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올해 5월 성취기준과 5·18 수업을 연계하여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으로 “저수지의 아이들”을 선택했다. 아내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5·18의 진실을 다루면서 5·18과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소설로 잘 표현했으며, 주인공 선욱이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를 낸다는 점에서 성장소설로도 좋은 작품이었다. 중1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수업은 책을 각자 정리하고 질문하며 읽은 뒤, 모둠 별로 공통 질문(가장 인상 깊은 장면과 책에 나타난 혐오표현과 이유)과 모둠 자율 질문을 정해 책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대화 내용은 패들렛에 그대로 공유했으며 서로 댓글을 달며 학급 전체가 소통하도록 했다. 수업 마무리는 ‘서평 쓰기’로 진행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1학기 수업 평가에서 서평 쓰기가 힘들기는 했지만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한편 2학기 탐구 주제를 정해 책을 읽고 면담하며 서평 쓰기 수업을 진행하고자 탐구 주제를 설문했더니, 기후 위기, 메타버스, 빅데이터, 우주의 신비 등과 함께 혐오표현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다. 혐오표현과 관련해서는 이 책을 먼저 들었다.

 

책 제목 “말이 칼이 될 때”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인 인권이자 다른 권리들을 보장하는 중요한 권리이지만 이것이 혐오표현이 될 때에는 문제가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사안에 따라 일관되지 않고 뒤엉켜 있는 상태에서 표현의 자유나 제한이 소수에게 불리하고 강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수도 있어 혐오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의미 있는 제안을 하고 있다.

 

한 장씩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인상 깊은 구절에는 밑줄을 긋고, 내용이 다소 긴 부분은 메모하듯 정리하며 정리해 둔다.

1장.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24) 혐오는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31)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모욕·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다.

 

✎ 낮은 수위의 차별적 표현에 대해 ‘혐오표현’이라 하는 것이 지나칠 수 있지만, 차별받는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혐오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므로 ‘혐오표현’이란 용어 사용을 통해, 혐오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의도도 있음.

2장. 혐오표현과 한국 사회

(49) 소수자 차별의 맥락이 있는 한, 표현의 수위와 상관없이 혐오표현은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표현의 개념을 넓게 설정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혐오표현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 혐오표현은 ‘소수자 차별’의 맥락이 중요하다. 따라서 표현의 수위와 상관없이 혐오표현이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혐오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맘충’이라는 말은 우려되지만 ‘남혐’이나 ‘개독’은 차별을 공고하게 하는 것은 아니므로 혐오표현은 아니다. 

3장. 혐오표현의 유형
① 차별적 괴롭힘: 차별적 속성(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등. 차별금지법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이유로 소수자에게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이다. 차별금지사유를 이유로 고통을 주는 행위이므로 ‘차별적 괴롭힘'. 이중 장애나 성에 의한 괴롭힘은 현행법에 의해 처벌됨.
② 편견 조장: 혐오표현 만큼은 아니지만 정책 제안, 조언 등의 형태로 편견을 조장. 처벌 어려움.
③ 모욕(적 혐오표현): 소수자(개인, 집단)에 대한 멸시, 모욕, 위협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 누군가가 특정된다면 형법상 모욕죄 처벌받게 됨. 개인이나 집단을 특정하지 않고 소수자(집단)에 대한 멸시, 모욕, 위협을 혐오표현의 한 유형으로 분류해 처벌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음.
④ 증오 선동: 표적집단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을 넘어 제3자에게 차별을 함께하자고 선동하여 실제로 임박한 위험을 창출함.
✎ 혐오표현들은 역시 특정한 표현 자체보다는 그 표현이 발화된 맥락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4장. 혐오표현의 해악
① 정신적 해악: 특정 개인의 정신적 고통은 모욕죄, 명예훼손죄, 민사상 손해 배상 등으로 구제 가능. 그러나 혐오표현이 집단이나 개인을 특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해악은 소수자 집단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집단 명예 훼손으로 정신적 해악을 준다.
② 공존 조건의 파괴: 혐오표현이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파괴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공선’을 붕괴시킴.
③ 혐오의 피라미드: 편견⇒혐오표현⇒차별행위⇒증오범죄⇒집단학살로 이어짐.
✎ 혐오표현이 차별을 조장하거나 확신시키거나 지시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차별행위가 성립하기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혐오표현을 곧바로 차별행위로 간주한다.

5장. 혐오표현과 증오범죄

(93) 증오범죄란 장애,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성별정체성 등에 근거한 적대 또는 편견이 동기가 된 범죄를 뜻한다. 즉,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가 편견에 기반했을 경우 증오범죄라 불림.
(97) 혐오표현은 편견을 말이나 상징으로 표현하는 반면, 증오범죄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혐오표현과 증오범죄는 표출 형태만 다를 뿐, 원인과 배경이 동일하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
(99)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더욱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록 전파된다. 더욱이 요즘처럼 사회 불만이 증폭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차별과 혐오가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게 우리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던 나라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 증오범죄는 특정 집단을 공포로 몰아넣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우리나라에는 증오범죄법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빨갱이’나 ‘좌파’라는 단어로 혐오와 증오범죄가 무수히 일어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소수자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다. 증오범죄법도 필요하지만, 증오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입장이 중요하다. 

6장. 혐오표현과 역사부정죄

(113) 유럽에서 역사부정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적대, 배제와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114) 5·18왜곡이 5·18유공자나 호남인들에 대한 차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래서 실제적인 사회적 해악을 창출한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5·18왜곡에 대해서만큼은 유럽의 역사분정죄와 같은 논거로 정당화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 저자는 역사부정이 혐오표현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모든 역사부정이 아닌 홀로코스트 부정만 처벌한다. 제노사이드는 단순히 여러 사람을 죽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종, 이념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것을 뜻한다. 그 외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는 역사적 평가와 시민사회의 토론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를 계속 자발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제주4·3사건이나 여순사건 등은?

7장. 혐오표현과 싸우는 세계
(122) 세계 각국의 혐오표현금지법을 혐오표현 유형에 따라 살펴보면,
① 차별적 괴롭힘: 주요 국가들은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에서 괴롭힘을 차별의 한 유형으로 규율. (차별금지사유 관련 의사에 반하여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위협, 적대시, 멸시, 품위 손상 또는 모욕 등에 의해 존엄성을 침해하는 분위기 조성)
② 편견 조장형 혐오표현: 규제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나 차별로 직결된 가능성이 높은 혐오표현은 차별금지법에 의해 금지. (음식점에서 동남아시아인 출입 금지 안됨)
③ 모욕형 혐오표현: 몇몇 나라에서 금지. (인종, 국적,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위협, 조롱, 비하를 공표-말과 행동, 자료 게시, 출판·배포·방송-하는 것 처벌)
④ 증오선동: 세계 주요 국가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처벌.
✎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혐오표현금지법을 제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보다 더 소극적으로.

8장. 혐오할 자유가 보장된 나라, 미국?

(136) 미국은 국제인권조약의 혐오표현 관련 조항을 ‘유보’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처벌법도 일체 없다. 
(138) 어떤 표현이든 공적 담론에서 자유롭게 논의된다면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논의될 때, 그 표현이 ‘공적인 것’인지가 유독 중시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39) 미국은 혐오표현 규제 방법 중 형사 규제를 제외한 거의 모든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 미국은 혐오표현금지법은 없지만, 혐오표현을 제한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기제들(방송의 혐오표현 규제, 국가차원의 반차별 정책 시행-예를 들어 상급자와 학급자 같은 권력 기제가 작동하는 공공·교육기관 등에서는 차별금지 정책)들이 작동하고 있다. 즉 혐오표현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대처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9장 혐오표현, 금지와 허용의 이분법을 넘어서
✎ 소수자 보호를 위해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151) 더 많은 표현이 혐오표현을 격퇴시킬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를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개입’ 즉 형성적 규제, 지지하는 규제라고 할 수 있다.
✎ 형성적 규제(152) : 범국가적 차원에서 반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인식을 제고하고, 소수자 집단에 대한 각종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형성적 규제는 궁극적으로 혐오 표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즉 국가 개인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실질적 평등의 실현을 위해 소수자의 ‘자력화’를 지원하고 시민사회의 대항 담론을 활성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따라서 학교 교육과정에서 혐오와 차별 문제에 관한 적극적인 개입 중요하다.

10장. 혐오표현 범죄화의 명암
✎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제할 경우 남용가능성 등을 줄이기 위해 구성요건을 엄격하고 좁게 설정해야한다. ‘증오선동’에 해당하는 것만 처벌하는 것인데 이 경우 법망을 빠져나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무죄’로 인정되면 사회는 문제없음으로 받아들이고 추가적인 노력은 회피하고 ‘불법’으로 처벌하면 국가는 자기 역할을 다 했다고 면죄부를 준다. 발화자만 처벌하는 것은 혐오표현의 정치·사회·경제적 배경을 건드리지 못한다. 새로운 규제가 추가되면 국가가 나쁜 표현을 금지한다며 정치적인 것까지 규제하려 들 수 있다.

12장. 혐오표현 규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182)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되도록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개입을 우선(9장)시하되, 형사처벌의 부작용을 최대한 피하면서(10장), 다양한 규제 방법들을 적재적소에 배치(11장)
(189) 증오선동 이외의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형사처벌보다 차별금지법에 의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상담, 조사, 자율적 해결, 조정, 권고, 소송 지원 등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 방식을 취하는 차별 구제는 오남용의 가능성이 적으므로. 차별금지법 대신 평등법, 평등기본법이란 명칭이 적절할 수도.


13장. 혐오표현, 정치의 역할 
✎ 트럼프 집권 후 백인 우월주의, 아베의 우경화 후 혐한시위대 활개, 한국 사회에서 이념·사상에 따른 증오와 편견이 원인이 된 황산 테러, 강남역 살인 사건. 정치인들이 폭력에 단호히 맞서 잠재적인 피해자들을 보호해야하는데 오히려 피해자 집단을 고립시켰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테러와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서 ‘성적 지향’,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등에 대한 강한 반발로 인권 조례 통과가 어려우며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법 폐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07) 한국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방치한다면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문제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와 정치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무시무시한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혐오와 차별이 스멀스멀 움트고 있는 곳에 선제 타격이 필요하다. 


14장. 혐오표현, 대항표현으로 맞서라

(220) 혐오표현은 기본적으로 ‘선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소수자들을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 동시에 제3자에게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동참하라고 호소하기 때문이다. 
대항표현은 말 그대로 혐오표현에 맞대응하는 것이다. 연대의 실천이 꼭 거창한 시위의 형태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동아리에서 어느 회원이 소수자 회원에게 차별적인 언사를 했을 때, 그것을 저지하고 연대하는 것도 훌륭한 실천이 된다. 
(224) 법과 제도가 이러한 보복행위(대항표현으로 인한 폭력, 차별)를 철저하게 규제해야 대항표현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이것 역시 법과 제도가 대항표현을 지원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러한 대항표현은 9장에서 언급한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개입’, 11장에서 제시한 ‘지지하는 규제’의 한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우리 사회의 혐오표현이 상당히 우려할 수준이라는데 크게 공감했다.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혐오와 갈라치기가 적극 활용되고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이질적 집단에 대한 거부감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차별과 폭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그 어느 때보다 학교 교육의 역할이 중요해 졌다. 방학 동안 읽은 "새로운 가난이 온다"에서도 결국 긍정적인 협력과 연대의 경험을 학교에서 제공해야 한다는 것,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서도 뇌의 작용을 말의 힘과 관련지어 표현의 자유 못지 않게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학이 다가올 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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