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솜에게 반하면(허진희)

청소년 독서 모임을 함께하는 한 선생이 지나가는 톡으로 이 책을 추천했다. 5분 독서’ 시간에 이 책을 읽는 학생들도 있어 이야기도 나눌 겸 책을 들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의 이야기로, 여자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잘 포착했다.

 

중학교 시기는 참 애매하다.

원래 '중간' 자체가 위치상 애매하기도 한데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초등학교와 미래에 대한 준비로 갈등이 명확한 고등학교에 비해, 모든 상황과 관계가 중첩된 중학교는 애매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학생의 본분이라는 공부 고민보다 관계나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감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 그래서 중학 시절 갈등했던 아이가 고등학교 첫 해를 보내고 와서 하는 이야기는 참 허무하다. 중학교 때 왜 그랬을까, 그때는 그래야할 것 같았다고. 그래서 우리 중학교 교사들의 천명은 아이의 변화가 위험스럽지 않은 정도 안에서 지켜봐 주는 것은 아닌까,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제목은 독고솜이지만, 이 글은 독고솜을 좋아하는 '서율무'와 독고솜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단태희'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먼저 독고섬이 탐정을 꿈꾼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탐정으로 팩트를 지향하고 철저히 관찰하는 서율무의 태도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실,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는 현장에서 중요한 첫 단추가 될 수 있겠다. 또 서술자가 탐정이기에 이야기들 사이에 어느정도 개연성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또 한명의 서술자를 ‘단태희’로 설정한 것도 문제를 일으키는 악으로 규정하기보다 나름의 사연이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1 여학생의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는 대부분의 상황에 상통하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이 잘 적응되지는 않는다. 다만 피아(彼我) 정도로 단순하게 규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학교가 전쟁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성향을 강화하는, 그래서 모둠 한 번 짜기가 이렇게 힘든 곳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그런 곳이었으면.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인상 깊은 구절을 정리하고 보니 관계에 대한 부분이 주로 선정되었다.

 

(14) 아이들은 점점 독고솜이 진짜로 불길하고 무서운 존재인양 행동했다. 이상하기도 하지. 독고솜과 어울리지 말라는 메시지만 받아들여도 되었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한 걸까? 어쩌면 애들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아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으니까.

 

영향력이 있는 아이의 생각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친구 관계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문장, 한 사람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나를 받아줄 또래를 만드는 데 급급해 다른 친구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다는 말이.

 

(25) 아무튼, 무리에 나 같은 우두머리가 생기면 자발적이든 아니든 모두 자신의 힘을 조금씩 떼어 우두머리에게 건네게 된다. 박선희 같은 애들은 자기들이 내게 내준 힘이 얼마나 귀한지도 잘 모른다. 내가 건네받은 힘은 그 애들의 의지다. 다른 사람의 말대로 하지 않을 의지. 나라면 절대로, 아무에게도 건네지 않을 중요한 힘이다.

 

패거리 문화의 본질이다. 자신의 의지를 떼어 주고, 대신 그 안에서 소속감을 누리는 것. 매슬로우는 그것을 인간의 당연한 욕구라고 표현했지만, 학급 안에서 소수의 집단은 패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41) 독고솜과 독고솜의 엄마는 잘 버텨 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온갖 행패를 무시할수록 사람들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내 귀에는 사람들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희의 죄가 뻔한데, 우리가 너희를 이렇게 싫어하는데 왜 너희는 그토록 멀쩡한 거냐고.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짜로 독고솜네를 미워한다고 믿게 되었고, 증오와 경멸의 감정을 아예 공공연하게 드러내었다. 독고솜 모녀가 지나갈 때면 무슨 낯짝이 그리 두껍냐고 대놓고 씨불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모녀의 의연함이 사뭇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적다보니 참 아이러니하다. 마녀는 태어나기보다 편가르기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낱말 뜻>

(11) 얼쯤얼쯤하다: 자꾸 행동 따위를 주춤거리다. 자꾸 말이나 행동 따위를 얼버무리다.

(18) 들멍대다: 손이나 어깨, 엉덩이 따위가 천천히 자꾸 들렸다 놓였다 하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60) 발맘발맘: 한 발씩 또는 한 걸음씩 길이나 거리를 가늠하며 걷는 모양

(62) 이드르르: 번들번들 윤기가 돌고 부드러운 모양

(136) 해반닥거리다: 눈을 크게 뜨고 흰자위를 자꾸 반득이며 움직이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159) 중간 불통거리다: 걸핏하면 얼굴이 볼록해지면서 성을 내며 함부로 말하다. ‘볼똥거리다’보다 거센 느낌을 준다.

(161) 어리마리: 잠이 든 둥 만 둥 하여 정신이 흐릿한 모양

(184) 중간 함부로덤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 또는 대충대충

(191) 뿌질뿌질: 매우 속이 상하거나 안타까워서 자꾸 몹시 애가 타는 모양. '부질부질'보다 센 느낌을 준다.

(194) 뱅싯이: 입을 살며시 벌릴 듯하면서 소리 없이 가볍고 온화하게 한 번 웃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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