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아이들(정명섭)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22. 5. 26.
광주의 국어교사로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와 삶, 삶과 문학이라는 측면에서 지나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자 내면화를 통해 지속해야할 중요한 시대정신이다.
그동안은 주로 단편소설(공선옥의 ‘라일락 피면’ 등)을 읽고 오월 정신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수업을 진행했다. 매번 수업이 비슷해 고민하고 있을 때 “저수지의 아이들”을 만났다.
부모 덕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군림하는 한혁이 무리와 그 무리에 들어가고 싶은 선욱이가 담임교사 및 전학생 민병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하다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그 죄를 모두 뒤집어쓴 선욱이 엄마의 고향, 광주의 후남마을에서 근신하다 5.18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되고, 학교폭력의 진실도 밝히며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간다는 이야기이다. 논쟁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정리하고,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가 왜 문제인지, 학교폭력의 진상도 밝혀가는 진실과 용기의 힘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한편 이야기는 5·18 당시 주남마을과 원제저수지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간적 배경으로는 주남마을의 이름을 빌려 ‘후남마을’로, 사건은 원제저수지에서 놀던 초중학생 학생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희생자가 초중학생이라는 점에서 쿠데타 세력의 불의한 폭력성이 부각된다. 또한 선욱이의 외삼촌이 저수지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설정된 부분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이 현재진행이라는 것도 말해 준다.
(124) “광주만 시위한 게 아니라 광주만 남았다...”
선욱은 지희의 말을 곱씹었다.
“그래서 마음 놓고 군대를 보냈을 거야. 신군부는 언론을 장악해 연일 북한이 남침한다고 떠들어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어. 국가 안보 위기라며 시위를 진압할 구실을 미리 만들어놓은 거지. 그 얘기는 시위가 과격했기 때문에 진압군이 투입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과격하게 진압할 생각이었다는 뜻이기도 해.”
역사학자 황현필 샘은, 당시 신군부 세력에 대한 저항이 전국적으로 있었으며, 오히려 광주는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 열사가 지역사회와의 협상을 통해 시위를 마무리해 비교적 차분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군부(쿠데타 세력)는 중소도시라 진압의 부담이 적으면서도 김대중이라는 정적의 기반세력인 광주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이에 대한 저항을 폭동으로 몰아 진압함으로써 자신들의 쿠데타 및 계엄령 확대를 정당화하려고 했다는 지적을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기에 오월 광주를 왜곡하는 내용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126) “그러니까 진압 작전이 과격해지면서 오히려 시위가 격화된 셈이네.”
“그건 저항이었던 거야, 저항.”
‘저항’이라는 말에 선욱은 갑자기 가슴 한쪽이 바늘에 찔린 듯했다. 학교에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은 힘센 친구에게 알아서 굴복하고 심부름꾼을 자처했는데, 1980년 광주 사람들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혹한 신군부의 총칼에 맞섰던 것이다.
역시 황현필 샘은, 광주 ‘항쟁’이 정당한 국가권력이 아닌, 국가를 사유화하려고 한 쿠데타 세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 광주사람들의 저항이 ‘양심’에 의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179) “네, 찾아와줄 누군가를요. 그래서 내가 알려달라고 했더니 여기 있다고 말해줬어요. 그리고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요. 늘 기억해줘서 고마웠다고요.”
정훈의 말을 모두 전달한 선욱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외삼촌은 더욱 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선욱아, 나만 살아남았시야. 으짠다고 나만!” (중략)
“허이고. 성들이 그 세월 동안 원통해가꼬 떠나지를 못했는갑다. 허이고야. 미안허요, 성님들. 나가 정말로 미안허요. 서어엉.”
읽으면서 눈물이 나왔다. 외삼촌의 조카인 선욱이가 저수지의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은 작위적이긴 하지만 가장 소설적이기도 하다. 5·18을 폭동이라 생각했던 주인공이 5·18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희생자들의 유골을 찾아냈다는 설정은 5·18에 대한 진정한 해결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언제까지 5·18 희생자들에게 5·18이 민중들의 저항정신이자 민주주의 실천이었음을 증명하라고 할 것인가.
(200) “사건 자체를 해결하는 건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아. 문제는 그 다음인데, 진실을 마주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건 예측이 안 되는 측면이 많거든. 예를 들어 자식에게 문제가 있다고 의뢰한 부모에게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증거를 들이밀면 자기 자식이 그럴 리 없다고 갑자기 돌변하는 식이지. 사람들은 진실에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아.” (중략)
“자기가 믿고 싶거나 믿어야 하는 걸 진실이라고 생각하곤 해. 특히 네 사건처럼 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선생들과 학부모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기 때문에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진실공방이 벌이지고 진흙탕 싸움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정식으로 의뢰하기 전에 먼저 잘 생각해봐.”
5·18뿐만 아니라 사람과 조직이 얽혀 있는 작은 일들도 진실을 밝히는 게 쉽지 않다. 선욱이 역시 탐정의 도움으로 자신이 뒤집어쓴 학교폭력의 진실을 증명할 증거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속시원히 시시비비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혁이 군림하며 비열하게 살아가는 데에는 집안 배경의 영향이 클 것이므로. 또한 그것의 확장선이 5.18에 대한 진실일 것이다.
혐오표현, 5..18 비하, 정의, 양심.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할 내용이 많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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