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동어미화전가(박혜숙 역)

덴동어미화전가
국내도서
저자 : / 박혜숙역
출판 : 돌베개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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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상류층 마나님의 호사스러운 외출을 노래한 것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의 거리를 두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반전! 세상에 조선시대 후기 어딘가에 있었던 과부 덴동어미의 삶에 울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쓰디쓴 매 고비마다 삶을 놓치 않았던 그녀가 결국은 모두(당시 화전놀이를 갔던 여성들과 지금의 독자들)를 위로해 주고 있었던 것! 인생이 힘든 모든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을 만난 것 같아 행복하고 뿌듯하다.


103 (조서방의 죽음)

불에 덴다고 다 죽는가 / 불에 덴 이 허다하지

그 어미라야 살려내지 / 다른 이는 못 살리네

자네 한 번 죽어 버리면 / 살 아이라도 안 죽겠나

자네 죽고 아이 죽으면 / 조첨지는 아주 죽네

살아날 아이가 죽게 되면 / 그도 또한 할 일인가?

조첨지를 생각거든 / 일어나서 아이 살리게.

어린 것만 살게 되면 / 조첨지 사뭇 안 죽었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을 속으로 삼켰던 것 같다. 그네 뛰다 사고로 죽고, 전염병으로 죽고, 산사태로 죽고, 결국 네 번째 남편은 화마로 보낸 덴동어미의 설움과 특히 몸과 마음이 성치 않은데 불에 덴 아이까지 살려야 하는 기구한 덴동어미의 삶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었다. 


117 (청춘과부에게 주는 말)

엉송이 밤송이 다 쪄 보고 / 세상의 별 고생 다 해 봤네

살기도 억지로 못 하겠고 / 재물도 억지로 못 하겠네

고약한 신명도 못 고치고 / 고생할 팔자는 못 고치네

고약한 신명은 고약하고 / 고생할 팔자는 고생하지

고생대로 할 지경엔 / 그른 사람이나 되지 말지

그른 사람 될 지경에는 / 옳은 사람이나 되지그려

옳은 사람 되어 있으면 / 남에게나 칭찬 듣지

→ 세상의 쓰디쓴 맛을 다 본 사람의 말이라니! 어차피 고생할 바에는 옳은 사람되어 남에게 칭찬이라도 들으라는 말이, 너무 놀랍고 대단했다. 이미 덴동어미는 부처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지! 


127 (달관)

마음 심(心)자가 제일이라 

단단하게 맘잡으면 / 꽃은 절로 피는 거요

새는 매사 우는 거요 / 달은 매양 밝은 거요

바람은 일상 부는 거라 / 마음만 여사 태평하면

여사로 보고 여사로 듣지 / 보고 듣고 여사하면

고생될 일 별로 없소.

→ 이 구절에 대한 편역자의 해설도 놀랍다. ‘일견 평범하지만 실은 비범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리고 삶에 지친 덴동어미를 따뜻하게 받아 준 고향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했기에, 삶의 고통에 눈물짓던 덴동어미가 살아 있는 즐거움을 춤추고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일희일비하는 삶에서 벗어나 ‘여사여사’하게 살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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