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아이(이꽃님)


"죽이고 싶은 아이"

제목이 강하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단짝이었던 지주연과 박서은. 그런데 어느 날 박서은이 벽돌에 머리를 맞은 채 학교 뒤 공터 으슥한 곳에서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주연은 사고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유력한 용의자다.
가족, 주위 사람들, 변호인,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정황과 증거, 평소 둘의 관계, 주연의 인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주연을 범인으로 단정한다. 그러다 최초 목격자가 나타나고 범인이 지주연으로 특정된다. 마지막 반전이 있지만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말을 아낀다.

소설의 제목 “죽이고 싶은 아이”는 관계 속에서 중의적으로 읽힌다.
이야기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사람들에게 주연은 ‘죽이고 싶은 아이’다. 이야기가 그렇게 만들어 간다. 이기적이며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주연의 입장에서 입 안의 혀 같았던 서은이가 본심을 이야기하며 관계를 정리하려 하자 ‘죽이고 싶은 아이’가 된다. 하지만 주연이의 상황은 범행의 동기가 되며, 그래서 사람들의 판단에 정당성과 필연성의 바탕이 된다.

마지막 반전이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먼저 주연이의 진심에 대해. 주연이는 서은이를 죽이고 싶었을까? 또 하나 주연이의 성격은 타고난 것일까, 만들어진 것일까. 후자라면 그 책임을 주연이에게 오롯이 묻는 것이 맞을까? 요새 “소년 재판”이란 드라마와 관련하여 중첩된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진심에 대해. 결국 주연이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 자기 기준에서 판단한다는 모습에서 적어도 과정에서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특히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아야한다’는 서은 엄마에 대한 평가는 참혹하다.
그리고 언론의 진심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까, 심판하고 싶었을까? 
이런 의문들이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할 거리가 더 많아진다.

반전을 통해서는 사람은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 내용대로라면 주연이도, 서은이도 참 안타깝다.

(58) 네? 서은이 남친 얘기 진짜냐고요? 뭐… 아마 맞을걸요. 애들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네? 아니요. 서은한테 직접 물어본 적은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물어봐요. 좀 그렇잖아요.

(77) 솔직히 서은이네 엄마 저러는 거 이해 안 돼요. 서은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몰랐으면서. 아무리 먹고살기 어려워도 그렇지, 하나뿐인 딸이 학교생활은 잘하는지, 뭘 하고 다니는지 그런 건 알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완전 무책임해. 그렇게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아야죠. 서은이는 흙수저 중에서도 완전 바닥이었다니까요. 문제집 살 돈이나 줬나 몰라. 수학여행 갈 때도 주연이가 돈 내준 거 아세요?

(86) 아, 이거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왜긴요? 그때 제가 지주연이 구라 치는 거라고 사실대로 말했으면 다른 사람들이 제 말 믿었을 것 같아요? 아닐걸요. 다들 지주연 말을 믿지 세 말은 안 믿었을걸요. 그리고 제가 사실대로 말했어 봐요. 지주연이 저한테 덤터기를 씌웠을지 모르잖아요.
그 쌤한테는 미안하죠. 그래도 지주연이 더 무서운데 어떡해요. 네 저는 걔가 진짜 무서워요. 그날부터 지주연이랑은 눈도 안 마주쳤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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