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06. 9. 4.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 소설을 즐겨 읽는다. 유치한 면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지만 아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의 언어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쏟아내 주는 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 ‘먹힐 책’이다.
주인공 유미와 재준이를 둘러싼 상황들, 유미와 재준이의 생각이 사춘기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아이들의 언어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요즘 아이들을, 내 아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나 학부모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유미는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 새아빠, 새아빠와 엄마와의 사이에서 낳은 동생 유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학기 초부터 이런 가족사항 때문에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학교가 싫고 모범생처럼 갇혀 있는 학교 친구들이 답답했다. 2학년 초 전학을 와서 더더욱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유미를 이해해주고 처음 말을 건네준 친구가 재준이었다.
재준이는 유미와 달리 ‘범생이’에 수줍음이 많았지만 따뜻한 아이였다. 그렇게 가까워진 둘은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둘은 서로에게 동성친구보다 가까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서로가 관심을 가지는 이성친구에 대해 정보도 주고 조언도 해 줄 수 있을 만큼.
그러던 어느날 재준이가 죽었다. 재준이가 좋아하던 소희라는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그리고 재준이의 유품으로 남겨진 일기장이 유미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재준이가 죽고 난 뒤 슬픔에 빠져 있던 유미는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로 시작하는 재준이의 일기를 읽으며 재준이가 이 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싶어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준이가 자신과 함께 숨쉬고 있음을 느끼고 재준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마음 속에 담는다. 그리고 재준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미워했던 소희도 재준이가 살아있는 동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희를 용서한다.
(51) 엄마는 늘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가 너를 안 때리고 키운 것은 매를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서야. 그런데 내가 매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으로 자라난 건 엄마 때문이 아니었다. 맞지 않고 자란 나는 오히려 매를 무서워해서 어린 시절엔 그야말로 소심한 모범생이었다. 언젠가부터 그 생활에 손을 딱 놓고 뻔뻔하게 나가기 시작하자 학교는 내게 매타작을 하기 시작했고, 사실 나는 그 매타작에서부터 매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94) 나는 마치 죽었다 살아 온 기분이었다. 그러자 문득 시체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이 세상을 살아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달라 보일까? (중략) 아, 재미있다! 당장 오늘부터, 그렇게 졸리던 5교시에도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수업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모든 게 흥미로운 모양이다. 하하! 그리고 이렇게 긴 일기를 다 쓰다니,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우하하!
(133) “무슨 말씀이세요? 우린 선생님 같은 분만 계시면 다들 잘만 커 갈 거예요.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건 에너지가 남아돌아 우리를 쓸데없이 간섭하는 선생님들인 걸요. 그런 선생님들이 다 실연을 해서 선생님처럼 넋을 잃고 다니시면 우리 살기가 훨씬 편해질 텐데……. 애들이 선생님 다 좋아하잖아요? 선생님은 간섭은 안 해도 우릴 대등하게 대해 주시고 마음으로 아껴 주신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그 꼴 보기 싫은 선생들은 아마 평생 사랑도 한번 안 해 본 사람들일 거예요. 할 줄 모르던가.”
(140) 지난번 놀러갔을 때 걔네 엄마가 그랬다. 현재의 학교 교육은 고양이고, 금붕어고, 뱀이고, 코끼리고 모두 모아다가 각자 잘 하는 걸 더 잘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동물들을 똑같이 만들게 하는 교육이라고. 고양이더러 물 속에서 헤엄도 치고, 똬리도 틀고, 코로 물도 뿜으라고 요구하는 교육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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