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아직 새였을 때(마르야레나 렘브케)


한 가족을 만났다. 장애아를 둔 가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평범한 핀란드 가족이다. 먼저 가족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책의 중반을 넘길 무렵에서야 가계도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대가족이기 때문이다.


먼저 주인공인 페카.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또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랑스러운 페카.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비딱하게 어깨에 붙어있고, 눈은 개구리처럼 튀어나왔으며, 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어 있어 생후 2년을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이다. 그리고 페카와 가족을 사랑하며, 평범한 가족 이야기를 아름다운 서정시처럼 관찰하고 서술하는 둘째 레나, 스웨덴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첫째 마티, 장난기 많은 투오모와 오스카리, 잘 웃지 않는 소니아, 막내로 태어난 야코, 이 아이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자상한 할머니, 마지막으로 대가족 속에서 지치지 않는 사랑으로 가족을 이끌어가는 가난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한다.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에 장애아 페카가 태어나서, 페카가 학교에 적응하는 이야기, 가난 때문에 이민을 계획하고, 페카의 병으로 이민을 포기하고, 다시 핀란드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까지 이 가족의 긴 여정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가난, 고통, 병, 희망, 절망,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이 섬세하면서도 유쾌하게 담겨 있어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특히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마치 시처럼 느껴지는 문장 속에서 주이공 페카는 장애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특별함으로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존재처럼 느껴졌다. 


돌이 언젠가는 새가 될 거라는 페카의 믿음,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는 가족의 따뜻한 시선,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는 낙천성, 힘들수록 사랑의 힘을 확인해 주는 페카 가족 이야기는 색다른 감동이었다. 


요즘 만나는 부적응 아이들의 문제의 발단은 대개 가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핀란드라는 낯서 나라의 이색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을 얻는 페카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장애나 집단 따돌림, 가난, 가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직접적인 갈등상황 없이 무엇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이나 교사, 부모님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80) 페카를 데리고 쇠데르크비스트 박사님한테 두 번째 진찰을 받으러 갔던 엄마가 집에 돌아오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페카는 백혈병이었다. 우리는 그게 무슨 병인지 알고 있었다. 아빠의 동료 가운데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그 병이 피와 관계있으며 완치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모두 벙어리처럼 부엌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페카가 입을 열었다.
“난 만날 우리 식구들한테 걱정만 끼쳐.” 엄마가 페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걱정이 많아야 사랑도 깊어진단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페카를 껴안고 쓰다듬으면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넌 건강해질 거야. 벌써 몇 번이나 아팠나? 그래도 늘 다시 건강해졌잖아.” 페카가 대꾸했다.
“하지만 피는 아프다고 잘라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가 말했다.
“치료할 수 있어.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없으니까. 약이 있을 거야. 암. 있고 말고. 무슨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있어.” 페카가 또다시 돌 얘기를 꺼냈다.
“돌은 병에 안 걸려요. 돌은 피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돌이 새가 되면 병에 걸릴 수 있어요. 죽기도 하고, 다시 돌이 되기도 해요

(89~90) 내가 학교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페카는 새끼 돼지들과 개, 고양이 그리고 닭 일곱 마리를 뒤에 줄줄 달고 내게 뛰어왔다. 페카의 질문은 언제나 똑같았다. “오늘 뭐 중요한 거 배웠어?” 하지만 난 그 질문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날 반기고 사랑해 주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돌이 아직 새였을 때
국내도서
저자 : 마르야레나 렘브케 / 김영진역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0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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