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광인의 수기
국내도서
저자 :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 석영중,정지원역
출판 : 열린책들 20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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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흔 후반을 넘어서더니 내 몸도 조금씩 낡아간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연찮게 선택한 책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괜히 더 우울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읽으면서 주위의 아픈 사람들도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다시 나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요즘의 나를.


작년에 비해 일도 많고 걱정거리도 많아졌다. 하지만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도 나름 하나씩 일을 해치워가는 쾌감으로 하루를 마치곤 했다. 51쪽의 탁월하게 연주를 마친 제1바이올린 주자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삶이 한순간에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일리치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나도 뭔가 알맹이를 놓치고 겉모습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중심이어야 하는데, 일이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아프고 힘들 때, 특히 나의 마지막 순간에 나를 진정으로 가여워해 줄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 또 나는 아프고 힘든 주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위로하고 함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니체의 Memento mori, Amor fati를 항상 주술처럼 외고 다녔었다. 죽음을 기억하고, 그래서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조금씩 의미심장한 언어가 되더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좀더 내게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26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이 작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의 문장. 그래서 가장 강렬한 문장으로 기억되었다.

 

36 아내는 첫 아이의 출산 때부터 자꾸만 실패로 돌아가는 모유수유에서부터 사실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산모와 아기의 질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이반 일리치를 끌어들였다. 이반 일리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럴수록 가정을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절실해졌다.


56-57 그녀는 남편이 어서 죽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그가 죽으면 그의 봉급도 함께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그녀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었다. 남편의 죽음조차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기 자신이 끔찍할 정도로 불행하다고 느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둘러싼 가족들, 특히 아내의 행동을 보면 매우 냉정하고 이해타산적이어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내와 살아가면서 일리치가 가정에 좀더 충실하고, 자녀 육아와 성장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9 중요한 것은 이반 일리치에게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오로지 일 속에서만 삶의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재미는 결국 그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밟아 버릴 수 있다는 권력의 의식, 법정에 그가 들어설 때나 부하 직원들을 마주할 때면 그들의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나는 존경심, 상사와 부하 직원들을 상대로 거두는 성공,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 이 모든 것이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50-51 이처럼 공사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데 이반 일리치는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그는 오랜 경험과 재능을 십분 활용해 이를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거장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때로 그러듯이 장난삼아 공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뒤섞는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 그런 후 몸은 피곤하지만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연주를 마친 제1바이올린 주자처럼 흡족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일에 진정한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 무엇일까? 소설 속 일리치는 나름 공과 사를 구분하며 인간관계도 적절히 선을 유지하며 나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그가 가장 행복했던 일에서조차 일리치는 소외되고 만다. 요즘 휘몰아치는 3월 업무를 속에서, 일의 무게에 짓눌리기 전에 하나씩 해결했을 때의 희열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 간혹 일에 재미를 느끼던 일리치가 생각이 난다. 나도 혹시 그냥 만 하는 것은 아닐까? 교육이라는 알맹이는 들여다보지 못한 채.

 

58 이반 일리치가 알고 싶은 것 단 한 가지, 자신의 병이 위중한지 아닌지였다. 그러나 의사는 그런 부적절한 질문은 무시했다. 의사의 입장에서 그 질문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것이 신하수증인지, 만성 카타르인지, 아니면 만성 맹장염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생명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

병원에 들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수많은 대기 환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의사에게 나는 생명을 가진 나약한 인간일까, 아니면 그냥 수많은 질병 중 하나일까?

 

64 이제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섭고 낯설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그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아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이 무엇보다도 이반 일리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89 이반 일리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거짓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묵인하고 있는 거짓말, 그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플 뿐이다, 그러나 잠자코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거라는 그 거짓말이 그를 괴롭혔다.


91 거짓말 외에, 아니 거짓말 때문에,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했던 또 한 가지는 누구도 그가 바라는 만큼 그를 가엾게 여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간혹 내 몸이 아플 때, 나의 고통을 남은 절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아픈 경우가 많았다. 질병 안에 갇힌 채 절대 고독에 몸부림치는 일리치의 모습을 보고 격하게 공감한 대목이다. 그리고 89거짓말에 대한 일리치의 생각은 아픈 사람에게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 대목이었다.

 

108-109 그는 머릿속에서 자신의 즐거웠던 삶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즐거웠던 삶에서의 좋았던 순간들이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그랬다. 그때, 어린 시절에는 진짜로 기쁜 무언가가 있었다. ~ 마지막 목적지가 현재의 자기 자신인 회상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당시엔 기쁨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모두의 눈앞에서 녹아내려 부질없는 것으로, 그중 몇몇은 추악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정말 순수하게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가난하고 힘들었어도 역시 부모님이 돌봐주시던 유년시절이 아니었을까?

 

119 그는 똑바로 누워 지나간 삶의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하인에 이어 아내와 딸, 그리고 의사가 차례로 보여 준 행동과 말은 모두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그들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결국 최후의 순간에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모습에서 거울처럼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일리치! 요즘 애들 말로 현타가 온 것이다. 죽음 앞에서 많은 것을 부정하고, 애써 주위 사람들의 매정함에 분노하고 후회하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 너무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던 대목!

 

125 그는 그 동안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에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던 대목이다. 그렇다 결국 일리치와 나의 상상 속 죽음은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진정한 죽음은 모든 것을 벗어난 자유를 선사한 것이 아닐까? 특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깨달은 자에게.

*2019.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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