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8월 초,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솔직히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선입견이 좀 있었다.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안나 까레니나 이야기를 굳이 읽어야 하나 하는 그런 매우 단순 무식한 생각. 하지만 거의 1,600쪽에 이르는 글을 다 읽고서야 왜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안나 까레니나를 중심으로 한 아주 작은 시냇물 같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당시 러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바다에 이르는 이야기는 촘촘하게 잘 엮여서 장면들이 모두 아름답고, 찡했고, 감동적이었으며, 소박한 공감이 있었다. 남성 작가이면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 볼 줄 아는 작가의 마음 씀씀이와 마치 세태소설을 보는 것처럼 러시아 상류층의 복잡한 이야기들을 곳곳에 배치한 점..
전편 의 역동적이고 당찬 여성들을 목격하고 난 후, 를 읽으니 생각보다 고루하고 평범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옮긴이가 가 인현왕후 폐위와 연관해서 쓴 목적소설이 아니라고 하니, 약간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그럼에도 일단 하루 만에 다 읽었다는 점, 제목만 들어봤지 그 동안 읽지 못했던 를 읽었다는 생각에 좀 뿌듯하기도 했다. -인상 깊은 구절- (28) “지아비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실로 부덕(婦德)이다만 남편이 잘못된 행동을 할지라도 순종할 것이냐?”“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말에 ‘부부의 도리 또한 오륜에 속해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간언하는 아들이 있고, 나라에는 간언하는 신하가 있으며, 형제는 바른 도리로 서로 격려하고 벗들은 착한 행동을 권하는데 어찌 오직 부부의 경우만 그렇지 ..
24~25 다음에 춘의 시를 읽었는데, 공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종이를 던져 버렸다.“어린 자식이 이리도 막돼먹었으니 우리 집안이 망할 징조다.”춘은 놀라서 황급히 머리의 관을 벗고 당 아래로 내려갔다. 성생이 나아가 말했다.“명을 받들어 갑작스레 시를 짓다보면 잘못 지을 수도 있습니다. 혹 흡족하지 않으실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요.”공이 말했다.“아니다. 아니야. 시를 짓고 못 짓고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경박함과 음탕함이 시에 가득하니, 이런 놈은 앞으로 집안을 어지럽힐 게다.”✎ 불행의 씨앗이 보이는 대목이다. 이렇게 대놓고 차별하고 꾸짖는데, 춘이 마음으로 반성할 수 있을까? 시 한 수로 집안의 길흉화복까지 꿰뚫어 보는 아버지가 왜 아들을 다르게 감화시킬 방법은 알지 못할까? 62 (채..
이반 일리치의 죽음 광인의 수기국내도서저자 :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 석영중,정지원역출판 : 열린책들 2018.12.15상세보기 유난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흔 후반을 넘어서더니 내 몸도 조금씩 낡아간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연찮게 선택한 책이 괜히 더 우울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읽으면서 주위의 아픈 사람들도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다시 나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요즘의 나를. 작년에 비해 일도 많고 걱정거리도 많아졌다. 하지만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도 나름 하나씩 일을 해치워가는 쾌감으로 하루를 마치곤 했다. 51쪽의 탁월하게 연주를 마친 제1바이올린 주자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삶이 한순간에 빈..
16세기 양반들의 생활사를 미시적으로 들여다 본 것처럼 생생하고 재미있었다. 마치 그 당시 어느 한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은 것처럼 실감나게 전달이 되었다. 특히 미암과 덕봉, 김인후, 허균 등 많이 알려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방굿덕, 은우어미, 옥석, 마귀석, 대공, 몽근, 치산, 유지 등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까지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등장할 때마다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원문을 읽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풀어 쓴 정창권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 에 대해 정리 1. 미암이 55세가 되는 해인 1567년 10월부터 1577년 5월까지 11년에 걸친 한문 일기 2. 11책, 일기 10책과 덕봉의 시문집 1책 3. 편찬에도 중요한 사료의 역할을 담당함. 보물 206호 4. 종가..
"백범일지"를 살펴보다, '도진순'이란 이름에 눈이 갔다. 2010년 고미숙 선생님과 함께하는 '열하기행'에서, 즉석 가이드로 관련 역사에 대해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아들과 함께 오려다 부부끼리 왔다는 이야기에, 꼭 여름에 몽고에 가서 여름 별을 함께 보라고 조언해 주셨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로 독후감을 정리해 본다. (26) 어느날 나는 아버님이 엽전 스무 냥을 방 아랫목 이부자리 속에 넣어두고 나가시는 것을 보았다. 혼자서 심심한데다 앞동네 구걸이 집에서 떡 파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돈을 전부 꺼내 온몸에 감고 떡집으로 갔다. ~ 아버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빨랫줄로 나를 꽁꽁 동여 들보에 달아매고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
귀가 서럽다국내도서저자 : 이이랑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01.25상세보기 5월 31일 시콘서트가 열리는데..마음에 드는 시 한 수 옮겨 본다. 행복 삶은 빨래 너는데치아 고른 당신의 미소 같은햇살 오셨다감잎처럼 순한 귀를 가진당신 생각에내 마음에 연둣물이 들었다대숲과 솔숲은 막 빚은 공기를 듬뿍 주시고찻잎 같은 새소리를 덤으로 주셨다찻물이 붕어 눈알처럼씌릉씌릉 끓고당신이 가져다 준황차도 익었다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렸다. 세상에 듣기만 했던 그 명작을 내가 읽게 되다니! 드디어!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라스꼴리니꼬프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상황도 꽤 길었고, 살인 이후에 힘들어하며 주변 사람들과 만나는 장면도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이런 고전들을 요약본만으로 만난 폐해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어쨌든 꽤나 심오하고 심각해서 어렵게 읽을 줄 알았는데, 속도감 있게 읽혀서 4일에 걸쳐 새벽까지 읽어 버렸다. 햄릿을 닮은 라스꼴리니코프도 매력적이지만, 끝내 구원받지 못할 것 같은 삶을 살아간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초반 술주정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고, 특히 어떻게든 친구를 도우려는 라주미힌과 라스꼴리니코프의 여동생 두냐(아브도찌야 로마로브냐) 캐릭터에도 강하게 끌렸다..
덴동어미화전가국내도서저자 : / 박혜숙역출판 : 돌베개 2011.12.30상세보기 처음엔 상류층 마나님의 호사스러운 외출을 노래한 것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의 거리를 두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반전! 세상에 조선시대 후기 어딘가에 있었던 과부 덴동어미의 삶에 울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쓰디쓴 매 고비마다 삶을 놓치 않았던 그녀가 결국은 모두(당시 화전놀이를 갔던 여성들과 지금의 독자들)를 위로해 주고 있었던 것! 인생이 힘든 모든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을 만난 것 같아 행복하고 뿌듯하다. 103 (조서방의 죽음)불에 덴다고 다 죽는가 / 불에 덴 이 허다하지그 어미라야 살려내지 / 다른 이는 못 살리네자네 한 번 죽어 버리면 / 살 아이..
햇볕의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표지,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그러나 곱씹을수록 어려운 관계이다.내게 무해한 사람이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는 사람이라면 발전이 없는 관계이므로 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누구에게든 무해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작가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의 지점을 포착하여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그래서 남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의 7편의 단편들에는 30대 중반의 처지에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다양한 만남에 대해 섬세하게 성찰하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쳤을 순간들이 떠오른다. (209)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