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스1, 2(오지원)


요한, 테호, 안나, 파파스. 

익숙한 듯 낯선 이국적인 이름들(우리 아이들 이름에도 요한, 태호, 안나 등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처음엔 외국작가의 소설인 줄 알았다. 이어지는 이야기도 미국 어느 중산층 가정의 풍경처럼 다가왔다. 작가가 누구인가 봤더니 스물 후반의 젊은 한국 작가였다.(빈민촌 어딘가에 산다는 젊은 여성작가의 역량이 놀라울 정도였다)


인물과 배경의 이국적인 설정은 분명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특히 가정 폭력이라는 까다로운 소재를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버무리기 위한 배경과 인물 설정은 매우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단순한 줄거리와 인간관계, 쉽게 빠져드는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잘 짜여진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2편과 3편의 이야기들도 꽤나 감동적이고 신선했다(특히 2편이). 또한 릴레이 옴니버스 식의 이야기 전개는 10권 아니 20권이라도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은 식상한 감동 스토리와 잘 만든(요새 웰메이드라고 하나?) 동화의 경계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 보인다. 1편을 거쳐 2편에서 절정을 보이는 작가의 역량이 3편에서 익숙한 구조를 띄면서 조금씩 시들어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3권부터는 출판사의 상업적인 기획이 작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쨌든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추었기에 마시멜로 이야기나 해리포터에 견줄만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나와 남의 상황을 거꾸로 생각해 보기, 소통하기, 내 마음 표현하기 등에 대한 통찰력은 분명 뛰어나다. 특히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기에 모두에게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소외되어 손에 잡히지 않는 더 좋은 책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이 너무 일찍 대중성과 상업성을 얻었기 때문일까?


<인상 깊은 구절>

(51) 아이들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듯, 요한 씨도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도 요한 씨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는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어른이기 때문에 모두들 그가 잘 알아서 이겨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어른이라고 해서 더 작거나 약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른이기 때문에 그는 상처받은 마음을 터놓을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힘겨움을 말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아픈지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어른이었기 때문이었다.


(88) 아내가 죽고 난 뒤에 그 상황을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았다면,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거꾸로 생각해 보았다면 그 힘겨움을 이겨내기 쉽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요한 씨는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96) - 난 엄마가 보고 싶어도 참을 수 있는데 아빤 그럴 수 없어서 더 보고 싶지? 그치?
안나의 말에 테호가 끼어들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안나는 요한 씨의 등을 여전히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한테 오빠가 있잖아. 근데 아빠한테 아무도 없어.


<수준> 초5부터


<상황> 가난하거나 남들에 비해 초라한 부모님이 부끄럽다 / 부모님이 이유 없이 매를 자주 들고, 욕설을 많이 하셔서 힘들다 / 그냥 부모님이 싫다 / 나에 비해서 (성적, 외모, 장애 등) 뒤떨어진 형제(자매) 때문에 부끄럽다. /내가 한없이 하찮게 여겨진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