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고정욱)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10. 2. 2.
제목과 표지처럼 밝고 유쾌하다.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세상에 쌓인 울분이 많아 폭력 써클에서 활동할 정도로 폭력적인 ‘재석’이가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가 어둡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사건 전개나 상황이 ‘지나치게 장애를 극복한 작가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사건과 상황이 작위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부라퀴 할아버지와 재석이 집안의 관계라든가, 보담이의 태도, 재석이의 태도 등이 일반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소설의 개연성을 떨어뜨리지만, 본격소설이 아닌 청소년 소설이므로 비슷한 상황이 있는 학생들에게 의미있는 접근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재석이와 민성이의 폭행은, 학교폭력에 해당하고 경찰에 신고가 된 일이므로 학교폭력회의를 통해 풀어가야한다. 따라서 교장은 개인적으로 징계를 내릴 수 없다. 또 처벌기간이 규정보다 길며, 가해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학교폭력은 교장 개인적으로 징계를 내릴 수 없고, 교장이 근거로 제시한 교칙은 실은 학교생활규정에 해당한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게 흠이지만, 젊음을 낭비하고 있는, 특히 재석이처럼 폭력에 노출돼 있는 아이들과 함께 읽어볼만하다.
이 책은 먼저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가르치는 것은 ‘앎’에 국한된 것이 아닌 ‘삶’으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재석이의 행동이 변화하는 데에는 ‘보담’이의 ‘미모’도 한 몫하지만, 장애를 가졌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부라퀴’ 할아버지의 꾸준한 실천이 무엇보다 크다.
또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간접 체험하게도 한다.
삶에 계기가 마련된 재석이는 ‘보담’이의 조언으로 <데미안>, <빠삐용>,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다. 그리고 폭력 써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갖게된다. 고전이라 따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책들도 재석이의 상황에 맞게 제시되자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청소년 문학을 통해 아이들의 흥미와 동기를 이끌고자 하지만 청소년 문학엔 또 여러 한계가 있다. 청소년 문학 이후에 좀더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고전과의 연결을 교사나 학생에게 생각해 보게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학교폭력이 자세히 그려지지 않았다. 또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의 심정도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낮거나 패인 곳에 물이 고이는 것처럼 아이들의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변화무쌍하게 동료들을 할퀴고 있다. 학교의 다른 많은 일들이 담장 안에서 해결할 수 없게 된 지금, 삶의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열패감만 양산하는 학교 제도가 바뀌어야겠지만.
이렇게 책을 읽으면 꼭 끝이 씁쓸하다.
<베껴 쓰고 생각해 보기>
[160~163] “재석이 네가 자원봉사 왔다고 할아버지는 나한테 말씀하셨지만 나 알아. 너 사회봉사 명령 받고 온 거잖아.”
“…….”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었다. 차마 그 사실만은 보담이 끝까지 몰랐으면 했던 것이었다.
“안내실에 계시는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어. 너 사회봉사 명령 온 아이라고. 하지만 괜찮아. 내가 보니까 넌 절대 나쁜 아이가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눈빛이 맑거든.”
눈빛이 맑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재석아, 나는 네가 나쁜 아이들하고 어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을 깨고 나왔으면 좋겠어.”
드디어 기회는 왔다.
“나 읽었어. 그 책 데미안.”
“정말? 어느 대목이 좋았는데?”
보담은 반색을 했다. 할아버지 때문에 우울해하던 모습이 약간 지워지는 것 같아 재석은 뿌듯했다.
“응.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부분이 역시 좋더라.”
“응. 나도 그게 좋았어. 사람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알껍질에 싸여 있는 거잖아. 그걸 깨고 나갈 수 있어야 되거든.”
“으응, 그래.”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이제 좀 더 나은 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한단 말인가. 한번 스톤에 들어온 사람은 스스로 나간 적이 없었다. 나가려 해도 나갈 수가 없다.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가 더 두들겨 맞고 뼈가 부러진 아이도 있었다. 아예 가출을 해서 소식이 끊기기 전에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어.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까 고민할 필요 없이 안 좋은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보라고. 너 담배도 끊으라 그러셨다며?”
“응. 담배는 끊었어.”
“잘했네. 그런 식으로 담배 끊고, 술 먹는 사람은 술 끊고, 늦잠 자는 사람은 일찍 일어나고 그러면서 조금씩 노력하면 좋아지는 거랬어.”
“그럼 굉장히 쉬운 거네.”
“그렇지. 우리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 말이야. 나도 옛날에는 물건을 잘 어지르고 덜렁거렸거든.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덜렁거리는 버릇을 없애고 차분해지는 연습을 하면 그게 나를 변화시킨다고 하셨어. 그래서 요즘은 급한 일이 생겨도 항상 차분해지려고 애써.”
무슨 말을 하든 보담은 막히는 게 없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니?”
“똑똑하긴……. 다 우리 할아버지한테 배운 거야. 아직 우리 할아버지 따라가려면 멀었어.”
“맞아. 너희 할아버지는 대단하셔.”
“우리 할아버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절대 포기하시지 않을 거야. 포기할 리가 없어.”
<생각 거리>
1. 작가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수많은 알껍질을 깨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생활 속에서 '내'가 깨고 나가야 할 '알껍질'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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