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와즈 사강)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9.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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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중고등 시절 아련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슬픔이여 안녕>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작년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희숙샘의 소개로 엮어 읽게 된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속에 나타난 사강의 삶은 지독히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타고난 재능과 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거의 학대하다시피 삶을 살았던, 그리고 마지막 여생도 굉장히 강렬했던 작가는 어떤 작품으로 독자들과 대화하고 싶었을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의 폴은 왠지 사강의 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내면 묘사가 매우 섬세했다. 서로 사랑하지만, 거리를 두는 로제와(가끔씩 바람도 피우는) 맹목적으로 사랑을 주는 시몽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폴.
교육받은 직업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 하나하나에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나약한 여성. 결국은 덧없는 사랑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거나 서지 못하는 폴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폴들의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17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 그 전에 누군가와 항상 함께 했기에 외로움을 더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특히 이날 더 유독히 외로움을 느꼈을까?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이라는 말에 더욱 폴이 안타깝다.
29 “전 도대체 뭘 했던 걸까요?”
“뭐라고? 자네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잖아. 멍청한 친구 같으니라고. 그게 바로 비극일세. 자네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단 말이네.”
“저는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몽이 말을 계속했다.
“내가 자네에게 원하는 건 나나 나이 든 알리스를 사랑하라는 게 아니란 말일세.” 플뢰리 변호사의 울화가 폭발했다.
→ 시몽은 정말 현실감각 거의 제로 구제불능 낭만주의자! 폴뢰리 변호사 말에 얼마나 웃었던지!
43~44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 이거 이거 어디선가 많이 듣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왠지 시몽이 꽃뱀처럼 느껴지는 건 내가 너무 통속적이어서일까?
45 산책의 동반자든 인생의 동반자든,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언제나 애정을 느꼈다. 그들, 무척 다른 동시에 아주 가까운 그들이 그녀 자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데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이었다. ~ 한 여자의 삶에 세 동반자들이 있었다는 것, 그것도 모두 좋은 동반자들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하지 않은가?
→ 이 대목에서 뭔가 자존감이 결여된 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 보다 동반자들이 좋았다는 것만으로 그냥 스스로 만족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57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일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 시몽은 나중에 이 질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폴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으리라. 뭔가, 본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화두’랄까? 책을 읽고 나니 폴이 이 질문에 좀더 깊이 매달리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높였다면 시몽에게서도 로제에게서도 더 당당한 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102 로제에게 배신당하자 그녀는 “가엾은 폴.”이라고 불리는 한편 “지독히도 독립적인 여자.”라는 말도 들었다. 그녀가 젊고 미남이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남편 곁을 떠났을 때에도 사람들은 비난과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번에 야기될, 경멸과 시샘이 뒤섞인 그들의 반응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리라.
→ 으아,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할까? <가난한 사람들>의 마까르도 그러지 않았던가?
114 “어쨌든 그는 어떤 경우에도 나를 무관심하게 방치해 두지 않는 건 분명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 “당신과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한낱 풋내기 청년과의 불장난 이야기를 들을 줄은 생각 못했어.” 로제가 말했다.
“당신이 벌이는 어린 여자와의 불장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겠지.” 폴이 즉각 응수했다.
“그게 훨씬 더 정상적이지.”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폴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핸드백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 나이 이야기가 나올 차례인가?” “폴…….”
→ ‘그게 훨씬 더 정상적이지’라는 말에 뿜을 뻔 했다. 뭐, 이런.... 그런데 당시 시대가 60년대인데, 지금도 통용될 수 있다는 점에 분노보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123 “나도 느끼고 있었어. 당신이 더 이상 나를 참을 수 없어 한다는 걸 말이야. 사랑에서 무관심으로의 이행이 너무 빠르군, 안 그래?” 그가 물었다.
“이건 감정 문제가 아냐, 시몽. 문제는 당신이 술을 마신다는 것,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 당신이 바보가 되고 있다는 것이야. 당신한테 일을 하라고 이미 말했었잖아. 그 이야기를 수없이 했다고. 이번이 마지막이야.”
→ 역시 사랑은 현실 속에서도 굳건하게 이어져야 한다. 시몽은 내면의 열정을 일깨워주지만 폴을 성장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154 (해설) -독자는, 역시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마음에 품었던 요하네스 브람스를 떠올리게 되는데, 대개의 프랑스인들이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제목은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와는 다른 울림을 갖는다.
-사강의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이다.
-구성은 가볍고 묘사는 감각적이며 대화는 암시적으고 문체는 유난하지 않다. 하지만 재즈처럼 리듬감있게 펼쳐지는 그 문장들 속에는 장치 아닌 장치들이 내재해 있다.
→ 모두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사랑의 덧없음’보다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맞지 않나 싶다. 리듬감 있고, 감각적이라는 말은 무척이나 공감이 된다.
**201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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