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하늘말나리야(이금이)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가족과 갈등할 때
- 2002. 10. 18.
이번 추석에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한 가지 생각을 했다.
계속해서 어떻게 이 책을 검증할까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던 터라 우리 반 학생에게 한 번 읽혀보고 그 느낌을 물어자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전부터 눈여겨 오던 ‘수지’로 바로 낙점했다. 평소 독서량이 다른 학생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고 집중력도 높기 때문에 이 책을 하루 동안에 읽히고 또 감상문까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수요일 하루 동안 읽혔는데(그날은 우리반이 기술가정 시범수업 하는 날이라서 반전체 아이들이 바빴음에도-청소하느라, 연극준비하느라) 오후 5시까지 한 권을 거뜬히 읽어내고 감상문까지 착실히 써서 내미는 것이었다.(다른 수업시간 중에 읽은 것은 결코 아니다.) 앞으로 수지에게 책과 관련해서 의논을 많이 해야겠다며 고마움을 표시하자 좋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실 수지의 독서능력보다는 수지가 책 속의 아이들과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더욱더 수지에게 책을 읽혀야겠다는 마음을 확고하게 했다. 수지의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정방문 때 집에 들렀을 때 집안에 부모님이 안계시고 할머니와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기에 수지가 정말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알고 싶기도 했다.
내가 책을 권한 수지는 이런 아이이다.
일단 자기 주장이 강한 면이 있다. 대면을 한 첫날부터 인상을 강하게 남겼으니깐. 교실에 들어서니 온통 칠판이 ‘유재연’이란 이름으로 낙서가 되어 있었다. 누굴까 했는데 자신이 당장 손을 들고 ‘유재연 부인’이라고 밝히는 당당한 아이가 바로 수지였다. 양말은 보통 흰 양말을 신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독특하게 빨간 줄무늬가 있고 무릎까지 올라온 양말을 신은 아이. 자기소개할 때에도 ‘유재연’이라는 이름이 떠나지 않았고, 도대체 유재연이 누구인가 했더니 백화점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하는 무명의 힙합댄스그룹(그룹 이름이 unknown이다. 그래서 수지 작문공책 이름도 그렇게 한글로 지으라고 했음에도 unknown이 되었다. 지금은 그냥 작문공책이 제목이다) 멤버 중의 하나였다. 수지는 매주 그 곳에 가서 유재연의 얼굴을 보고 왔고, 수지의 교과서는 온통 유재연의 사인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수지는 또 감정표현이 직설적인 것 같으면서 속을 잘 보이려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리고 판단이 매우 자기 중심적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국어 수업 중에 우리 반에 있는 친구들 중에 대상을 한 사람 선정해서 자신이 관찰한 일기를 쓰고 그 사람을 맞추어 보는 게임 비슷한 수업이었는데 수지가 당당하게 손을 들고 나와서 한 친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한 수지는 그 아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키가 크고, 수업시간에 가끔씩 엎드려 있으며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가끔씩 콧물이 흐르는 것을 본적이 있고, 잠잔 뒤에 침을 흘리거나 이빨에 고춧가루가 낀 것을 보았다고.. 그러면서 그림은 자기 딴에는 그 애의 얼굴과 가장 가깝게 그렸다고 하면서 이상한 얼굴그림 하나를 반전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반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했고, 처음엔 영문을 모르던 관찰대상인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반은 일순 침묵했고 수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반아이들과 나는 아무리 그 아이에 대한 여러가지를 수지가 보았더라도 친구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렇게까지 묘사할 필요가 있냐며 나무랐지만, 수지는 자신이 본 것 그대로를 설명했을 뿐이라며 자신은 사과할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고 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울던 친구에게 사과를 했지만 정말 마지 못해서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수지는 책을 읽을 때는 굉장히 집중력이 좋았다. 처음엔 주로 ‘해리포터’류의 환타지 물을 읽는 것 같더니 역사책부터 거의 닥치는대로 책을 읽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런 수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재연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주 싱겁게 끝났다고 했다.
언젠가 ‘축복받은 성격’에서 아이들과 서로의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수지에 대해서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나오는 스토커 기질이 있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긍정하고 본인도 수긍했었다. 너무 집착하지 말고 또 애정을 가지면 좀더 끈기를 가지고 인내하라는 충고를 남겼는데 바른 처방이었는지 그 때 그말을 하는 것이 옳았는지조차 나도 판단하기 어렵다.
어쨌든 2학기 들어 많이 차분해진 수지를 볼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할 줄도 알고, 1학기 때처럼 튀는 행동을 많이 삼갔다. 시키지 않았는데 방학 중에 읽었던 책목록과 독후감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 했고, 특히 방학 전에 반 전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던 ‘내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에 대한 독후감은 뛰어난 관찰력과 사고력이 돋보였다.
어쨌든 이런 수지의 눈으로 검증한 ‘너도 하늘~’은 상황별도서목록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뻔한 결론이었지만 나름대로 이 아이의 눈에 비친 책의 장점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다.
먼저 수지의 독후감을 읽어보자.
2학년 8반 김수지
2002.09.25.
나는 오늘 학교에서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우리반 선생님의 추천도서였다.
너무나 좋은 책이라 나 스스로, 내 의지로 읽지 못했던 점이 너무 아쉬웠다.
이 책의 주인공인 미르, 소희, 바우... 이 세 명의 아이들은 ‘가정결손’ 아이들이다. 나는 가정결손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엄마나 아빠를 잃은 아이들... 미르는 아빠를 잏고, 소희는 부모님 두 분 다 잃고, 바우는 엄마를 잃은 아이다. 나는 이 책을 부모님 이혼이나 가정결손 문제로 슬퍼하며 마음의 빛을 잃은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도 어렸을 때, 엄마와 헤어진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애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삐뚤어진 아이들에게도 정말 권장하고 싶은 책이다. 하늘말나리꽃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이며, 하늘을 보고 스스럼없이 자라는 꽃이다.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고 생각되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처음 들어올 때 다짐했던 일이 있다. 1학년 때처럼 잘하자! 못하더라도 노력하자! 그리고 책을 많이 읽자!란 다짐이었다. 전엔 공부가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라 속이 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도 스스로 열심히 하고 틈날 때 책도 많이 읽기 때문에 참 좋았다.
그리고 소희가 부러워졌다. 소희는 부모님과 추억이 없는 애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가꾸며 늘 올바르게 행동하는 아이이다. 그리고 남을 생각하는 능력과 이해심도 높은 아이다. 주위환경이 좋지 않지만 착실한 소희가 샘나고 부러웠다. 소희가 생각했던 말이 떠올랐다. “상처잆는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 정말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TV 속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가정결손이며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한 학생. 공부도 잘하고 성실한 학생. 주위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훌륭하게 자라난다. 정말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도 내 마음 속에 진주를 키울 생각이다. 소희처럼 말이다.
이젠 미르를 생각해보려 한다. 미르는 부모님 이혼으로 혼자만의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처음 책을 읽을 때 ‘혼자만의 얼굴’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책을 읽으며 알 수 있게 되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얼굴, 남에게 표현하고 싶지 않은 감정.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내 혼자만의 감정을 남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내 감정에 좀더 솔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르는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어린 나이에 그런 큰 시련을 겪고, 물론 바우도 마찬가지이다. 가정결손이며, 더 크게 더 빨리 일어서야 한다는 새악이 머릿속을 문득 스치고 갔다. 우리나라에는 결손 가정이 엄청 많은데..
그 아이들의 기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 애들 스스로 이겨내며, 항상 마음 속에 빛과 진주를 키웠으면 참 좋겠다. 힘든 일이 있으면 울어버리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있는 애들..
이 책을 읽고 더 생각한게 있었다. 소희같은 친구가 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솔직히 미르나 바우도 소희같은 친구가 없었다면 그 어둠에서 헤쳐나오기 힘들 것이다. 친구가 무엇보다도 정말 소중하단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이런 책을을 많이 읽어야겠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김지선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이삔 시>
엉겅퀴 꽃
아하! 그랬구나!
짐짓 사나운 척, 네가
날카로운 가시를
찌를 듯 세우고 있는 것은
나더러 그냥 이만치 떨어져서
얼굴만 바라보라고,
그러다가 행여 마음이 끌리면
조금더 가까이 다가와
향내나 맡으라고
하지만 내가 어찌 참을 수 있겠니?
떨리는 손끝으로
조심조심 쓰다듬어 보니,
그 뽀죡한 가시마저
이렇게 보드라운걸!
첫째, 수지는 특히 소희의 역할을 잘 꼬집어냈다.
미르와 바우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소희의 역할은 결정이다. 미르와 바우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솔직한 마음을 이끌어낸 소희야말로 제목처럼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하늘말나리꽃’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박안수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동화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끼리 일어난 모든 문제(어른들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주로 이혼, 집안형편, 성적 등의 문제로- 하여간 그 모든 문제를)를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해결하는 모습이었다. 작가가 의도적이고 작위적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할지라도 아이들이 문제의 복판에 놓여있다가 그 문제를 깨달아가고, 힘들게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참으로 신선했다. 이 소설에서도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른의 상처까지 읽어내는 조숙함을 보인다. 어찌 보면 동화작가는 아이들의 힘을 과도하게 믿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지만 아이들 눈으로 이 책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바람직한 시각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둘째, 섣부른 판단이지만 힘든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훗날 성공한다는 류의 이야기는 60, 70년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작위적일지라도 현실에 비관하고 희망을 잃는 아이들의 이야기보다는 이 책을 권장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하여간 이 책의 미덕은 요즘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설정이 다소 작위적이고 문제해결과정도 다소 비현실적이며 낭만적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읽혀볼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막상 미르나 소희나 바우같은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이 책을 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책 속의 상황이니까, 나와 미르 또는 바우, 특히 소희와는 생각이 다르니까 사정이 다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오히려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된다. 결국 모든 아이들 개개인의 상황에 맞은 책을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 의심까지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작업을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일단 우리 독서의 방법이나 목표부터 다시 설정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인 나부터 시각을 바꾸는 작업을 책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아이들이 문제해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너도 하늘~’을 보고 또 다른 동화를 읽으며 무의식적으로라도 아이들에게 문제상황을 맡겨보고 믿어보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앞으로 수많은 책과 아이들을 연결짓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좀더 세부적인 지도책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도 하늘~’ 속에 담긴 자잘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상황(각각의 지문으로)으로 쪼개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보고,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들어 본다던가. 예를 들어 수지가 가장 이쁜 시로 추천한 ‘엉겅퀴 꽃’만 가지고도 아이들에게 친구나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좀더 구체적이고 좀 더 깊이 책을 이해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의연한 산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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