대길 정도가 세풍을 위해 자퇴를 허용하는 정도의 한계를 보인다.
세풍은 가장 자신 있는 ‘건강한’ 몸뚱이로 이 험한 세상을 헤쳐 가려 한다. 물론 절대 녹록치 않다.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하다 장롱을 부수고, 분식집 배달을 하다 외상값도 받지 못하고 잘리고, 술안주를 싣고 가다 교통사고로 입원까지. 이렇게 고생을 하다 보면 탁구처럼 회사를 물려받지는 않더라도 뭔가 반전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작가는 냉정했다. 아니, 현실이 냉정한 건가?
그래도 예비 매형으로 다시 등장한 남부장과 세풍이 덕에 삶의 희망을 얻은 아영이, 언제나 미안한 어머니, 그리고 노동의 건강성을 물려주고 일찍 떠난 아버지까지 세풍은 이름처럼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도 이들이 있음으로 인해 언제까지나 건강한 장세풍으로 이겨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조금만 힘들어도 삶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장세풍 같은 캐릭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학교가 아닌 사회 속에서 희망을 찾는 모습도 색다르다. 장세풍과 같은 학교밖 아이들이 힘든 삶을 헤쳐 나가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책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70~71) 엄마의 잔소리가 길어졌다. 짜증이 났다. 세풍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 알았어.”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세풍 자신도 그게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언제부턴가 형만 보면 괜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당으로 나갔다. 나일론 줄에 널어 놓은 빨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밤이슬이 한 방울 두 방울 이마에 떨어졌다.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누구랑 한번 죽기 살기로 싸워 보고 싶었다. 그러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정신 지체 장애인 형과 누나는 세풍의 마음 속 큰 응어리 중 하나다. 채석장에서 일하던 아빠의 발병과 죽음에 연관된 두 남매의 질환은 소설의 마지막부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지 않는다.
(83) “그래! 짜샤! 나, 오늘 죽고 싶어! 근데 혼자 죽기는 억울하고 누구랑 같이 죽어야 하는데, 잘 됐네. 강아지새끼랑 함께 죽으면 좋지. 나, 강아지 엄청 좋아하거든. 오늘따라 피 맛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두 팔을 옆으로 쫘악 벌리고 녀석을 코너로 몰았다. 세풍의 괴이한 행동에 다른 놈들은 너무 몰라 감히 덤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죽기 살기로 싸워 보고 싶은 울분을 차도민에게 터트릴 수 있었으니. 마성준과 연관된 일이지만,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이 학교 일진짱인 차도민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짱큘라’라는 영광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된다.
(100) “내가 왜 어려? 나, 안 어려, 엄마! 알 건 다 알아.”
그 말을 해 놓고 쑥스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엄마도 얼굴이 붉어졌다.
“요즘은 왜 심심하면 저런 게 자꾸 나오는 거야? 애들 보고 뭘 배우라고? 기풍아, 얼른 다른 데 틀어!”
하지만 형은 못 듣고 계속 보고 있었다. 세풍이도 곁눈으로 슬쩍슬쩍 쳐다보았다.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면서. 화면에는 밤이 어두워지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꼭 껴안고 키스를 나누고 있던 젊은 남녀는 눈발에 차츰 가려지는가 싶더니 끝내는 보이지 않았다.
장세풍이 가슴 뛰는 이 시대의 청소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곳! 공부보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애어른’ 장세풍도 건강한 10대 남자아이였던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대목이다.
(114) “왜? 왜 일어나는 거야?”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어디 가서 뭘 확인한다는 거야?”
화가 많이 났는지 나대길이 큰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이사장실에요. 가서 이사장님 만나 뵙고 직접 물어보려고요. 선생님이랑 친척지간이라는데, 그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요.”
“뭐뭐뭐?”
세풍은 성큼성큼 걸어 교실 밖으로 나갔다.
“너, 이리 못 와?”
나대길이 따라 나와 소리쳐 불렀다. 못 들은 척 1층으로 내려가 화단 길을 지나 느티나무 밑 벤치에 앉았다.
담임인 나대길선생님과 대화 말미 상황이다. 이 학교에는 도통 제대로 된 교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머리를 자르고 뺨을 때리는 등 반인권적인 상황이 도처에 깔려있다. 인권조례가 발표되고 언론이 교사폭력을 떠들어도 오로지 성적을 위해서라면 학부모들도 눈감아주는, 아니 되레 더 때리라고 부추기는 참 이상한 학교다. 세풍의 담임 나대길도 그런 비슷한 부류의 교사다. 세풍과 담임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시트콤이 따로 없다. 하지만 세풍과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끝까지 이어나가는 나대길을 보고,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과 대화는커녕 입을 막아버리는 이 학교 풍토에서 세풍과 말따먹기 수준이지만 대화를 이끌처가는 선생님은 나름 들을 자세는 되어 있다는 얘기. 결국 나대길 선생님은 마지막에 쿨하게 학교를 떠난다.
(116) 작업복을 입고 있는 학교 아저씨를 보면 늘 아버지 생각이 났다. 키와 덩치가 엇비슷했다.
“아저씨 제가 좀 도와 드릴게요.”
땅바닥에 놓인 낫을 집어 들었다. 다 알고 있기에, 아저씨는 왜 나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낫질을 할 줄 아는지 물었다.
“세풍이 너 낫질 할 줄 알아?”
“네, 저 잘해요!”
쪼그리고 앉아 풀을 베기 시작했다.
여느 문제아와 다른 풍모를 지닌 세풍! 화장실 청소, 빨래를 좋아하고, 힘든 노동을 기피하지 않는 세풍은 보기드문 아이기도 하다. 이런 건강성이 참 좋다. 하지만 왜 이리 비현실적인 캐릭터처럼 보이느냐 말이다.
(128) “어떤 골빈 것들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가지고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종아리 한 대 맞았다고 경찰을 부르고 고소까지 하는 미친 것들도 등장했다. 스승의 권위를 짓밟아 뭉개는 막가파 같은 것들! 아니, 어떻게 제자가 스승를 고발하느냐 말이다. 이 나라 이거 망할 징조다!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꼴은 못본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어땠는지 알아? 몽둥이를 깎아 가지고 가서 때려 달라고 통사정을 했었어. 자식들아!”
이 학교 학생부장, 윤리과목, 별명은 허틀러이느 허장구선생님 말씀이시다. 잠을 잤다고 머리를 마음대로 자르고, 깨우지 않았다면서 옆자리 친구와 함께 실내화로 뺨을 때리게 하는 정말.... 근데 이런 막장 교사의 말 중 이 대목에서는 특히 ‘제가 스승을 고발하는’사회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나는, 참 부끄럽다.
(278) “아무튼 처음 그날, 오빠가 나를 무덤에서 끌어내 준 거야. 세풍 오빠! 나, 이 세상 한번 끝까지 살아 볼 거야. 자신 있어! 아버지 없으면 어때? 엄마가 없으면 어때? 가난하면 또 어때? 그렇다고 죽으면 세상에 남아 있을 애가 몇 명이나 되겠어?”
아영이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커다란 두 눈동자에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강한 신념의 불꽃이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아영이. 세풍으로 인해 희망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영이 앞에 펼쳐진 현실이 절대 녹록치 않기에 걱정이 더 앞선다. 물론 죽을 힘으로 살아가겠지만.
(293~294) “화장실 청소 전문업체, 월드 클리닝, 대표 장세풍. 호호호! 이거 장난이지?”
“장난은? 진짜야! 현재 내가 제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게 청소인 것 같아서 남 부장 아니, 매형 될 사람한테 말했더니, 해보라며 청소도구하고 저 중고 오토바이를 사 줬어. 명함도 새겨 주고. 당분간 자기 따라다니면서 명함부터 많이 뿌리래.”
~ “내년에는 조그만 가게를 얻어서 사무실도 정식으로 차리고, 후년에는 세탁소도 하나 차리고, 후후년에는 분식점도 내고, 기회가 되면 야생화 전문 화원도 하나 차리고, 그러면 그룹이 되는 거지 뭐. 그룹이 별건가? 헤헤헤!”
긍정적인 삶의 힘!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세상 속에서 힘을 찾은 세풍의 새로운 시작은 분명 여타 청소년 소설과는 다르다. 가족과 아영이의 사랑으로, 그리고 장세풍의 건강성으로 많은 고난을 이겨나갈 거라 믿는다. 제발 세풍이와 같은 아이가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준>
중1이상
<상황>
가난하거나 남들에 비해 초라한 부모님이 부끄럽다.
나에 비해서 (성적, 외모, 장애 등) 뒤떨어진 형제(자매) 때문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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