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국내도서
저자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 / 석영중역
출판 : 열린책들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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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도 이미 느꼈던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내면으로 깊이 스며들어 몰입하게 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최고다! 바르바라와 마까르 제부쉬낀이 되어 가난이 얼마나 인간을 바닥으로 내몰 수 있는지, 처참한 가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고결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던 독서였다.

편지로 오고가는 이야기에 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당시 가장 극빈한 삶을 살았던 고르쉬꼬프 가족과 천애 고아인 여성들을 사고팔았던 안나 표도로브나, 고학생 뽀끄로프스끼와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단편적이지만 당시의 면면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빛났던 것은 문학적인 안목은 비록 낮은 수준이었지만 아무리 가난하고 그 가난으로 많은 이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베풀려 했던 마까르 제부쉬낀이라는 인물이다. 작은 일 하나에도 내 욕심만 차리던 나는, 마까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그의 슬픈 사랑 앞에서 이상하게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가 바르바라인 것처럼.

바르바라의 선택은 절대 비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몸도 약하고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여자이기에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민폐녀로 남지 않으려는 선택이 너무 절박했기에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을 터. 제부쉬낀도 바르바라를 끝까지 지켜지주 못했던 것도 너무 안타깝지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그들의 짧은 사랑 이야기는 내내 여운이 길게 남을 것 같다.

 

31 가난하다 가난하다 해도 어쩌면 그렇게도 가난한지, 세상에! 그 사람들 방은 언제나 빈방처럼 조용하고 고요합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조차 안 들린다니까요.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소란을 피우고 뛰노는 일도 없으니, 정말 나쁜 징조 아니겠습니까.

88-89 바렌까, 저는 어린애가 생각이 잠기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기분이 안 좋아져요! 헝겊 조각으로 만든 인형이 아이 옆 마룻바닥에서 뒹굴고 있어도 관심이 없더군요.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꼼짝도 않고 그렇게 혼자 서 있어요. 하숙집 주인 여자가 사탕을 줬는데도 받기만 할 뿐 먹지도 않고 말이에요. 우울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통찰력과 사랑이 대단한 사람임을 알 수 있는데, 무심한 듯 이런 구절 하나에도 작가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57 그에 대한 우정이나 사랑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많이 배운 사람이었고 나는 어리석은 아이였다. 아는 것도 없었고, 책은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었다……. 나는 책의 무게로 인해 금방이라도 꺾어질 듯 휘어 있는 기다란 선반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화가 났고 슬펐다. 어떤 광기 같은 것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나는 그의 책을 마지막 한 권까지 전부 다 읽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꼭 그렇게 하고 말리라며 그 자리에서 마음을 먹었다. 나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나는 그가 아는 것을 나도 알아야 그의 우정을 나눌 자격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석영중 교수님은 바렌까가 보통 여성이 아님을 몇 차례 강조하셨다. 그녀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인 뽀끄로프스키의 서재에서 느낀 바렌까의 전율을 이 대목을 읽으며 나도 느꼈다.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큰 축복인 것 같다.

 

74 그가 처음 병이 났을 때, 우리 집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안나 표도로브나는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자 더 이상은 내가 뽀끄로프스끼를 간호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자 이 부분에서 바렌까에게 정말 흠뻑 빠졌다. , 강인하고 굳센 여성이구나!

 

77 노인은 궂은 날씨도 느끼지 못하는지 마차 이쪽 저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낡은 프록코트 자락이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였다. 옷에 달린 주머니에서는 온통 책들이 비어져 나왔다. 그가 내내 꼭 쥐고 있던 커다란 책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가여운 노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주머니에선 계속 책들이 빠져나와 진흙탕 속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멈춰 세우고 떨어뜨린 물건을 가리켜 보였다. 그는 그것을 주워들고 다시 관을 쫓아 달렸다.

 아들의 장례식에서 그토록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푸쉬낀 전집을 흘리면서, 주우면서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느낌의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

 

105-106 마음씨 착한 두 사람을 바라보며 괴로움에 애가 닳아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 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당신께 필요하다는 겁니까? 제가 당신에게 뭐 좋은 일을 해 드린 게 있어요! 영혼으로 당신과 하나가 되어 당신을 깊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없잖습니까!

 눈에 보이는 그 무엇도 해 줄 수도, 보답할 수도 없는 바렌까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 그래서 더더욱 모든 것을 표현하고 아낌없이 주려는 마까르의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153 몸에 붙은 진흙을 좀 털어 내고 싶었지만, 수위인 스네기료프는 옷솔이 망가진다며 안 주더군요. 나리, 이 옷솔은 관청 물건입니다요. 하면서요. 저들이 이제는 어떻게 나오는지 아시겠죠. 저는 높으신 분들에게 발이나 문지르는 걸레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바렌까,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근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

 석영중 교수님은 <외투>의 아까끼와 마까르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감정을 느끼는 9등 문관. 그리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인공 폴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못 견뎌 하는 점에서 마까르와 닮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까르는 이 모든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렌까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모든 것을 한다는 것, 폴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굴복하고 만다는 것!

 

179 제게 남아 있던 돈은 20꼬뻬이까가 전부였고 그 돈은 쓸 데가 있었습니다. 내일 꼭 필요한 것을 사려고 둔 돈이었죠.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오, 빌려드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나리, 마까르 알렉세예비치. 얼마라도 좋습니다. 단돈 10꼬뻬이까라도……. 저는 서랍에서 20꼬뻬이까를 꺼내서 그냥 다 주어 버렸습니다. 나의 소중한 이여, 좋은 일 아닙니까! 에이, 빌어먹을 가난 같으니라고!

 이 앞 상황까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20꼬뻬이까가 얼마나 귀한 돈인지 다들 알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을 다 주다니! 정말, 정말......슬프고, 안타깝고, 대단하다! 나는 정말, 정말 이러지 못할 듯.

 

185 떨어진 단추는 소리를 내며 굴러가더니 그 저주받을 단추는 곧장, 그야말로 곧장 각하의 발을 향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침묵하고 있는 사이에 말입니다! ~ 저는 이미 떨어져 버린 단추를 어떻게든 실에 달아 보려고 낑낑댔습니다. 그렇게 하면 단추가 다시 붙을 줄 알았나 봅니다. 게다가 히죽이죽 웃기까지 했습니다.

 , 이것도 왠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대목이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이 생각나는. 너무 안타까운데, 웃기는. 웃픈 상황! 나중에 석영중 교수의 강의를 들으니 상관이 아무도 모르게 돈을 주고, 악수를 하는 모습을 돈의 경제학이 아니라 돈의 심리학으로 연결시킨 것도 기억에 남는다.

 

198 한 시간 후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아직도 꼼짝도 않고 누워 있더랍니다. ~ 어느 순간 그녀는 불안한 느낌 때문에 퍼뜩 정신이 들었고, 방 안을 감도는 무덤 같은 정적에 소스라치게 놀랐대요. 침대 쪽을 보니까, 남편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누워 있더랍니다. 그래서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들추고 보았더니, 남편은 벌써 차갑게 식어 있더랍니다. 죽은 거예요. 고르쉬꼬프가 죽었다고요.

 가난과 생존에 대한 긴장으로 삶을 버텨온 고단한 가장의 마지막이 너무 슬프고 안타깝고 충격적이었다.

**2019.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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