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헨의 선택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가 아이들에게 수없이 던졌던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특히 ‘너한테 정말 실망했다’라는 말과 그 말을 던진 아이들. 그 말을 들었던 그 때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아이 얼굴에 요헨의 얼굴이 겹쳐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이 책의 저자는 시종일관 요헨이라는 아이의 비행(?) 과정을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다. 친구와 도둑질하고, 싸움을 하게 되면서 감화원으로 들어간 후 다시 감화원을 탈출하기까지 요헨과 그 주변 사람들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 주고 있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요헨의 운명에 대해 독자에게 값싼 동정을 요구하기보다 생각할 그 무언가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이 요헨이고, 제목이 <요헨의 선택>이지만, 주변 인물들이 요헨을 대하는 태도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혼한 후 요헨의 양육권을 가지고 있는 엄마를 먼저 살펴보자. 

특별한 친구나 형제가 없는 요헨에게 엄마는 친구이기도 하면서 누나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혼자서 요헨을 키우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갈수록 힘들고 지친 모습만 보여주고, 요헨과 대화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게 되면서 엄마에게 요헨의 존재는 더욱 버거워진다. 결국 감화원에 요헨을 맡긴 엄마는 요헨과 더욱 멀어져만 간다.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 악셀. 엄마와 소원해지면서 우연히 만난 악셀이라는 친구는 부족한 용돈을 채우기 위해 요헨과 ‘필요’로 만난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만난 엘비라 역시 악셀과 비슷하다. 그렇게 엘비라와 악셀의 잘못된 만남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한 요헨은 어머니의 요청으로 감화원에 맡겨지고 ‘거세된 숫양’이라는 엄격한 담임선생님을 만난다. 오래된 경험과 연륜의 담임선생님은 요헨을 길들이려 하고, 요헨은 다시 반항한다. 


감화원을 탈출해 만난 아버지는 요헨을 역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또다른 인물인 감화원 원장인 카츠와 보건실의 마리아 누나는 요헨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려 하지만, 또 다른 사건으로 요헨에게서 멀어져 간다. 그나마 요헨이 가장 믿고 따르는 존재인 학교(감화원 전에 다니던)의 하멜선생님과 감화원 교생 ‘빨간 수염’은 너무도 짧게 요헨을 스쳐갈 뿐이다.

작가는 요헨을 주인공으로 요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주변 인물들이 요헨에게 다가가는 태도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우리 교사와 부모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요헨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갈 때 요헨의 옆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를 그리고 요헨이 처한 상황은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는가를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책이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읽어볼만한 책이다.
(수업으로 진행하기엔 부적합하지만, 상황도서로서 생각해볼만 하다)


<인상 깊은 구절>

(155) 하멜 선생님, 방금 요헨 예거를 굴복시키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제 생각에는 그 점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여기 있는 것은 우리에게 굴복 당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아이들을 굴복시키고자 한다면, 하실 수는 있을 겁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반항하지 못하게 만들기만 하면 될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곳에서 굴복하는 것만 배운다면 장차 살아가면서 어떻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거는 오늘 아침에 굴복 당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저항한 것입니다.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192) 카츠 춴장은 항상 이렇게 강조했다. “부모에 대해서는 서류에 별로 나와 있지 않아요. 나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 부모들이 이곳에 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답니다. 구두수선공도 남의 구두창을 제대로 갈려면 삼 년을 배워야 해요. 그런데 엄마나 아빠는 누구나 그냥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부모가 된 다음에는, 부모가 되는 어려운 일을 배우려고 조금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자식의 삶을 함부로 결정하거나 규정하게 되죠. 제화공은 구두가 휘거나 비틀리면 가족을 가지런하게 잘라냅니다. 그리고 아예 못쓰게 된 것은 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죠. 제화공이 깐깐한 주인을 만났다면 가죽 손실에 대한 손해를 변상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뭔가 잘못되는 경우에는 늘 아이들 탓이 되고 말아요. 그런 아이들이 우리에게 오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을 다시 적당히 꿰매 주어야 해요.”


(196) 양호실 누나는 매우 친절했다.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이 다정했다. 아이들이 아파하는 걸 알면서도 상처를 치료할 때는 과감했다. 요헨은 양호실 누나가 앞줄에 있던 아이들을 치료할 때 과감하게 처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양호실 누나가 자기들을 위해 늘 뭔가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치료할 때 아프더라도 그런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양호실 누나의 치료를 받을 때 아파했던 아이에게서는 언제나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어쩌면 어디가 아플 때 양호실 누나에게서 대접을 잘 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꼭 상처 난 무릎일 필요는 없었다.


<상황>

-부모님과 대화가 적고, 나에게 무관심하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미래가 불확실해서 두렵다


<수준>

중학교 3학년부터


요헨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한스 게오르크 노아크 / 모명숙역
출판 : 풀빛 200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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