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김려령)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가족과 갈등할 때
- 2008. 4. 28.
‘다문화 가정’, ‘장애에 대한 편견’, ‘외국이 노동자 문제’, ‘교사와 학생의 관계’, ‘가족에 대한 성찰’, ‘이웃 공동체’, ‘꿈’ 등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들을 버무려 맛있는 밥상을 차려 놓은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바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군이다.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생생하고 아름답다.
먼저 주인공 완득이.
아버지는 난쟁이 춤꾼이며 피가 섞이지 않은 삼촌은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지체장애를 지니고 있고, 어머니는 베트남 여자이며 완득이를 낳고 떠나버렸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정의 반항적인 고1. 그러나 완득이는 세상에 담을 쌓고 지내지만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사이비 같은 교회에서 담임을 저주하며 신을 향해 이야기하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담임이지만 꼬박꼬박 말대답하며 소통하고, 늦게 만난 어머니와 말을 섞고, 범생이 윤하의 말을 들어주며 그네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아주 건강한 캐릭터이다.
그리고 담임 ‘똥주’.
완득이 옆집 옥탑방에 살며 완득이의 아픈 구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 앞에서 폭로하고, 완득이네 의견은 듣지 않고 기초수급가정으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완득이에게 배급된 ‘햇반’을 간혹 강탈하는 정말 대단한 교사다. 그런데 이 꼴통 교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완득이와 어머니를 연결시키는 결정적인 구실은 한다. 완득이 삶의 고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완득이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르친다. ‘새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똥주’가 보여주는 삶은 우리 교사들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그 외.
완득이를 사랑하는 난쟁이 아버지와 정신 지체 삼촌, 완득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베트남 엄마, 완득이에게 조폭 꿈나무가 아닌 진정한 꿈을 가르친 킥복싱 관장,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꿈을 향해 좇아가는 윤하는 완득이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그리고 사랑하고 지켜가야 할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간혹 등장하는 ‘씨불놈’이 입에 붙은 앞집 아저씨와, 완득이를 ‘자매님’이라 부르는 핫산 아저씨, 같은 반 꼴통 혁주는 이 소설이 안겨주는 또 다른 재미다.
<괭이부리말 아이들>보다 밝고 긍정적이며, <유진과 유진>의 큰 유진보다 건강한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고, <우리들의 스캔들>의 교사상을 넘어선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인상 깊은 구절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고 매너 있게 경기하라고 했다. 이것을 어기면 이기고도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나는 싸움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지만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다.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상대가 말로 내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도 똑같이 말로 건드릴 자신이 없어 손으로 발로 건드렸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면 상대는 다시 뛰어다녔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말이 쌓이고 쌓였다. 이긴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라고? 이겨야 이기는 거지. 관장님도 은근히 폼 잡기 좋아한다.
* “그래, 우리 몸, 우리가 그렇게 데리고 살자.”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다.* “몇 년 전에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 적이 있어. 전쟁에 관한 거였는데, 미국 애들 럭비하면서 환하게 웃는 그림 옆에, 피 뭍은 붕대를 얼굴에 감은 이라크 아이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더라. 눈물 한 방울 없는 그림이었는데 눈물이 보였어. 아파서 보이는 그런 눈물이 아니었어.”
“아니면?”
“증오. 그 그림이 그렇게 말했어.”
“너도 만날 맞으면서 또 운동하잖아, 네 꿈을 위해서. 나도 그래. 내 꿈을 위해서 죽어라고 공부하는 거야. 내가 나중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미리 배워두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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