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기(도진순 역)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9. 5. 29.
"백범일지"를 살펴보다, '도진순'이란 이름에 눈이 갔다. 2010년 고미숙 선생님과 함께하는 '열하기행'에서, 즉석 가이드로 관련 역사에 대해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아들과 함께 오려다 부부끼리 왔다는 이야기에, 꼭 여름에 몽고에 가서 여름 별을 함께 보라고 조언해 주셨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로 독후감을 정리해 본다.
(26) 어느날 나는 아버님이 엽전 스무 냥을 방 아랫목 이부자리 속에 넣어두고 나가시는 것을 보았다. 혼자서 심심한데다 앞동네 구걸이 집에서 떡 파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돈을 전부 꺼내 온몸에 감고 떡집으로 갔다. ~ 아버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빨랫줄로 나를 꽁꽁 동여 들보에 달아매고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 아버님의 설명을 듣지도 않고 할아버지는 “어린 것을 그다지 무지하게 때리느냐”고 꾸중하시고, 매를 빼앗아 아버님을 한참 동안 때리셨다. 나는 장련 할아버지가 고마웠고, 아버님이 매 맞으시는 것이 퍽 시원하고 고소하였다.
✎ 요즘 자서전쓰기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수업용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백범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분들도 어릴 적에는 이렇게 철이 없었고, 그런 철없는 모습도 솔직히 기록한 것 자체가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김구 선생님 자서전이 아닌 학생 자서전을 견본으로 주고 진행하고 있다.)
(39)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 김구가 과거에 실패하고 관상을 공부하면서 비관에 빠지지만, 다시 살아나게 한 구절! 우리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구절!
(66) 일반 백성들이 의를 붙잡고 끝까지 싸우다가 함께 죽는 것은 신성하게 망하는 것이요, 일반 백성과 신하가 적에게 아부하다 꾐에 빠져 항복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일세.
✎ 왠지 <미스터 션샤인>이 생각난다.
(97) 오늘은 먹고 싶던 원수의 피를 많이 먹었더니 밥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 김구의 영웅적인 행적을 보면 약간의 쇼맨십도 있고,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통큰 배포 등등을 다 갖추고 있는 듯하다.
(118) 당시 감옥 규칙이 낮잠은 허락하는 대신 밤중에는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밤새도록 죄수들에게 소리나 옛이야기를 시키곤 하였는데, 이유는 야간에 잠을 재우면 잠든 틈을 타서 도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이상하게도 감옥인데도 인간적이라는 느낌이.
(145) 화순 동복으로, 순창 대명으로, 하동 쌍계사로
(주해 : 전라남도에 대명이란 지역은 없고, 담양군에 대면(현재 대덕면)이란 지역이 있다. 백범이 대명에서 많은 대나무를 보았다는 이후의 내용이나, ‘국사원본’에서 담양으로 처리한 것 등으로 보아, 대명은 담양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 감옥을 탈옥하여 삼남으로 다닐 때 선생님이 우리 담양 대덕면에 들렀다니 너무 놀랍고 반갑다. 나중에 광복 후 귀향하여 다시 삼남을 시찰하시는데, 그 대목에서도 감동이 뭉클하였다.
(186) 장련읍 진사 오인형이 자기가 산 사직동 집과 대지, 산림과 과수, 그리고 20여 마지기의 전답을 모두 내게 맡겨, 나로 하여금 집안일에 염려 없이 공공사업에만 전력케 한 것이었다.
✎ 자서전 중 가장 놀라운 것이 선생님의 인적 네트워크였다. 사람 됨됨이만을 판단하여 전 재산을 내주고,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여러 의인들이 너무 대단하고 멋졌다. 요즘의 SNS로 맺어진 네트워크보다 더 친밀하고 결속력이 있고 끈끈하고, 더욱 방대했던 것 같다.
(204) 저주하리로다, 해주 서촌 양반들이여! 자기네가 충신 자손이니 공신 자손이니 하며, 평민을 소나 말처럼 여기고 노예시하던 기염은 오늘 어디에 있느냐! 저주하리로다, 해주 서촌 상놈들이여! 오백 년 기나긴 세월 동안 양반 앞에서 담배 한 대, 큰기침 한 번 마음 놓고 못하다가, 이제는 재래의 썩은 양반보다 신선한 신식 양반이 될 수 있지 않는가!
✎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교육으로 분투하던 백범에게 썩은 양반은 양반대로, 무기력한 백성은 백성대로 답답하고 의지가 꺾이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으리라.
(214) 나는 깜짝 놀랐다. 이의사가 단총을 사용하였다면 국적 이완용의 목숨을 확실히 끊었을 것인데, 눈먼 우리가 간섭하여 무기를 빼앗는 바람에 충분한 성공을 못한 것이다. 한탄과 후회가 그치지 않았다.
✎ 이재명 의사와 관련된 일화인데, 이런 실수와 성찰이 이후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성공적인 의거로 이어지게 하는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21) 나는 평소에 무슨 일이든지 성심껏 보거니 하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게 구원하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되씹는 저 왜구와 같이 밤을 새워 일한 적이 몇 번이던가? 스스로 물어보니, 온몸이 바늘방석에 누운 듯이 고통스런 와중에도, 내가 과연 망국노의 근성이 있지 않은가 하여 부끄러운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찼다.
✎ 세상에, 나를 고문하는 이의 성실함에 자신을 혹독하게 성찰하는 선생님의 치열한 자기반성의 자세가 너무 놀랍고 존경스럽다.
(227) 그놈들이 달아매고 때린 때는, 박태보가 보습 단근질 당할 때에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라”고 한 구절을 암송하였다. ~ “속옷을 입어서 아프지 않으니 속옷을 다 벗고 맞겠다.”며 매번 알몸으로 매를 받아서, 살이 벗겨질 뿐 아니라 온전한 살가죽이라곤 없었다.
✎ 반가운 박태보 님을 만나서 너무 좋았고, 박태보님을 이어 자신의 절개와 지조를 지키려는 선생님의 결연한 태도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233) 그때에 학교를 신설하고서, 학령 아동이 있는 집에 방문하여 다니면서 학부형에게 ‘학생들의 머리를 깎지 않겠다’는 조건부로, 애걸하며 아동들을 모아왔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부모들이 머리를 자주 빗기지 않아서 이와 서캐가 가득하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얼레빗, 참빗을 사다두고 매일 몇 시간씩 학생들 머리를 빗겼다.
(281) 나는 날마다 일찍 일어나서 소작인의 집을 찾아, 나태해서 늦도록 잠을 자는 자가 있으면 깨워서 집안 일을 하도록 하며, 가정이 더러운 자는 청결하게 하며, 땔감을 마련케 하고, 짚신삼기와 자리짜기를 장려하였다. 평상시 소작인들의 <근만부>를 작성하여 추수절에 농장주의 허가를 얻은 범위내에서 부지런한 자에게는 후한 상을 주고, 게으른 자에게는 다시 게으르면 경작권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예고하였다.
✎ 나는 과연 학부모들을 설득하고, 학생들의 아프고 가려운 곳을 살펴보고 고쳐줄 수 있는 용기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또한 백범 선생님은 사람들을 빨리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시다.
(244) 남이 해준 음식을 먹고 남이 만들어 준 옷을 입거늘, 품은 뜻은 평생 어기지 말아야 한다.
✎ 외우고 실천하고 싶은 구절.
(246) 나는 네가 경기감사나 한 것보담 더 기쁘게 생각한다.
(367) 남경에서 어머님 생신 때 청년단과 우리 동지들이 돈을 모아 헌수하려는 눈치를 알아챈 어머님은, “그 돈을 나에게 주면 내 입맛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하면서 돈으로 드렸다. 그런데 어머님은 드린 돈에 도리어 보태어 권총을 사서 일본놈 죽이라며 청년단에 하사하셨다.
✎ 세상에, 아들이 15년에 2년 더해 17년 형을 언도받은 후에 한 어머님의 말씀. 그리고 생신 축하금에 돈을 더 보태어 총을 사서 주시다니! 진정 넘사벽이시다. ㅜㅜ
(298)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 슬프고, 비장하고, 감동적이면서 백범 선생님의 일평생을 명쾌하게 단 한 줄로 요약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431-432) 나는 우리나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 가장 힘이 센 나라도 아니고 잘 사는 나라도 아닌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 나도 마음을 보태고 싶다. 생사를 오고 가는 칼끝을 걸어가는 거친 삶을 살아오면서 어쩌면 이리도 깊고 넓고 따뜻하게 통찰하는 생각이 피어나셨을까? 그래서 더욱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선생님이 걸어오신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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