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박선희)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10. 6. 8.
우리 지역에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고 나서 학교 모습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표출되고 있다. 그 시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가르칠 수 있는 제반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 인권 조례’ 같은 건 시기상조이며 지금도 아이들의 입장을 헤아려주다 중요한 시기에 놓치는 것이 많다는 입장과 그렇게 인격적으로 무시하면서까지 가르쳐야할 내용이 뭐가 있느냐 결국 수동적인 아이를 기르자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논의가 거세지는 이유는 진보 교육감의 당선과 함께 앞선 ‘바람’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아이에게 추천했다. 학교를 정리하고서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학교에 다니면서 어떻게 생활해 나갈지 정리해보라는 생각으로. 도제교육 보다 더 답답한 학교, 대다수의 아이들이 다니면 다닐수록 절망감을 학습하는 학교, 그런데 벗어날 엄두를 낼 수 없는 학교를 벗어나고자하는 아이에게 학교에서 길을 찾아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이 책으로 그런 간접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꼴찌들이 떴다> 같은 책에서는 학교에 밥먹으로 오는 아이들이 학교 아닌 사회생활을 하며 배워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책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보다 내용과 시각에 있어서 긍정적이다. <모래밭 아이들>처럼 아이들과 기간제교사의 기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약하고, <스프링벅>처럼 입시제도의 모순에만 매달리지도 않는다.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와 같이 부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나오지만 죽을 정도로 다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세상과 등장인물에 대한 시각이 따뜻한다. 그들을 '개념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그들은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상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공감대를 얻으며 설명되고 있다.
강호는 "가정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는 사회에서도 존중받지 못한다"며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가정의 붕괴는 아이들이 숨쉴 베이스 캠프가 훼손되었음을 의미하며 그것으로 가정 불화의 책임을 함께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학교는 '성적'이라는 한 줄 세우기 외에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교과는 학문이 아니라 경쟁을 위한 하나의 종목일 뿐이다. 게임이 끝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게임에 참여하지 앟는 청소년을 학교에서는 사회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 속에서 청소년들은 일탈을 꿈꿀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밴드'를 한다는 건, 가정의 부족한 부문을 재능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며, '성적'이라는 한 줄에서 벗어나며, 사회적인 일탈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상징이다. 사회적인 함의를 벗어난 '폭주족 파랑 치타'는 그러나 밴드 '파랑 치타'로 거듭나 달릴 수밖에 없다. 밴드 '파랑 치타'는 가족과 학교와 사회가 함께가는 공간의 상징이다.
아직 학교가 아이들의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는 이 때, 교육 개혁을 꿈꾼다.
(36) "집에서 인문고 가라 해서 갔더니 완전 미치겠더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붙잡아 놓고 공부시키고. 존나 삭막한 거야. 빗나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좀 노는 것 같으면 열나 갈구고 짜증 만땅이었지. 경쟁하는 분위기도 진짜 싫었고. 그래서 학교 자주 빼먹고 그러다 결국 아예 안 나가게 됐어.(중략)
공고는 그다음 해에 갔어. 원래 기계 만지는 거 좋아해서 맘 잡고 기술이나 배워 볼라고. 갔더니 인문계랑 다르게 서클 활동도 활발히 하고 좋더라고. 근데 황당한 게, 공고 애들도 입시 공부를 하네? 공고 나와 봐야 취직 안 되니까 대학으로 방향을 트는 거지. 아님 만판 놀다 졸업장이나 대충 따는 거고. 그때부터 술 담배 하고, 당구 치고, 돈 없으면 삥 뜯고, 놀러 다니고...."
(95) 아미는 주유소로 차가 들어오자 "엇써 오십시오!"하며 달려갔다. 엉덩이 아래에서 팔락거리는 주름 스커트를 보니 더럽게 우울했다. 집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는 밖에서도 존중받지 못한다.
(149) 밴드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김세욱 선생님 때문이었다. 외출하기 전 선생님은 말했다.
"밴드부 무조건 해라. 시간이 남아돌아 기타 연습하는 거 아니잖아. 그리고 맹탕으로 학교 다니다 졸업장만 받으면 뭐해. 거기 존재했던 이유가 있어야지."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거기 존재했던 이유가 있어야지. 중요한 걸 놓칠 뻔했다. 머릿수 채우러 학교 가는 건 나 스스로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
(194) "학교라는 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완고해. 너희 생각이 받아들여지긴 힘들 거다. 그 시간에 결석해 봐야 성가신 일만 생길 거야. 한 번은 그냥 넘어갔지만 두 번 이상 반복되면 분명히 문제가 돼. 학생부실에 가 봐서 알잖아. 벽에다 헤딩하지 말고 그 일은 포기해. 밴드부는 어렵게라도 이런 식으로 해 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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