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사다리(이옥수)

서초등 법원 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촌’. 법원과 검찰청 앞에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 버젓이 서 있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한 비닐하우스촌이기에 재미있는 추억이나 신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부인을 때리는 남편, 정신을 놓은 끝네 할머니, 자식을 두고 외국으로 떠난 혜미 엄마, 그래도 왕성했던 한때를 술잔 속에서 찾는 여러 아버지들, 준비물하나 챙길 수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윤제와 또래 친구들에게 얼마나 좋은 일이 있겠는가. 


가난에 쫓겨 서울까지 떠밀려 온 윤제는 그래도 강원도에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며 성적도 좋은 아이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비참한 가정환경에 변변히 준비물 하나 제대로 챙겨가지 못해 수업에 재미를 못 붙이고, 수업에 빠지고, 결손이 누적돼 수업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 중학교 학년 초 가정환경조사서 때문에 선생님과 갈등을 일으키다 집을 나가고 문제 아이들과 어울리다 결국 특수절도로 소년분류심사원까지 간다. 윤제에겐 줄곧 좋지 않은 일만 연속이다.

도심 외곽으로 갈수록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많이 본다. 아이들 본성이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상황이 다르고 계기가 달라 그들을 막다른 곳으로 내모는 건 결국 부모님과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아닌가 싶다. 가난은 술만 먹으면 잘나가던 한때를 이야기하고야마는 어른들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진흙밭 속에서도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꽃마을에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힘이 있다.
무능력한, 그래서 술에 의지해 사는 부모를 ‘빙신’이라며 욕을 하고 미워하지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는 제 자식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며 판사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윤제 어머니의 다짐. “아버지요... 아버지가요, 젊었을 때 누나하고 나한테 어떻게 한 줄 아요? 아버지, 아버지도 이 아들이 싫지요? 이제 어쩌니껴, 암만 그래도 아버지는 내 아버지고, 나는 아버지 아들인데.... 아버지...... 용서해야 돼.....”라고 말하며 노망나 똥 묻은 아버지를 씻겨주는 대현이 아버지의 이야기. 목숨 걸고 하우스촌을 지킨 끝에 얻은 4층 옥탑방 사다리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윤제와 태욱이, 혜미가 있기에.

<기억나는 구절>

(230) 불빛에 비친 혜미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윤제야, 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니?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정말...... 정말 싫다.” 

‘혜미야, 그래도 우린 살아야 해. 그래야 좋은 꿈도 꿀 수 있잖아.


푸른 사다리
국내도서
저자 : 이옥수
출판 : 사계절 200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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