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마르야레나 렘브케)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가족과 갈등할 때
- 2007. 12. 14.
몇 년 전 광주국어교사모임에서 주관한 태백산맥 문학기행에서 조정래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라 아들과 갈등을 풀어냈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소설가에다 성장과정에서 형제까지 많았던 조정래 선생님은 아이를 하나만 낳기로 했고, 그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엄하게 길렀다고 한다.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성인이 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어느 날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아내의 이야기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단다.
<태백산맥> 4부를 쓰고 있는 터라 한시가 급했지만 자식이 더 소중했기에 아들과 함께 속초까지 2박 3일 여행을 갔단다. 여행하면서 잔소리보다는 눈에 보이는 풍광을 이야기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대로, 또 차도 마시며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돌아오는데 고갯길에 멀미가 심했던 아들이 좋은 길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내 동해안을 따라 대구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고 했다. 멀리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그만큼 부자간의 관계는 돈독해졌으리라.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을까 고민도 하면서, 조정래 선생님이야 입담이 좋으니 2박 3일 아들에게 진심을 충분히 보여주셨겠다는 부러움도 가졌다.
그런데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을 읽으며 그런 걱정을 조금 덜하게 되었다. 이 책도 아버지와 딸이 여행을 다녀오는 이야기이다. ‘함메르페스트’는 아버지의 정신적인 안식처다.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일을 자신의 실수로 망친 레나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려한다. 그를 본 아버지는 레나와 함께 함메르페스트로 여행을 떠난다. 함메르페스트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레나는 여행을 하며 아버지의 친척들과 어울리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여행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차츰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또 가난한 가정 형편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또 결혼 후 버리고 나온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접하면서 아버지를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꼭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의 고요함이, 예전의 모습에서 다양한 대화가 이루어지게 한다.
성장 과정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가장 큰 일은 부모님이 그동안 믿었던 것보다 빈틈이 많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또래 친구들을 더 믿고 따르며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과 대립하는 것 아닐까.
내년부터는 여러 가지 이유로 5월에 10여 일 단기 방학이 생긴다고 한다. 책 속에 길이 있고, 미래를 위해 공부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날 서로 부대낄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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