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렸다. 세상에 듣기만 했던 그 명작을 내가 읽게 되다니! 드디어!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라스꼴리니꼬프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상황도 꽤 길었고, 살인 이후에 힘들어하며 주변 사람들과 만나는 장면도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이런 고전들을 요약본만으로 만난 폐해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어쨌든 꽤나 심오하고 심각해서 어렵게 읽을 줄 알았는데, 속도감 있게 읽혀서 4일에 걸쳐 새벽까지 읽어 버렸다. 햄릿을 닮은 라스꼴리니코프도 매력적이지만, 끝내 구원받지 못할 것 같은 삶을 살아간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초반 술주정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고, 특히 어떻게든 친구를 도우려는 라주미힌과 라스꼴리니코프의 여동생 두냐(아브도찌야 로마로브냐) 캐릭터에도 강하게 끌렸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과 뽀르피리와의 두뇌 싸움, 동생 두냐의 결정,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난 스비드리가일로프(두냐를 모욕한 그 남자?)의 충격적인 등장까지! 다음 (하)권이 기대되는 독서였다.

※ (하)권을 읽을 때는 꼭 인물관계도를 그려보고 싶다. 

 

-인상 깊은 구절-

12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거다. 다만 겁이 나서 사람들은 모든 일을 망치는 것이다……. 이건 명제와 다름없지.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한 걸음, 자신의 새로운 말, 이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너무 중얼대는구나. 이렇게 말만 너무 많이 하니까,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니까 지껄이기만 하는 거다.」 이렇게 지껄이는 버릇이 생긴 것은 최근 한 달 동안 이렇게 걷고 방구석에 처박혀 누워서……있을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왜 이렇게 걷고 있는 걸까? 정말 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14 그러니 가능하면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 바로 사소한 것들이 항상 모든 일을 망쳐 버린다…….

 

33-34 돌아오자마자 곧 까제리나 이바노브나에게 가서는 탁자 앞에 30루블을 말없이 내놓더군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흘끗 쳐다보고는, 큰 녹색 드라데담 숄을 집어서, 그것으로 머리와 얼굴을 완전히 감사고, 벽을 향해 침대 위에 누웠습니다. 어깨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더군요……. ~ 젊은 양반, 난 보았어요. 까쩨리나 이바노브나가 말 한마디 없이 소냐의 침대에 다가가서, 저녁 내내 그 애의 발치에 무릎 꿇고 앉아 그 애의 발에 키스하는 것을요. 좀처럼 일어설 줄 모르더군요.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둘이 같이, 둘이……. 그래요……. 그런데도 난 취한 채로 누워 있었습니다.

 

41 ‘너희들, 돼지 같은 것들! 짐승의 형상과 인이 쳐진 놈들! 그렇지만 너희들도 오너라!’ 세상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들과 합리적인 사람들이 소리를 치면서 말하겠지. ‘주여, 왜 이들을 받아들이십니까?’ 그러면 말씀하실 거다, ‘지혜로운 이들아,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노라, 합리적인 이들아, 내가 받아들이노라, 이들 중에서 자신이 구원받을 많나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내가 이들을 받아들이노라…….’ 그리고 우리에게 두 팔을 내미시면, 우리는 땅에 엎어져서……울면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때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거야!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해하게 되겠지…….

 

46 나오면서 라스꼴리니코프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선술집에서 거슬러 받은 1루블에서 남은 동전들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눈에 띄지 않게 창틀에 놓아두었다. 그러나 계단까지 왔을 때는 생각이 달라져서, 돈을 찾으러 되돌아갈까 망설였다.

 

56 그 여자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우리 집에 나가서는 시내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눈물로 그 애의 결백함을 입증하고, 그 애가 보인 고결한 마음과 행동을 높이 칭찬했단다. 그뿐 아니라 두냐가 스비드리가일로프 씨에게 보낸 자필 편지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면서, 낭송까지 했다는구나(내 생각에는 이건 너무 지나친 것 같았다.)

 

100-101 [노파의 집에서 돈을 받아 들고 들어온 싸구려 술집에서 어떤 대학생이 어떤 장교에게] 빼앗은 돈의 도움을 받아 훗날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는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 작은 범죄 하나가 수천 가지의 선한 일로 보상될 수는 없는 걸까? 한 사람의 생명 덕분에 수천 명의 삶이 파멸과 분열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인데, 이건 간단한 계산 아닌가! 그 허약하고 어리석고 사악한 노파의 삶이 사회 전체의 무게에 비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 노파의 삶은 바퀴벌레와 이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 없고, 어쩌면 그보다 더 못하다고도 할 수 있어. 왜냐하면 그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그 노파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잖아. 

~ 만일 네 자신이 그 일을 결행할 마음을 먹지 못한다면, 거기엔 어떤 정의도 있을 수 없어!

 

190 [라주미힌] 이 옷이 낡으면 내년에는 다른 것을 공짜로 주기로 했어! 페쟈예프 상점에서는 물건을 파는 게 아냐. 한번 지불하면 평생을 만족할 수 있거든. 

 

271 그는 열에 들떠 있었지만, 그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조용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다만 불현듯 느끼게 된 삶의 감각, 이 새롭고도 무한한 감정에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이 감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느닷없이 뜻밖의 사면을 받은 사람이 느낀 것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314 [어머니 뽈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드리뜨리 쁘로꼬피치, 그 애가 얼마나 몽상가인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말이에요. 나는 그 애의 성격에 대해 한 번도 안심해 본 적이 없어요. 그 애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도 그랬어요. 나는 그 애가 감히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할 짓을 지금 당장 저질러 버릴 수 있다고 봐요…….

 

329 [조시모프]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사실 미친 사람과 거의 비슷할 대가 무척 많이 있습니다. 다만 아주 작은 차이로 <환자들이> 우리보다는 약간 더 미친 거지요. 어쨌든 선을 그어야만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조화로운 인간이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지요. 이건 사실입니다. 수만 명, 아니 어쩌면 수백만 명 중 한 사람 꼴로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그것도 그다지 확실하지 않은 본보기에 불과하지만요…….

 

372-373 [라주미힌] 그들에게 모든 것은 <환경이 나쁘기> 때문이야,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어! 그들이 좋아하는 문구지! 이런 논지에서 보면, 만약 사회가 정상적으로 건설되면, 단번에 모든 범죄들도 사라지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돼. 왜냐하면 항의할 만한 그 무엇이 없어지니까. 모든 이들이 단 한순간에 정의로워진다는 거야. 본성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아. ~ 삶의 <산> 과정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살아있는 영혼은 필요 없다는 거지! 살아 있는 영혼은 삶을 요구하고, 살아 있는 영혼은 기계를 순종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영혼은 의심이 많고, 살아 있는 영혼은 반동적이야! 반면 이쪽 인간은 송장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고무로라도 만들어 낼 수 있어. 그렇지만 그 인간은 살아 있는 것이 아냐. 의지도 없고, 노예근성 때문에 반역을 일으키지도 않아!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벽돌 토대와 공동숙사의 방과 복도를 배치하는 일로 귀결되고 마는 거야! 그런데 공동 숙사는 만들어졌지만, 그 공동숙사에 살게 될 인간의 본성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본성은 삶을 원하고, 삶의 과정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니, 아직 무덤에 가기는 이르지! 단 하나의 논리로는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일이야! 논리는 세 가지의 경우만 예측하지만, 실제로 그 경우라는 것은 수백만 가지나 되거든! 수백만의 경우들을 모두 잘라 내고, 모든 것을 안락이라는 한 가지 명제로 귀결시키다니!

 

378 [뽀르피리와의 논쟁에서] 저는 제 주된 사상을 믿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 사상이란 바로 자연의 법칙상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겁니다. 하나는 저급한(평범한) 부류로서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부류, 즉 재료는 대체로 말해서 자기 천성상 보수적이고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로 복종 속에서 살아가면서 순종하기를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반드시 복종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고,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는 전혀 굴욕적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모두는 그 능력에 따라서 법률을 어기는 파괴자들이거나 그럴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범죄는 물론 상대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좋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다라서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습니다.

죄와 벌 (상)
국내도서
저자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
출판 : 열린책들 200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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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 궁금해서 상권에 비해서 빠른 속도로 읽었던 것 같다. 복잡했던 인물들이 어느 정도로 정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라스꼴리니꼬프가 언제 자수하고 회개할지 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근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뾰뜨르 뻬뜨로비치는 자신의 욕망을 달성할 수 있을지, 스미드리가일로프는 왜 나타났으며, 중심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라주미힌과 두냐는 과연 결합할 수 있을지,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남편의 죽음 이후 다시 소생할 수 있을지, 소냐는 과연 어떤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을 어루만지는지 등등. 

가장 놀랐던 캐릭터는 스미드리가일로프와 두냐였다. 스미드리가일로프의 염세적이며 속물적인 행동들이 비난받기에 충분하기도 했지만 왠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지혜롭지만 곧 부러질 것 같이 연약해 보였던 두냐가 그렇게 강단진 모습을 보일 줄이야! 스미드리가일로프의 함정에 빠진 두냐가 총을 들었을 때 어찌나 놀라고 통쾌했던지! 

그리고 가장 잊을 수 없는 대사! 소냐의  「당신은, 당신은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죠!」 !!!

가끔 내가 미워지고, 아이들이 미워지고,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질 때 나를 향해, 그들을 향해 소냐의 대사를 주문처럼 읊조릴 생각이다. 위안이 되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냐의 강인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소냐의 헌신과 사랑, 두 여성의 힘으로 세상이 구원되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벤저스>의 타노스처럼 우주의 절반을 없애버리지 않고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5월 한 달, 돌아보면 너무 힘들고 부끄러운 한 달이지만, <죄와 벌>을 다 읽은 것만으로 뿌듯해지는 한 달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422 (스미드리가일로프가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유령, 이것은 말하자면 내세의 작은 조각과 파편들이고, 그것들의 시작이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들이 보일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건강한 사람은 가장 현세적인 사람이므로 완전과 질서를 위해 반드시 지상에서의 현세적인 삶만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병이 나서, 유기체 속의 정상적인 지상의 질서가 조금이라도 파괴되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더욱 빈번해지고, 그러다가 완전히 죽게 되면 그는 곧바로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다.>

→간혹 가다 유령, 4차원, 내세. 이런 이야기들을 듣거나 상상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이 스미드리가일로프의 설명으로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또는 남을 두 번이나 살해하고 본인도 그렇게 삶에 집착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본인의 죄에 대한 두려움이 유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447 (뾰뜨르 뻬뜨로비치의 생각)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가 최후의 순간까지도 이와 같은 결말을 전혀 예기치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두 여인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호통치고 오만하게 굴었던 것이다. 그가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허영심과, 자기도취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 듯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만한 성공을 이루어 낸 뽀뜨르 뻬뜨로비치는 병적일 정도로 자기자신에게 도취되어 있고, 자기 능력과 지성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 때로 혼자 있을 때면,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보기까지 하는 인물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가 제일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은 온갖 수단과 노력으로 일궈 낸 자기 재산이었다. 이 재산이 그를 그보다 높이 있는 사람들과 동등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이 쉬운 것은 등장인물들을 행동과 말로만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인물들의 대사도 길지만, 작가의 긴 설명적인 서술도 한몫을 하고 있다. 독자로서 루쥔에 대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이렇게 정리해 주니 좋기도 하면서 조금은 허탈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래서 작가의 소설은 쉽고 재미있는 것 같다.

 

474 그는 새롭고 이상한, 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면서, 이 창백하고 여윈, 균형 잡히지 않은 모난 얼굴과 준엄하고 강렬한 감정으로 불타오를 수 있는 그 온순한 푸른 눈동자, 분노와 분개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떨고 있는 그녀의 작은 몸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더더욱 이상하게 여겨졌고, 불가사의하게 생각되었다. <유로지비다! 유로지비야!> 그는 속으로 단언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이 라스꼴리니꼬프의 소냐에 대한 감정이었다. 소냐의 로쟈에 대한 감정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로쟈는 소냐를 만나 이른바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시베리아 유배지에서도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 같지만 소냐를 ‘유로지비’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여성으로서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다른 어떤 감정을 품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604 「당신은, 당신은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죠!」 그녀는 절망적으로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에 달려들어 그를 세차게 끌어안았다. ~

오랫동안 그에게는 낯설었던 감정이 파도처럼 그의 영혼에 스며들어,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적셨다. 그는 그 감정을 거부하지 않았다. 눈에서 눈물 두 방울이 흘러내려, 속눈썹에 맺혔다.

「그럼 나를 버리지 않는 거야, 소냐?」 그는 일말의 희망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고 물었다.

→ 석영중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잊히지 않는 대사!! 이 대사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생각만큼 감동적이고 충격적이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였다. 죄를 책망하기보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로서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

그리고 라스꼴리니꼬프의 반응이 너무 놀라웠다. ‘나를 버리지 말라’는 그의 연약한 내면이 안타까우면서도 모성애를 자아내게 하면서, 정말 짠한 마음이 들었다.

 

628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는 뽈랴에게 노래를 시키고, 료냐와 꼴랴에게 춤을 추게 할 때, 냄비를 두드리는 대신 자신의 말라빠진 손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자기도 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심한 기침이 터져 나와 두 번째 음에 이르기도 전에 노래가 끊어졌고, 이로 인해 그녀는 더욱 비탄에 빠져 자신의 기침을 저주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녀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꼴랴와 료냐의 울음소리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비참하고 슬픈 장면이 아니었을까? 읽으면서 까쩨리나의 참혹한 운명이 너무 슬프기도 하면서, 결국 운명은 어느 정도 성격이 개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추도식 때 보인 과도한 과거집착, 집주인에 대한 증오 등. 슬프고 아팠다.

 

669-670 (뽀르삐리가 라스꼴리니꼬프에게) 그들에게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그건 고난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지요. 

→ 라스꼴리니꼬프 때문에 살인범으로 몰리는 매우 운이 나쁜 캐릭터이지만, 단순한 등장이 아닌 종교, 신앙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려는 분리파 교도(혹은 어느 분파의 신도)를 보여줌으로써 소설 속에 시대와 역사를 담으려 했던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았다.

 

688 (스미드리가일로프의 대사에서) 뻬쩨르부르그에는 걸어 다니면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군요. 여긴 반미치광이들의 도시입니다. 만일 우리나라에 학문이라는 게 있다면 의사들, 법률가들, 철학자들이 각자의 전공에 따라 뻬쩨르부르그만큼 인간의 정신에 음울하고 파격적이며 기괴한 영향을 주는 도시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710 (역시 스미드리가일로프) 제기랄! 서민들은 술에 취해 있고, 젊은 지식인들은 이룰 수 없는 꿈과 환영 속에서 할 일이 없이 말라비틀어진 채 이론의 기형아가 되어 버리고, 어딘가에선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돈을 감추고, 그 밖의 사람들은 퇴폐적인 삶을 살아가지요.

→ 이 장면을 읽으면서 2020년이 다 되어는 요즘의 한국 사회는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 갇힌 사람들로 가득한 시대가 아닌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또한 1880년대의 도시 스케치가 지금과도 너무 닮아있음에 놀라웠다.

 

106 *각주 : 라주미힌이라는 이름의 어근은 razum라줌인데, <이성, 합리>를 뜻한다.

→ 분리, 분열을 뜻하는 라스꼴리니꼬프라는 이름부터 작가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그냥 짓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31 두냐는 권총을 치켜들었다.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진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아랫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불꽃처럼 빛나는 커다란 검은 눈동자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 그러자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그의 머리를 스친 뒤 뒷벽에 꽂혔다. 

→ 두냐가 그냥 아름답고 총명한 캐릭터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통쾌함까지 선사할 줄이야! 이 책을 읽는 중 가장 긴장되었고, 가장 통쾌했던 장면!

 

755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넌 내가 지금 어리석은 여편네들처럼 너를 추궁한다고 생각했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난 다 이해한다, 다 이해하고 있어. 난 이제 여기 방식을 익혔어. 그리고 정말 이곳 방식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난 단번에 알아 버렸단다. 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네게 해명을 요구할 수 있겠니? 네 머릿속에는 지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어떤 일과 계획들이 있을 테고,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고 있을 테지. 그러니 이제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너를 채근하지 않으련다.

→ 어머니의 횡설수설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는 큰 공감으로 다가왔다. 무언지 알 수 없는 자식의 속내가, 하지만 뭔가 큰 불안함과 걱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 자식을 안심시키기 위한 횡설수설이 얼마나 슬픈 넋두리인지 크게 공감이 된다.

 

782 그는 그녀 앞에 멈춰 섰다. 뭔가 병적이고 고통스러운 표정, 무언가 절망에 가득 찬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녀는 애원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비굴하고 당황한 듯한 미소가 그의 입술에 번졌다. 그는 잠시 서서, 쓴웃음을 짓더니 몸을 돌려 다시 경찰서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 경찰에 자수하러 간 라스꼴리니꼬프는 뒤돌아 소냐를 놀라게 한다. 단순히 소냐에게 장난을 치기 위함인지, 아니면 정말 고뇌에 찬 행동인지 궁금한 대목이었다.

 

805 전 세계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몇뿐이었는데, 이들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로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대지를 복구하고 정화하게 될,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그들을 만나 볼 수 없었고, 그들의 목소리와 말조차 들을 수 없었다.

→ 라스꼴리니꼬프가 열병으로 꾼 꿈의 한 부분이다. 어쩐지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가 전 우주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체 절반을 없애버리는 꿈과도 비슷해서 기록해 놓는다. 지구 어디선가는 정말 온 우주가 평화를 찾기 위해 대량 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오싹했다.

 

806 멀리 있는 맞은 편 강가에서는 노랫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오고 있었다. 햇살을 듬뿍 받은 건너편 초원에서는 유목민들의 분여지가 검은 점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고, 이곳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또한 그곳은 마치 시간마저 멈춰 버려서 아브라함과 그의 목축들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은 채 눈을 떼지 않고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은 몽상과 명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떤 애수가 그를 설레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결국 라스꼴리니꼬프가 바라는 세상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에 분명 그 전과는 다른 감동에 젖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좁은 관과 같은 방이나, 알콜과 타락에 찌든 뻬쩨르부르크에서만 살았기에 모든 것이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다면, 유목시대의 평화로운 장면 속에서 구원과 희망의 세상을 엿본 것이다. 소냐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안’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죄와 벌 (하)
국내도서
저자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
출판 : 열린책들 200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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