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의 고래(이금이)

 

수련회 덕분에 따뜻한 봄날 등나무 아래서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수련 활동에 참여하기는 그렇고 숙제는 해야 하고, 야외 활동하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앉아 읽기 시작한 책을 점심 먹고 나서까지 들고 다니며 읽었다. 조만간 이 책을 빌리러 올 아이들이 여럿 있을 것 같다.

 

<주머니 속의 고래>에는 여러 가지 표정이 있다. 가끔 대견스럽지만 대체로 엉뚱한 ‘현중’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지을 웃음과, 햇빛을 삼킨 지하방에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연희의 처연한 얼굴과 연희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슬픈 선생님의 모습이 나온다. 더 이상 절망적이지 않아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민기, 현중, 연희가 꾸준히 자신의 꿈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하늘말나리’ 같다. <주머니 속의 고래>의 주머니 속에는 <유진과 유진> 뿐만 아니라 <너도 하늘말나리야>도 들어있어야 할 것 같다.

 

<주머니 속의 고래>는 이금이 씨다운 책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유진과 유진>과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며 그래서 세 작품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세 권 모두 등장인물들이 비슷한 또래고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를 등장인물의 처지에서 돌아가며 속 깊은 이야기를 연결해 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초등학교 고학년의 이야기로, 이른반 결손 가정에서 살고 있는 세 아이들이 "혼자만의 얼굴을 본 사람만이 가져야 하는 예의"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이야기가, <유진과 유진>에서는 바람에 떨어져 버린 그릇의 소리를 통해 같은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기를 쓰고 달려들어도 안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거짓말처럼 친구 따라 갔다 타고난 끼로 세상을 주름잡는 사람도 있다. 내 눈으로 보기에 나는 저 사람보다 불행하며 그래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 자신의 처지에서 삶의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부족함 없는 살아가는 민기와 현중이도, 찢어지게 가난한 연희도, 입양아라는 사실을 몰랐으면 좋았을 준희도, 그리고 술만 취하면 다른 사람까지 부추기며 고래사냥을 가자는 아빠도, 공개 입양을 선언한 준희의 양부모도, 준희의 생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희에겐 한없이 무책임한 엄마가 증조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각자 다르지만 감당할만한 세상의 무게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만남과 소통은 시작되고,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으며, 미래를 바라보고, 아기 고래를 품에 안게 되는 것은 아닐까.

 

(108) 아빠의 애창곡은 <고래사냥>이란 노래였다. 일등도 아닌 삼등 기차를 타고 동해로 고래 잡으러 떠나자고 남들까지 충동질하는 노래였다. 그런 노래를 애창곡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식의 꿈 또한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185)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루 종일 햇볕에 달구어진 길에서 후끈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이상하게 드디어 벗어났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준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연호 손을 잡고 있던 선생님이 준희를 돌아다봤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241)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금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아빠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민기는 아빠 노래를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하늘에 뜬 반달이 등을 내놓은 채 바다를 헤엄치는 아기 고래처럼 보였다.

‘그래,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 나 자신이듯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야.’

민기는 손을 뻗어 그 아기 고래를 잡아 주머니에 넣었다.

 

자신만이 불공평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거나, 사물의 속보다 겉모습만 좇는 아이들, 특별한 꿈이 없는 아이들, 그러니까 많은 시간을 학원에 의지하며 왜 공부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과 읽고 싶은 책이다.

 
 
주머니 속의 고래
국내도서
저자 : 이금이
출판 : 푸른책들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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