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제임스 조이스)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나름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번 영국여행이 처음이었다

영국의 서쪽 항구도시 리버풀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성당(카톨릭)에 가서 개신교(성공회, 리버풀에는 성공회에서 가장 큰 규모인 그리스도교회와 메트로폴리탄 대상당이 멀리 마주보고 서있다.)가 주류인 영국 땅에 이렇게 크고 멋진 카톨릭성당이 있게 된 역사를 간단하게 들으면서였던 것 같다

1800년대 중반 대기근에 시달린 아일랜드인들이 신대륙으로 대거 이주(이건 <파 앤드 어웨이>라는 톰크루즈 주연 영화의 전반 주 배경임)하게 되는데 바로 가는 배편이 없어 이곳 리버풀을 거쳐 신대륙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통해 리버풀에도 다수의 아일랜드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다른 도시에 비해 카톨릭 교도가 많아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런 메트로폴리탄 성당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2세기부터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받게 되고, 수 백 년간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수없이 많은 희생을 내기도 했고, 독립했으나 북부는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아있는 아픔을 가진 나라 아일랜드!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닮아 있어서 멀리 있는 나라지만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해설자의 설명대로 아일랜드에 태어났으나 세계 시민이고자 했던 제임스 조이스는 고향인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영화를 촬영하듯이 담담하게 담아낸다.

 

낯선 이름들과 생소한 카톨릭 문화, 아일랜드의 복잡한 역사,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15개의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묵직하게 다가와서 쉽게 읽기는 어려웠다. 비몽사몽간에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선거 사무실에서 맞은 파넬의 기일>이나 어려운 낱말이 하나도 없는데 너무도 상징적인 독백이라 도무지 결말을 알 수 없는 <죽은 이들>, 카톨릭 사제의 죽음을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려했던 첫 작품 <자매>도 책장을 넘기기 힘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년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하는 <뜻밖의 만남>, 짝사랑 하는 소녀의 열망을 담아 열심히 찾아갔으나 불꺼진 애러비 백화점 속에서 막을 내린 <애러비>, 떠나고자 하나 절대 떠날 수 없는 <이블린>, 여자를 등쳐서 술값을 얻어내는 친구와 그에 빌붙어 사는 두 한량을 그린 <두 멋쟁이>, 어머니와 딸의 나름 계획된 계산 속에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 <하숙집>, 소심한 열등쟁이 챈들러의 참회 이야기 <작은 구름>, 착한 마리아의 웃픈 이야기 <진흙>, 혼자만의 삶을 즐기다 결국 절대 고독 속에서 슬픔을 맛보는 <가슴 아픈 사고>, 대한민국의 치맛바람을 생각나게 하는 <어느 어머니>, 결말은 이해되지 않지만 아내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그 동안의 모든 살아온 삶이 허상으로 날아가버리는 <죽은 이들>까지, 디테일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 잔상들과 영화적인 이미지로 선명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는 단편들이었다.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 구조가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이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나에게는 여느 단편소설의 문법과 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 동안 제임스 조이스가 끼친 영향이 이후 100년간 꾸준히 후배소설가들에게 스며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조금 낯선 점이 있었다면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 종교 정도랄까? 어찌 보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서 더욱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친절한 주석이었다. 국내 제임스 조이스 연구재단 회원이라니 작가에 대한 애정과 전문성은 그 동안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도 더 높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단편들을 다 읽고 난 뒤에 펼쳐든 해설도 친절하고 자세한 해석과 분석으로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소설들을 읽으면서 스쳐 지나간 생각들을 많이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된다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율리시스>를 꼭 읽어보고 싶다.

 

 

<인상깊은 구절>

 

<뜻밖의 만남>

p31 무슨 이따위 쓰레기가 있어? 그가 말했다. 아파치 추장이라! 하라는 로마사 공부는 하지 않고 기껏 읽는다는 것이 이따위 쓰레기야? 다시 몹쓸 것이 이런 학교에서 내 눈에 띄었다가는 가만 두지 않는다.

p43 나는 차분하게 비탈길을 올라가긴 했지만 그가 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슴이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비탈 꼭대기에 도착하자 나는 오던 쪽으로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들판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머피!

내 목소리에는 억지로 용감한 척하는 어투가 풍겼다. 그래서 내 약은 잔꾀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마호니는 나를 알아보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들판을 가로질러 나를 향해 뛰어올 때 내 가슴은 얼마나 뛰었던지! 그난 마치 나를 구조라도 하려는 듯이 뛰어왔다. 그래서 나는 뉘우쳤다. 왜냐면 마음 속으로 나는 그를 좀 깔봐왔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장면(p31) 너무 흔하다.(아파치 추장, 로마사를 바꿔보면 더욱) 그래서 갑자기 친숙한 반가움이 샘솟듯 솟아났다. <자매>에서 지루했던 시작이 <뜻밖의 만남>을 읽으면서 너무 반가웠다. 학교를 하루 빠지고(땡땡이), 함께 하기로 한 삼총사 중 1명의 배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넉넉해진 돈으로 사먹는 불량식품, 그리고 자유로움의 만끽! 비록 목적했던 곳을 가지는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낯선 사람을 만나 느끼는 불안과 긴장, 해방감 등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속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빵 터졌다. ‘나는 뉘우쳤다. 나는 그를 좀 깔봤기에.’ 인생은 언제나 계획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래서 소년들의 모험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작가의 유년시절 경험이 담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블린>

p65 그녀는 그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그와 결혼하여 같이 살기 위해 밤배로 집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녀는 거기에 그녀를 기다리는 집을 갖고 있었다.

p67 아버지는 그녀를 그리워하리라. 이따금 그는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지. 며칠 전만 하더라도 그녀가 하루 몸져누웠을 때 그는 그녀에게 큰 소리로 유령 이야기를 읽어주기도 하고 난로에서 토스트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였는데 가족들이 모두 호우스 동산으로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보닛을 쓰고 아이들을 웃기려고 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p69 세상의 모든 파도가 갑자기 그녀 가슴을 덮치는 것 같았다. 그가 그녀를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가 그녀를 물에 빠뜨리리라. 그녀는 양손으로 쇠 난간을 움켜잡았다.

-가자

안 돼! 안 돼!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녀는 두 손으로 미친 듯이 쇠 난간을 꽉 붙잡았다.

→ 《더블린 사람들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 많다. 고뇌하고 갈등하는 이블린이 회상하는 장면이나 마지막 두려움에 사로잡혀 패닉 상태의 그녀의 모습도 마치 영화처럼 다가왔다. 굳이 도망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데려가려는 프랭크라는 선원이 못내 미덥지 않았는데, 뒤에 해설을 보니 어떤 평론가는 사창가에 팔아버리려는 음모라고 보기도 하고, 당시에 실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평론가도 있었다. 열릴 결말에 독자에게 조금씩 던져 준 단서들로 나머지 여백을 채워가야 하는 것이 불편하고 머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정말 다시 찾아 읽게 되는 마력에 빠져드는 것 같다.

 

<작은 구름>

p141 그는 만일 기회만 있었더라면 친구가 해놓은 일보다 훨씬 나은 그 무엇을 했으리라 확신했다. 아니 겉만 번지르르한 기자 생활보다 훨씬 격이 높은 그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그의 불행한 소심성이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심한 위인이 아님을 입증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대장부다움을 과시하고 싶었다.

p147 그는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기의 울부짖음이 그의 고막을 꿰뚫었다. 소용없다, 소용없어! 그는 하나의 무기 징역수였다. 그의 양팔은 분노로 떨렸다. 그는 갑자기 아기의 얼굴 쪽으로 몸을 굽히며 소리를 질렀다.

-닥쳐!

아기는 잠시 울음을 그쳤다가 놀라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팔에 아기를 안고 허둥지둥 방안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역시 이 책에는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인간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낯선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임에도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조금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갤러허의 성공과 가족이 없는 자유(굉장히 마초적으로 느껴짐)를 부러워 하는 리틀 챈들러의 소심함을 보며 우리 주변이나 우리 문학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이런 소시민적인 인간들이 있었음을 생각했다. 챈들러가 갤러허에 대한 부러움으로 일상과 가정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바이런의 시를 읽다가 잠에서 깬 아이에게 소리지르는 장면은 압권이었던 것 같다. 굉장히 슬프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무언가(특히 가정, 육아)에 얽매여 사는 (이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들이 보여줄 수 있는 아프지만, 공감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맞수들>

p156 사내는 아래층 사무실의 자기 책상으로 돌아와서 베껴 쓸 서류가 몇 장이나 남았는지 세어보았다. 그는 펜을 들어 잉크에 찍기까지 했으나 어떠한 경우에도 전술한 버나드 보들리는……이라는 그가 아까 써놓은 마지막 구절을 멍하니 계속 들여다보기만 했다. 곧 저녁이 되리라 그렇게 되면 몇 분 후면 사무실 가스등에 불이 켜지리라. 그럼 그때 가서 쓰면 되겠지 싶었다. 그는 우선 목구멍의 갈증부터 해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164 (히긴스)가 알레인 씨가 패링턴의 면전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을 시범해 보일 때는 폭소를 터뜨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다음 그는 어때요, 여러 어르신들, 이젠 좀 후련하시죠, 하면서 패링턴의 말을 흉내냈다. 그러는 동안 패링턴은 빙그레 웃으며 때때로 콧수염에 매달린 술 방울을 아랫입술을 움직여 빨아들이면서 침침하고 지저분한 두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p170 불을 꺼뜨리면 어떻게 되나, 내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지! 그는 자유롭게 팔을 휘두를 수 있을 있도록 소매를 잔뜩 걷어올리며 말했다. 어린 아들은 오, 아빠! 하고 소리를 내지르고는 훌쩍거리면서 탁자 주위로 달아났다.

<맞수들>더블린 사람들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당장의 자신의 일(필경사)에는 그토록 무책임하고 게으르면서, 근무중에 술집에 가고,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 전에 상사에게 도전하는 무모함 아니 뻔뻔함까지! 패링턴이 자신의 시계를 저당잡혀 술집에서 친구들과 즐기는 장면에서 묘하게 <운수좋은 날이>이 떠올랐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들은 뒤로 하고 술을 마시면서 잊으려 하고(다른 점이 있다면 김첨지는 정말 잊으려 애를 쓰나 절대 벗어날 수 없었고, 패링턴은 진짜 잊어버리고 술 마시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술친구들은 그저 술을 좀더 얻어먹으려는 값싼 우정만 지니고 있는 점(역시 다른 점이 있다면 김첨지의 술친구는 같이 웃으면 술을 마시다가도 김첨지의 아내가 아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이다. 어쨌든 그렇게 무능력하고 게으른 남자는 가정에서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약한 아이들에게 푸는 폭력적인 가장이었다는 점. 매맞는 아이가 아버지를 위해 성모송을 부르겠다고 할 때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2018. 8. 28.

더블린 사람들
국내도서
저자 :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 진선주역
출판 : 문학동네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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